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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매일신춘문예 당선소감] 동시

2022 매일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자 정준호
2022 매일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자 정준호

이번에 저는 가루들을 어르고 달래어 감히 할머니를 빚어보려고 했습니다. 실패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같이 동시 쓰고 놀자고 불러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좋은 소식 전해주신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작고 조용하고 가벼운 손입니다. 무섭지만 이 초라한 손을 가루 속에 펑펑 넣어보겠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시의 가루들을 만지면서 오래 살겠습니다. 가루가 될 때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비록 부족한 재료들이지만 밀과 꽃, 눈과 뼈의 가루까지 고루 섞고 다져 반죽하겠습니다.

반죽들을 빚는 동안 저는 아마 더 작아지고 침침해지고 구부정해지겠지요. 눈물이 부족하다면 피를 부어드리겠습니다. 뼈는 태우고 곱게 빻아서, 항아리를 만들겠습니다.

혹시 항아리 속에서 흩흩흩, 흩흩, 하고 가루들이 웃는 소리 들어보셨나요? 서른 살엔 고작 습작노트들을 태우면서도 눈물을 불렀습니다. 노트가 타며 내뿜는 연기를 들이마시고 몸에도 바르고 재를 핥은 적도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잊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때 내 검은 얼굴과 혀를 씻어주던 희디흰 눈(雪)의 손길. 눈에 들어갔다 하면 눈물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 꼭 가루와 시만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엄마와 애인, 동생, 고모들, 이모, 외삼촌, 외할머니, 선생님들과 친구들, 선후배들. 어쩐지 가루보다는 나무들을 더 닮아 있는 이 사람들.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나의 마루인 사람들.

덕분에 흩어지기도 뭉쳐지기도 잘했던 나의 미래는 든든합니다. 이름을 부르면 눈에 가루가 들어갈 것 같은 그 이름의 주인들에게 지금 저는 여기 살아 있고 무언가를 새로 쓰고 있다고 안부 전하겠습니다. 봄이 오면 반드시 내 손을 내가 잡아끌고서라도 들판에 가서 꽃가루를 뒤집어쓰겠다고, 더 많은 나비들을 유혹해보겠다고. 네, 그래도 꽃과 잎들은 떨어질 테고 겨울은 다시 오겠지요. 그래도 안녕, 하면 좋은 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매해 첫눈이, 새로운 시가 온다는 예감을 믿게 되었습니다.

◆정준호

1983년 경남 진주 출생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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