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K방역은 없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국민과 의료계 이간질한 정부
백신도 병실도 확보 못한 실체없는 K방역

지난 21일 강추위 속에 안동시보건소에서 코로나19 검사에 투입된 의료진이 핫팩을 손에 쥐고 난로에 다가가 몸을 녹이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지난 21일 강추위 속에 안동시보건소에서 코로나19 검사에 투입된 의료진이 핫팩을 손에 쥐고 난로에 다가가 몸을 녹이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지난 4·15 국회의원 선거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코로나19 위기에서 빛을 발한 이른바 'K방역'이 최대 변수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앞서 대선에서 공평과 정의를 기대하며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많은 국민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등에 실망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던 총선은 다소 허무할 정도로 여당의 독주로 끝나고 말았다.

역시 역사는 모순된 것인가. 정부와 여당에 낙심하고 반대의 목소리를 가장 크게 냈던 대구경북이 그들의 승리에 있어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대구 봉쇄'라는 치욕스러운 말까지 감내해 가면서도 대구경북민들은 철저한 방역 수칙 준수로 코로나19와의 전투에서 승기를 잡았다. 사람의 물결에 떠밀릴 정도로 붐비던 도심이 마치 버려진 도시처럼 텅 비었지만 대구 시민들은 공포 속에 침착했고, 불안 가운데 평정을 잃지 않았다.

대구경북 의료진에게 감사와 격려가 날아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K방역이라는 실체조차 모호한 단어가 코로나19를 이겨낸 작동기제로 등장했다. 정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외국과 비교하며 대한민국의 대응이 최고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너와 나, 우리가 참 잘 했다.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정부가 훌륭했다'는 주입된 자만심으로 채워졌다. 묵묵히 고통의 늪을 헤쳐 나온 주인공은 대구경북민인데 부지불식간에 공로는 정부와 여당 몫으로 돌아갔다.

8개월여가 흘렀다. 하루 최대 확진자와 사망자 기록이 깨지고 있다. K방역은 허상이었으며, 정작 극복의 원동력은 대구경북민의 자발적 동참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이 빛을 발하게 한 배경엔 의료진의 희생이 있었다.

하지만 의인(義人)으로 칭송받던 의료인들이 파렴치한 집단으로 내몰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정부는 '공공의료 강화'라는 미명 아래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등을 내걸었고, 의료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의료인들의 목소리는 제 밥그릇만 챙기는 몹쓸 볼멘소리로 치부됐다. 의료인과 의료단체가 지극히 선하고 이타적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 정책 반대를 이유로 코로나19 대위기 속에 갈라치기 전술을 펴 국민과 의료계를 이간질한 행위는 납득할 수 없다.

3차 대유행이 시작되자 정부는 전공의를 동원하고, 그 보상으로 전문의 고시를 면제하는 방안을 꺼내 들었다가 뭇매를 맞았다. 뒤늦게 "전문의 자격시험 면제는 의학회, 수련병원 등과 협의할 사항으로 확정되지 않았다"며 없던 일이 됐지만 정부가 의료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임에 틀림없다.

2025년까지 전국 20개 지방 의료원을 신·증축해 5천 개 공공 병상을 확충한다는 뜬금없는 정책도 내놨다. 병상 1개당 의사 인력은 지난 2018년 기준 0.18명으로, 5천 병상을 늘리려면 의사 900명을 투입해야 한다. 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위기에 소방 장비와 소방관 확보는 뒷전이고 몇 년 뒤에 소방서를 짓겠다는 발상이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정부는 국시 재시험 반대에 대한 여론 변화가 감지됐다며 의대생들을 구제하겠단다. 백신도 없고 병실도 부족한 처지에 믿을 건 의료진뿐인데, 의사 2천700여 명이 사라질 판이 되자 급해진 것이다. 의료진은 다시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돌볼 터이고, 국민들은 다시 마스크를 쓰고 고통과 인내의 긴 터널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여기에 백신도 병실도 확보 못 한 K방역이라는 허상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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