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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이와 버들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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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 지음/ 책읽는곰 펴냄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의 일부. 책읽는곰 제공
백희나 지음/ 책읽는곰 펴냄
백희나 지음/ 책읽는곰 펴냄

퓰리처상 수상작들을 보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진 한 장이 백 편의 기사보다 낫다"는 신문업계의 격언에 말이다.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을 보면 비슷한 심경이 된다. 그림책을 어린이용이라 구분을 둬선 안 되는 이유가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엄마가 구름으로 구워주신 구름빵을 먹고 하늘을 나는 '홍비'와 '홍시'의 창조자, 백희나 작가가 2020년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추모상을 받은 뒤 내놓은 첫 작품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버들잎 도령과 연이' 민담에서 갖고 왔다. 주인공 연이는 계모가 아닌 '나이 든 여인'과 함께 산다. 악의 현신처럼 보이는 나이 든 여인은 한겨울에 연이에게 상추를 구해 오라고 시킨다. 연이는 눈바람을 헤치며 길을 나선다. 그러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커다란 나무 밑 작은 굴로 들어가게 된다. 안쪽으로, 안쪽으로 들어가다 끝에 놓인 돌문을 치우고 버들도령의 마을로 들어선다.

그림책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에서 버들도령이 연이에게 상추를 한 바구니 따 건네주는 장면.

버들도령의 배려로 상추를 구해 집으로 돌아가자 이를 수상히 여긴 나이 든 여인은 진달래꽃을 구해오라 또 시키고는 연이의 뒤를 밟는다. 버들도령이 연이를 꾀었다 여긴 그는 마을을 폐허로 만들고 버들도령의 목숨을 빼앗는다. 버들도령의 죽음을 목도한 연이는 버들도령이 줬던 세 가지 귀한 꽃으로 그를 살리고, 둘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표현 방식이다. 백희나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인형을 빚고, 실제 풍경에 인형을 두고 장면들을 촬영했다. 그렇게 원작에 감정을 한꺼풀 더 입혔다. 예술적 완성도를 높인 건 닥종이 인형이다. 그가 전작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에서 선보인 닥종이 인형은 이 작품에서도 진가를 발휘하는데, 특히 연이가 상추를 구하러 눈보라 속을 걷는 장면은 보는 이도 몸을 움츠릴 만큼 현실감이 빼어나다.

폐허가 된 버들 도령의 마을을 본 연이의 눈빛을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다. 영상 촬영에서 쓰이는 클로즈업 기법을 활용한 이 장면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배우의 메소드 연기를 보는 듯하다. 닥종이의 질감은 연이의 슬픔과 버들 도령의 배려를 표현하는 데도 제격이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의 일부. 책읽는곰 제공

여러 번 "역시"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는데 작가의 섬세한 뒤처리 덕분이다. 나이 많은 여인의 물욕을 강조하듯 그의 왼손 중지에 두 겹으로 끼워둔 옥가락지나 심술보가 덕지덕지 묻은 표정선 묘사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미역국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을 표현하며 생동감을 키운다. 그냥 넘길 수 없다.

이야기 결말은 민담 원작과 다소 결이 다르다. 원작에서는 계모의 필멸이 묘사되지 않지만, 이 작품에서 '나이 든 여인'이라 지칭된 그는 나이들어 외롭게 죽는다. 악행을 자행한 것치고는 심심한 죽음이다.

부관참시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으나 외려 작가는 너 따위의 죽음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두 문장으로 냉정히 끝낸다. "그야 나이가 들어 죽었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말야."

버들 도령의 마을 앞에 놓인 돌문을 여는 주문, "버들 도령, 버들 도령, 연이 나 왔다, 문 열어라"도 후크송처럼 맴돈다. 몰래 중얼거려 본다. 88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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