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백신의 정치학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전세계 5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수억 명이 직장을 잃었지만 그 막대한 피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8일 오전 6시 31분 일반인으로는 최초로 북아일랜드출신 90세 여성이 영국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받았다. 영국의 보건장관은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했다. 과연 백신은 코로나와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역의 최종병기가 될 수 있을까?

서구유럽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국내 백신접종의 시기를 둘러싸고 정치적 논쟁이 뜨겁다. 혹자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며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했고, 정부는 급조된 백신의 안전성을 우려하며 급할 것 없다는 입장이다.

백신의 안정성에 대한 논란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이뤄진 개발과정에서 비롯됐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단 몇 달 만에 이전까지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메신저 RNA 플랫폼 형태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성공은 세가지 요인에 의해서 가능했다. 백신을 개발하는 새로운 방법이 이미 시험을 기다리고 있었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완벽한 대상이었다. 높은 감염률로 인해 프로세스에서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임상 시험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미국정부가 대량생산을 위한 재정적 및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즉, 준비된 과학기술과 불필요한 행정절차의 간소화가 전례 없이 빠른 백신개발을 가능케 한 것이지 연구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절차가 생략되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정부는 사실에 기반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감염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백신 도입을 결정하면 된다.

오히려 국가적 차원에서 '정치적 해결'이 필요한 것은 백신이 도입된 이후이다. 백신 접종을 시작 했다고 해서 공중보건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백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하나의 강력한 도구일 뿐이다.

어떤 백신도 모든 사람에게 완전하거나 지속적인 면역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집단면역을 얻기 위해서는 인구집단의 70% 이상에서 접종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백신 안전성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제공 하기보다는 신뢰를 가지고 예방 접종을 거부하는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정치적 문제는 '누가 백신접종을 먼저 받아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벌어진 '마스크 대란'의 교훈을 잘 기억하고 있다. 정치인이 아닌 감염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백신접종의 대상과 순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 두는 것이 초기 혼란을 피하는 길이다.

국제적 차원에서 '백신을 전세계에 어떻게 보급할 것인가?'라는 것은 훨씬 복잡한 정치적 문제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백스(COVAX)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공평하게 전세계의 가장 취약한 인구집단과 의료 종사자들이 우선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글로벌 할당 프레임 워크를 제시했다. 그러나 모든 정부가 먼저 자국민을 돌봐야 한다는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는 지금 이런 접근은 비현실적이다. 공익을 위한다 하더라도 '백신 민족주의'는 '백신 다자주의'를 이길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백신의 보급이 국가의 경쟁수준과는 관계없이 글로벌화돼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견이 없다. 이같은 접근이 윤리적이고 인도주의적일뿐만 아니라 집단면역을 통한 코로나19 종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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