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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장관감 찾으러 쓰레기통을 뒤지나

국민의힘은 지난 6일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준영 해양수산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국민의힘은 지난 6일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준영 해양수산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부적격'이라는 당론을 확정하고,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사진은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왼쪽부터), 박준영 해양수산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일 각각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8일 타계한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첫 인사청문회 대상이었다. 2000년의 일이다. 그가 총리에 지명된 것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협치'의 상징이었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부인의 위장 전입 문제였다.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그는 결국 "부인이 했지만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며 사과했다.

청문회 제도는 김 전 대통령이 도입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상자를 전 국무위원으로 확대하며 발전했다. 두 대통령이 권력 균형이란 민주주의의 토대를 위해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희생하며 기꺼이 제도를 안착시킨 공은 적지 않다. 그 덕분에 국회는 대통령의 고위공직자 임명에 대한 견제 수단을 일정 부분 갖추게 됐다.

야당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리라는 것도 일찌감치 예상했던 일이었다. 김 전 대통령 자신도 장상·장대환 총리서리가 잇달아 낙마하는 고충을 겪었다. 낙마의 사유 역시 위장 전입과 부동산 투기 등이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직자 찾기가 어렵다는 말은 그때부터 나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청문회가 정착되면 고위 공직을 희망하는 인물들이 지레 몸가짐을 조심할 것이고, 대통령은 그들 중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이를 골라 임명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청문회 역사가 20년을 넘겼다. 그동안 많은 후보들이 이 관문을 뚫었고, 상당수는 낙마했다. 하지만 일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도 임명권자가 임명을 강행했다. 노무현 정부 3명, 이명박 정부 17명, 박근혜 정부 때 10명이었다. 박 정부까지 모두 30명이 억지로 자리를 꿰어 찬 셈이다.

누구보다 이에 발끈했던 이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민주당 대표 시절 "온갖 부적격 사유가 쏟아져도 결국은 임명되니 청문제도가 어떤 의미가 있냐"며 분노했다. 대통령 후보가 되자 ▷병역 기피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 고위 공직 후보 원천 봉쇄라는 공약을 냈다. 대통령이 되고선 '불법적 재산 증식'과 '연구 부정행위'까지 그 범위를 더 넓혔다.

하지만 '쇼'였다. 문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없이 장관들을 임명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병역'(아들 5차례 입영 연기), '불법적 재산 증식'(사모펀드), '세금 탈루'(웅동학원), '위장 전입'(딸), '연구 부정'(딸) 등 5대 의혹을 모두 받았지만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 했다. 또 다른 한 장관을 임명하면서는 "청문회에서 많이 시달린 분들이 더 일을 잘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는 '전설 같은' 말을 남겼다.

5대 인사 원칙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문 대통령이 지난 4년 동안 야당 동의 없이 임명 강행한 장관급 인사가 벌써 29명이다. 여기에 또 3명의 장관 후보자를 두고 저울질 중이다. 하나같이 국민 눈높이에 턱없는 인물들이다. 문제가 되자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에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같은 분이 계신다고 해도 그분들을 장관으로 쓸 수 없다"며 사람이 아닌 제도를 탓했다.

대한민국은 1950년대 "한국에서 경제 재건을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조롱을 딛고 꽃을 피운 나라다. 문 정권은 쓰레기통에서 장관감을 찾고 있다. 지금 청문회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대통령 자신이다. 제도를 탓할 일이 아니다. 서투른 목수는 연장을 탓하고 유능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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