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신사임당이 치실을 썼다고?

평소 치아 관리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병원에 가서 더 큰 돈을 쓰게 된다.
평소 치아 관리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병원에 가서 더 큰 돈을 쓰게 된다. '돈쓰지 말자'라는 얘기를 세종대왕을 가져와 우회적으로 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이제 치과가 동네 편의점만큼 많아졌어요"

한 치과 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곰곰이 생각하니 그랬다. 거리에서 조금만 눈길을 돌려도 치과가 보인다. 특히 치과의 간판은 노란색을 많이 써서 가시성이 좋다. 언뜻 보면 대구의 모든 치과가 비슷해 보인다. 그 치과만의 정체성이 없어 보인다. 편의점만큼 늘어난 치과는 과도한 경쟁을 불러왔다. 일부 소수 치과들의 과잉 진료, 허위 광고가 탄생했다.

지금 자신이 다니는 치과를 생각해보자. 길가다가 우연히 보이는 치과에 들어간 적이 있는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가족, 지인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의 환자들의 후기를 보고 갔을 것이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아무 치과에 갔다간 왠지 과잉 진료에 당할 것 같다. 왠지 비싼 값을 치러야할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다. 그렇게 작년에 썼던 카피가 '칫솔이 치과다'이다. 일부 치과의 과잉 진료로 인해 떨어진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치과보다 평소 양치 습관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치과가 하네?' 광고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으면 했다.

문제는 올해였다. 작년의 캠페인은 나름 성공적이었지만 이번에 어떤 얘기를 할지 당최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보면 답은 쉽게 보인다. 메시지의 관점을 치과에 두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 두면 끝나는 일이다. 치과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고 환자를 배려하면 된다. 즉, 치과가 하고 싶은 말보다 환자가 듣고 싶은 말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찾은 것이 치실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칫솔에 이어 치실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진부했다. 이 진부한 소재를 어떤 표현 방법으로 표현해내느냐가 관건이었다. 치실을 두고 고민했다.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신선하게 받아들일까?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신사임당의 치아를 보여주고 싶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신사임당이 치실 사용을 보여주고 싶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신사임당의 치아를 보여주고 싶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신사임당이 치실 사용을 보여주고 싶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치실 → 평소 구강 습관 → 치과 → 비용 지출>

치실을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내 소중한 돈과 이별해야했다. 그럼 무엇을 가져와야 가장 돈같이 보일까? 그렇게 찾은 답이 지폐 속 위인이었다. 세종대왕을 보면 만원이 생각났고 신사임당을 보면 오만원이 생각났다. 너무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당장 지갑 속의 현금을 꺼내보았다. 불운하게도 위인들의 치아가 없었다. 아무래도 치아가 보이면 근엄하게 보이지 않으니 그렇게 지폐가 디자인된 것 같다. 여기서 물러설 수 없어 치아를 합성해봤다. 전혀 다른 이미지가 탄생했다. 위인들이 입을 벌려 치아를 보여주는 그 느낌이 묘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두 손을 올려 치실을 붙잡고 치아 사이에 넣어보았다. 전혀 상상치 못한 이미지가 탄생했다. 심지어 발칙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카피를 덧붙여 메시지를 정박시켜 봤다.

'나 쓸래? 치실 쓸래?'

의도적으로 경북대 치대 앞에 광고를 게재했다. 치과 의사가 될 예비 의사들도 이런 마음으로 환자를 진료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의도적으로 경북대 치대 앞에 광고를 게재했다. 치과 의사가 될 예비 의사들도 이런 마음으로 환자를 진료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여기서 말하는 '나'는 돈을 뜻한다. 즉, 평소 치아를 깨끗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치과가서 돈을 쓰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 이야기를 치과의사회에서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신선했다. 기존의 치과 광고들은 전부 자기 치과로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치과의사회와 우리는 작년부터 신뢰도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 서두에 원장님이 치과를 동네 편의점과 비유하는 내용을 적었다. 푸념처럼 들렸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치과는 편의점 같아야 한다. 우리가 편의점을 갈 때 망설이지 않는다. '이 편의점이 나한테 비싸게 팔지 않을까?' '이 편의점이 나한테 과잉 판매하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 편의점에 들어가도 걱정이 없다. 치과도 그랬으면 좋겠다. 어떤 치과에 들어가도 진료에 대한 걱정이 없었으면 좋겠다. 물룐 의사 개개인의 역량 차이는 사람인 이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선택은 환자들의 몫이다. 적어도 내가, 우리 부모님이, 나의 동생들이 치과에 가서 과잉 진료 때문에 망설이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광고만으로는 될 일은 아니다. 치과는 진심으로 진료하고 나도 그 진심을 광고판에 고스란히 옮겨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런 광고조차 하지 않아도 될 날이 와야 한다. 광고하지 않아도 치과를 믿는 것이 너무 당연해진 날 말이다. 그날을 간절히 기다려 본다.

'어떻게 광고해야 팔리나요'의 저자(주)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어떻게 광고해야 팔리나요'의 저자

(주)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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