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K좀비 전 세계를 감염시킨 이유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금 우리 학교는’, 전 세계가 또다시 K좀비에 열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또다시 전 세계가 K좀비에 감염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금 우리 학교는'은 서비스된 이래 일주일 넘게 넷플릭스 TV쇼 부문 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무엇이 또다시 K좀비 열풍을 만들었을까.

◆K좀비, 또다시 글로벌 열풍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지난달 28일 공개된 지 하루 만에 넷플릭스 TV쇼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지난 3일에는 59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고 미국에서도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TV 시리즈가 됐다. 공개 이후 지금껏 연속 1위에 올라 있는 '지금 우리 학교는'은 '오징어게임'이 거둔 '53일간 1위' 기록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다. 하지만 '지옥'이 거둔 '11일간 1위' 기록은 무난히 넘을 것으로 일찌감치 예상됐다.

주목되는 건 이 작품에 대한 외신들의 호평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세계를 뒤흔드는 어두운 실존주의를 그린 작품"이라 했고, 미국 연예 전문 매체 버라이어티도 "'오징어게임'과 마찬가지로 악몽 같은 공간적 배경을 최대한 활용해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아찔한 효과를 준다"고 평가했다.

물론 모든 반응이 호평 일색인 건 아니다. 미국의 비평 매체인 인디와이어는 "1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익숙한 이야기가 단조롭게 반복된다"는 평을 내기도 했고, 호러 장르를 주로 다루는 블러디 디스커스팅은 "계급주의, 사회적 불평등, 교내 폭력, 10대 임신과 같은 신랄한 주제들을 서투른 방식으로 다룬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호평과 혹평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외신들이 모두 K콘텐츠, 특히 K좀비라고도 불리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지는 우리네 좀비 시리즈에 모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실제로 K좀비는 연상호 감독의 영화 '부산행'에서부터 시작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김은희 작가의 '킹덤' 시리즈로 이어진 후, 영화 '#살아있다', 드라마 '해피니스' 등의 진화를 겪은 후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하나의 장르처럼 인식되고 있다.

K좀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공간을 잘 활용한다는 점이다. '부산행'이 특이했던 건 좀비가 전역에서 창궐하는 상황이지만 그 포커스를 KTX라는 특정한 공간 안에서 그려냈다는 점 때문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 그 공간이 압축 성장을 해온 한국의 축소판처럼 은유되고 그 안에서 물밀 듯이 달려 나오는 좀비 떼들의 양상을 그 시대의 집단주의적(군사문화 같은) 문화들과 엮어 풀어낸 점이 색다른 좀비 콘텐츠를 가능하게 했다.

마찬가지로 '킹덤'의 조선시대 시공간 역시 궁궐이나 성을 배경으로 하는 좀비 액션 스릴러를 가능하게 했고, '#살아있다'나 '해피니스'도 아파트라는 어찌 보면 우리네 주거의 욕망을 가장 잘 드러내는 아파트라는 공간을 가져옴으로써 차별적인 좀비 스토리를 만들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이 가져온 학교라는 공간이 그저 우연적인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치 보고서처럼 지어진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좀비물에 빗대어 우리네 사회의 문제를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K좀비의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

'지금 우리 학교는'은 특히 이러한 K좀비의 공간 활용이 탁월한 작품이다. 학교라는 공간을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급식실, 과학실, 방송실, 음악실, 도서실, 체육관 등의 공간들이 가진 특징을 이 작품은 창궐한 좀비 떼들과 싸워나가기 위한 독특한 아이디어로 이끌어낸다. 즉 과학실에서 만들었던 드론을 활용한다거나, 방송실과 음악실에서 음향과 악기를 활용하고, 도서실에서 책장을 또 체육관에서 공을 담아두는 카트를 활용하는 식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살아남은 학생들이 고립된 공간에서 침투해 들어오려는 좀비 떼들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는 과정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K좀비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좀비 액션 스릴러 연출이 그 어느 나라의 그것과 비교해도 다이내믹하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압권으로 꼽히는 급식실에서의 액션은 원 테이크로 찍어 역동적인 영상을 만들어냈는데 이를 위해 며칠 간 리허설을 반복하는 수고를 들였다고 한다. 또 도서실에서 달려드는 좀비 떼들과 빌런 학생의 공격을 모두 피해 다니며 사투를 벌이는 압도적인 액션 역시 촬영에만 사흘이 걸릴 정도로 공을 들인 결과라고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하지만 이런 액션 연출이 더 빛을 발하게 되는 건 다름 아닌 안무가들까지 동원되어 실감나게 표현되는 좀비 액션과 이를 놀라울 정도로 리얼하게 연기해내는 배우들의 노력이 있어서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는 특히 교실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 벽처럼 쌓인 책장 사이를 비집고 나오려는 좀비 떼들의 액션이 소름 돋는 명장면들을 만들었다.

K좀비가 전 세계를 감염시키는 첫 번째 요인은 바로 이러한 공간 활용과 색다른 액션 연출을 통해 좀비 장르 고유의 맛과 로컬 색깔이 더해진 차별적인 맛이 짜릿한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소 자극적이고 선정성 수위도 높은 이러한 재미만이었다면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을지는 몰라도 평단의 호평까지 만들지는 못했을 게다. 그래서 두 번째 요인이 중요해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장르물을 가져오지만 거기에 사회적 함의, 즉 생각할 거리를 담아내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특히 의도적인 의미화와 메시지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한국의 입시교육 문제, 학교 폭력, 빈부 격차 같은 문제에 대한 환기가 그것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나 소품들은 이 작품이 '잘못된 기성세대들의 시스템이나 선택'으로 인해 무고한 아이들이 그 피해를 겪는 스토리로 읽게 해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라는 플랫폼과의 찰떡궁합

여기서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과의 공조를 빼놓을 수는 없다. 물론 넷플릭스 역시 K콘텐츠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는 대의가 아니라 비즈니스로서 선택한 것들이지만, 그 공조가 만들어낸 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킹덤'에서 이미 드러난 것처럼 넷플릭스는 'K좀비'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로컬의 글로벌화'라는 마케팅에 제대로 맞아 떨어진다는 걸 일찍부터 알아차렸다. 즉 '워킹데드' 같은 스테디한 인기를 끌고 있는 좀비물처럼 OTT라는 플랫폼에서 좀비 장르는 애초의 B급 장르가 더 이상 아니었다. 마니아들의 취향이 오히려 글로벌 시장 안에서는 더욱 강력한 팬덤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좀비 장르가 증명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좀비물 '킹덤'은 좀비 장르를 하되 무언가 분명한 차별점(로컬의 색이 살아 있는)이 있는 작품이라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걸 확인시켜준 작품이 됐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한국의 학교가 보여주는 차별적 요소들(공간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또 경쟁적인 분위기까지)을 잘 연출해낸 좀비물로 전 세계인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흥미로운 건 우리에게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 속 아이들의 모습이 해외에서는 저마다 겪은 다른 트라우마들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일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이 작품에서 "학교 내 총기 난사사건과 코로나19의 그림자가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좀비 장르 같은 재난과 전염병의 은유로 활용되기도 하는 작품의 특징은, 지극히 로컬색이 강한 소재로 그려져도 글로벌한 공감대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가진 '어른들의 잘못으로 위험에 처하게 되는 아이들'이라는 이야기 구조는 현재 세월호 참사나 총기 난사사건 또는 코로나19를 비롯한 갖가지 환경위기처럼 지구촌 모두가 겪는 일이라는 공유지점이 있어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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