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 당의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정부 조직 개편을 공약하고 나서 선거 후 정부 조직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조직 개편은 대선 때마다 쟁점이 돼 왔지만 이번만큼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대적인 개편을 공약한 적은 없어 관가에 긴장감이 감돌 정도다.
◆李 '강한 청와대' vs 尹 '내각 중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과학기술혁신부총리제 도입, 기획·예산 기능 개편 등을 공약하며 큰 폭의 정부 조직 개편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먼저 과학기술혁신부총리제 신설은 과학기술 혁신전략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기 위한 것으로, 과기부총리가 국가 과학기술 혁신전략을 주도하도록 기획과 예산 권한을 대폭 위임하는 것이다.
이 후보는 지난 19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최 토론회에서 "연구개발 체제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혁신하고, 새로운 지식과 미래기술 창출을 위한 기초연구와 원천기술 연구에 정부의 투자를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 함께 탄소중립시대를 대비한 기후에너지부 신설, 데이터 전담 부처, 대통령 직속 국가우주정책 전담기구인 우주전략본부 설치, 우주사령부 창설 등의 개편안도 내놨다.
이 후보는 통일과 관련해선 통일부 명칭 변경 검토 등 장기적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정부 조직 개편 방향은 대통령 권력 분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윤 후보는 "국가와 정부는 국가와 정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딱 그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작은 정부론'을 폈다.
윤 후보는 "내각제 요소가 가미된 대통령 중심제라는 헌법정신에 충실하게 정부를 운영하겠다"면서 "각 부처 장관에게 전권을 부여하되 결과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지도록 하는 '분권형 책임장관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로 집중된 권한을 정부 부처로 분산하고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전체 행정조직은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구축해 운영하겠다고 공약했다.
우선 적용 대상 부처는 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다. 국가 재정 운용과 과학기술 등 데이터 분석이 긴요한 부처부터 순차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또 메타버스(가상세계) 부처 신설,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위원회 설치, 디지털혁신부 신설, 과학기술 전문가 정부 최고위직 배치 등의 구상도 내놨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신흥안보위원회를 설치하고 기후변화·환경·감염병 등 새로운 안보에 선제 대응하는 역할을 부여하겠다는 그림도 그리고 있다.

◆기재부 쪼개지나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개편안 가운데 핵심은 기재부 해체에 가까운 조직 분리다. 이 후보는 기재부가 가진 예산 편성 기능을 청와대 직속으로 두겠다고 밝혔다.
기재부에 힘이 집중돼 있는 만큼 예산 기능을 떼어내고 이를 청와대 직할로 두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합쳐져 출범했다. 장관급 부처에서 2013년 부총리급으로 격상되면서 예산 기능을 가진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 후보가 기재부 기능 축소를 정조준한 것은 그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역화폐 발행, 손실보상 등 이슈에서 기재부와 충돌을 빚어왔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겨냥해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 "따뜻한 안방에서 지내다 보면 북풍 한설이 부는 들판을 알지 못한다", "만행에 가까운 예산을 편성했다"면서 공개적인 비판을 이어왔다.
이 후보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선 "기재부가 정치적 판단까지 하지 않느냐는 의문을 갖고 있다. 기재부가 모든 부처의 상급 기관, 국무총리 말도 안 듣고 쉽게 말하면 대통령, 청와대와도 충돌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릴 정도"라면서 "미국 방식으로 예산이 제일 중요하니 직접 (대통령) 직할로 두는 게 좋지 않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이 비대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기획예산처를 신설하려 했으나 야당이 대통령 권한 집중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기획예산위와 예산청을 각각 신설하는 방향으로 개편했었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는 "부처를 과도하게 해체하면 행정부가 사실상 정치적 표퓰리즘에 무방비 상태로 빠지게 될 수 있다. 완전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최근 기재부의 예산 기능과 역할을 두고 논란이 많긴 하나, 과거에는 기재부가 국가적 논리를 내세워 정치권을 견제하며 표퓰리즘을 제어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인수위에 들어가면 심층적인 분석과 검토가 있을 것이고, 국정혼란에 대한 대책이나 검토없이 무작정 후보들 공약만 듣고 가진 않을 것"이라며 "예산 심의 기능은 국무총리실로 두는 등의 방안도 검토해볼만 하다"고 분석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되나
윤석열 후보의 정부 조직 개편 방향 가운데 가장 이목이 쏠리는 건 여가부 폐지 공약이다.
최근 여가부 폐지 논쟁은 젠더 갈등으로 치달으면서 이번 대선 캐스팅보터로 꼽히는 2030 세대의 표심을 건드리는 뇌관 중 하나로 논란이 지속되는 양상이다.
윤 후보는 이달 11일 여가부 대해 "많은 국민이 기대했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며 "설립 당시 국민이 기대했던 그런 부분은 다양한 국가의 행정 수요에 부응하게 빈틈없이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동·가족·인구 등 사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 신설을 추진하겠다며, 1개의 통합 부처가 아닌 복수의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윤 후보는 이 구상이 여가부 폐지 공약에 따른 대안인지에 대해선 "딱 대응해서 말씀드린 것은 아니다"라면서 "조금 더 큰 관점에서 우리 사회 문제를 폭넓게 보고 대응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가부 폐지 논란은 2001년 출범 직후부터 반복돼왔다. 2001년 여가부의 전신인 여성부가 설립되고 여성가족부, 여성부, 여성가족부로 간판이 바뀌는 동안 여러 차례 조직 개편·축소·폐지 대상이 됐다.
특히 지난해부터 여가부 폐지론이 재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여가부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면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가부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등 사건에서 미온적 태도를 보여 비판 여론이 일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1월 이정옥 전 여가부 장관은 박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데 대해 "성인지성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언급해 여가부 폐지론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대선을 앞두고 여가부가 여당의 정책 공약 개발에 관여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실제 여가부가 지난해 11월 17∼22일 남녀 1천2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2021년도 여성가족부 주요 정책 인식조사'에 따르면 여가부에 대한 호감도와 정책 공감도는 40점대의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김용찬 대구가톨릭대 교수(대한정치학회 회장)는 "여가부 폐지 논란은 이번 대선에서 과도한 젠더 이슈가 전면 부각되면서 사회 갈등의 핵심 요소로 인식된 측면이 있다"면서 "단순히 폐지만이 정답이 아니라 부처 역할 조정에 대한 고민부터 필요하다. 청소년 보호 정책, 미혼모 지원 등 우리 사회에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만큼 역할 조정과 변경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정치 쟁점화 우려, 지방분권 부처 신설해야"
전문가들은 후보들이 표심 확보에 함몰되면서 면밀한 검토보다 경쟁 차원으로 내놓는 공약에 우려를 제기했다.
하혜수 교수는 "후보들이 눈에 띌 수 있는 가시적 효과를 위해 민감하고 과도한 공약을 터뜨리는 경향이 있다"며 "통상 관료사회가 흔들릴 것을 우려해 조직 개편은 정권 인수위에서 검토했는데 이번에는 대선 과정에서 너무 빨리 정치 쟁점화되면서 적폐 논리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분권 관련 부처 신설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용찬 교수는 "여야 후보들이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부처 역할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며 "정부 부처에 지방분권 역할을 더 적극 부여해야 하고, 부처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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