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영국 보수당의 생존 비결로 '변화에 대한 유연한 적응 능력'을 들었다. 내가 영국 정치를 잘 알거나 스스로 연구하여 얻은 통찰이 아니었다. 강원택 교수 등 영국 정치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로 한 결론이었다. 관련 분야 연구를 살펴본 결과 영국 보수당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에 현재 필요한 가치가 변화에 대한 유연한 적응 능력이라고 진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야당 혹은 우리 정치권 전반에 대한 변화를 바라는 국민과 당원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이 대표의 개인기도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30대 제1야당 대표' 탄생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시사평론, 특히 상대가 있는 토론에서 발군의 역량을 발휘해 왔다. 이른바 사이다 발언으로 각광을 받아 온 인물이다. 과거 토론이나 인터뷰 영상을 보아도 우리 사회의 모든 현안에 대한 거침없는 견해 피력은 놀라울 정도다. 문제는 시사평론가의 역량과 당 운영 능력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이다. 현안에 대한 시원시원한 발언 역시 개인의 '거친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당 전체에 누를 끼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대표에게 지금 요구되는 덕목은 유연한 적응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선 전은 물론 당선 직후 언론은 이준석 돌풍에 의미를 부여하기 바빴다. 일주일 남짓 지난 지금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수술실 CCTV 설치 문제 등에 대한 이 대표의 신중한 접근은 '사이다 대신 고구마'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대표가 강조하는 '공정한 경쟁'은 '정글 보수'라는 이름의 극우 보수적 입장으로 해석된다. 감탄과 찬사의 시간이 지나고 검증과 비판의 시간이 된 것이다. 달콤하지만 짧은 허니문이 끝나면 누추하고 힘든 일상을 마주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연한 변화일 수밖에 없고 이 대표와 국민의힘이 헤쳐 나가야 할 현실이라는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시사평론과 달리 당 운영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소신과 개인적 견해를 거침없이 말하고 상대를 날카롭게 비판하면 평론가의 가치는 올라간다. 당 대표는 다르다. 최고위원들이 있고, 원내대표단을 비롯한 당 중진들이 존재한다. 이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조직으로서의 당 운영은 불가능하다. 당 내부에서부터 불협화음이 나오기 시작할 경우 수습이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벌써부터 당직 인선과 당의 일정 등을 놓고 여러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당 내부의 여러 인재들과 함께 권한과 책임을 분산해야 본인도 힘들지 않고 당도 활기를 찾을 수 있다. 돈도 조직도 캠프도 없이 기존의 정치 문법을 깼다는 찬사는 선거 과정을 두고 하는 얘기다. 혼자 하는 게 당연하고 익숙한 평론가의 정체성과는 결별해야 한다. 말도 줄여야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아마추어 티가 나고 아직은 준비가 안 된 모습"이라거나 "입당을 안 하기 쉽지 않을 거다. 이미 입당했어야 한다"는 등 불필요한 말들이 너무 많다. 아직도 본인의 정체성을 평론가로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약도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토론 배틀을 통한 대변인 선발은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일 수 있다. 당 내외에서 별다른 반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와 달리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면 유연한 대응 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할당제 폐지를 포함한 과도한 능력주의, 공천 자격시험 등이 대표적이다. 조국 사태, 불투명한 공천 과정 등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로서 불공정에 민감한 청년층에 일면 호소력이 있을 수 있다. 관련 현안, 특히 공천 개혁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가 많이 있다. 글 서두에서 말한 대로 전문가들의 견해를 참고하여 필요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대표 본인의 생각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비판을 수용하여 긍정적 요소를 살리는 방향으로 업그레이드해 나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보수 정당에 필요하다고 말했던, 변화에 대한 유연한 적응 능력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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