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소년범죄, 그 처벌과 훈육 사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 균형 있는 접근으로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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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소년심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소년범죄가 터질 때마다 사회는 들끓는다. 너무나 끔찍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줄을 잇고,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런데 과연 이 문제가 그렇게 단순명쾌할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은 그 질문을 던진다.

◆촉법소년을 다루는 균형 잡힌 방식

"만으로 14살 안되면 사람 죽여도 감옥 안 간다던데. 그거 진짜예요? 신난다."

법정에 선 아이는 이렇게 말하며 진짜 신난다는 듯 웃는다. 이제 13세인 이 소년은 겨우 8세의 초등생을 유인해 살해했다. 게다가 시신까지 훼손해 유기했다. 그리고는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 살해 도구인 피 묻은 도끼를 꺼내들고 자수한다. 자신이 아직 만 14세가 되지 않은 '촉법소년'이라 살인을 저질러도 형사처벌되어 감옥에 가는 게 아니라 소년법에 의해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는 걸 알고 이를 이용한 것이다.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낄낄 거리며 망자를 조롱하는 소년을 보며 피해자 부모는 분노하고 오열한다. 왜 아닐까. 그 어린아이가 끌려가 당했을 공포를 떠올리고, 그렇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데, 아이를 그렇게 만든 가해자는 소년법에 의거 최대 처분이 고작 '소년원 2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소년심판'은 이처럼 소년범죄를 다뤄온 여타의 범죄 스릴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드라마를 시작한다. 촉법소년 사건을 다룬 '리턴'같은 드라마가 그랬듯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사죄를 하기는 커녕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득의의 미소를 짓는 소년범이 주는 끔찍함으로. 그리고 이 소년범을 마주한 채 "나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심은석 판사(김혜수)를 세움으로써 마치 실제 법이 단죄하지 못하는 소년범들에 대한 이 돈키호테 같은 판사의 '사이다 판결'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이것은 '소년심판'의 위장술이다. '재판'이 아니라 '심판'이라는 표현을 제목에 쓴 것도 마찬가지로, 드라마는 일단 소년범죄를 마주했을 때 일반 대중들이 보통 느끼는 분노나 불편함 같은 감정들을 끄집어내고, 거기에 대해 "혐오한다"고 말하는 심 판사를 통해 먼저 공감대를 만든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걸 시작점으로 할 뿐, 좀 더 본격적으로 들어가 소년범죄를 그저 단죄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훈육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게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이를 위해 드라마는 심 판사와는 정반대의 입장, 즉 훈육의 관점을 가진 차태주 판사(김무열)를 배치한다. 실제에는 없는 가상의 소년 형사합의부를 등장시킨 이유다. 실제는 단독 재판으로 판사 한 분이 재판장이 되어 아이들의 처분을 결정하지만, 이 소년 형사합의부에는 재판장과 좌배석, 우배석이 함께 한다는 가상의 설정을 했다. 그래서 우배석으로 심 판사와 좌배석으로 차 판사가 등장해, 처벌과 훈육이라는 서로 다른 관점이 부딪치는 방식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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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소년심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극적 재미와 현실적 고민의 적절한 결합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인물은 당연히 심 판사다. 그는 뻔뻔하게 법정에서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조롱하는 소년범에게 살벌한 눈빛을 날리고, 시원한 일갈도 빼놓지 않는다. 그 시원함은 '사이다 카타르시스'를 일순간 제공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떤 찜찜함을 지울 수는 없다. 그래서 심 판사는 이렇게 말한다. "소년 사건은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돼. 늘 찝찝하지."

그런데 이 찜찜함이 남는 이유는 뭘까. 그건 다름 아닌 그 가해자가 어린 소년들이기 때문이다. 소년들은 물론 스스로 범죄를 선택했지만, 거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주변 어른들이 일조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소년범죄의 전제로서 여러가지 형태로 이뤄지는 가정폭력은 일반적이다. 그래서 그 뒤를 따라가 보면 반드시 이를 방조하거나 심지어 부추긴 어른들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의 뒤에는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아이를 방치한 부모가 존재하고, 입시비리 사건에는 어떻게든 자기 아이만 경쟁에서 이기면 된다는 부모의 욕망이 존재한다. 집단강간 사건 같은 강력사건의 이면에는 심지어 촉법소년으로 제대로 된 죄의 무게를 느끼게 하지 못한 법정의 태만이 자리한다.

따라서 드라마로서 소년범죄라는 소재는 다루기가 쉽지 않다. 물론 그저 극적 재미만을 추구한다면 잔혹한 범죄사실을 보여주고 이에 대한 사이다 결말을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할 게다. 하지만 그것은 소년범죄가 가진 특수한 상황들을 오히려 지워버리고 단순화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실제로 소년법 폐지 청원이 그토록 쏟아져 나오게 된 데는, 언론이 소년범죄를 '잔혹성'에 맞춘 자극적인 방식으로 소비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대중적인 몰입감을 줄 수 있는 극적 구성을 보여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소년범죄에 대한 보다 입체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줘야 하는 두 마리 토끼 잡기의 어려움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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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소년심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이 드라마가 찾아낸 대안

'소년심판'은 놀랍게도 여기서 대안을 찾아낸다. 심 판사는 "나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고 말하고, 실제로 법정에서도 그들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가를 낱낱이 드러내고 추궁한다. 때론 판사의 역할을 넘어 검사가 해야 할 일들, 다시 말해 사건의 증거를 찾아내는 일까지 손을 대 상부로부터 질책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이토록 집요하게 소년범죄를 파고들고 그 죄로 인해 얼마나 피해자가 큰 고통에 빠져있는가를 가해자에게 알려주는 건, 그 궁극적인 목적이 처벌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처벌은 어쩌면 보호관찰이나 소년원 2년 수감 정도에 머물 수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법정에서 소년범으로 하여금 충분히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게 심 판사가 내놓은 대안이다.

심 판사는 새롭게 부장으로 부임한 나근희 판사(이정은)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소신으로 '소년사건은 속도전'이라고 말한데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소년사건이 속도전이라고요? 그래서 애들이 저 모양인 겁니다. 왜 재판을 속도로 처분합니까? 그 속도에 맞춰서 놓쳐버린 아이들 그 피해자들은 대체 누가 책임지는데요? 그거야 말로 일의 효율이 아니라 무책임 아닌가요? 왜 부장님은 사명감이 없으십니까." 다시 말해 그저 빠른 처분만을 내리다 보니 정작 죄를 저지른 소년범들이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지나쳤고, 그래서 훗날 더 심각한 죄를 저지르게 됐다는 거였다.

또한 심 판사는 소년범죄가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그렇다고 소년범이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걸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소년만이 아닌 그 부모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걸 강변한다. "가정이, 그리고 환경이 소년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사실이나 다양한 선택지 중 범죄를 택한 건 결국 소년입니다. 환경이 나쁘다고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진 않죠.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보호자 전원에게도 보호자 교육을 명합니다. 소년은 결코 혼자 자라지 않습니다. 오늘 처분은 소년에게 내렸지만 그 처분의 무게는 보호자들도 함께 느끼셔야 할 겁니다."

'소년심판'은 범죄스릴러나 법정드라마 같은 장르에서 균형잡힌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웰메이드 드라마다. 그저 자극적으로 소비되었다면 오히려 논란만 양산될 수 있었을 작품이지만, 오랜 취재를 통해 작가 스스로 어떤 대안을 내놓게 되면서 이 작품은 균형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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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소년심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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