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전 재산 사기 당하고 백혈병 걸려…"살고 싶지만 피해만 주는 내 모습이 싫다"

이혼 후 외로운 생활 속 아끼던 후배에 1억5천만원 빌려주고 못 받아
지옥같은 나날 속 시작한 새 삶, 이번엔 백혈병이 앞길 막아
돈 없어 골수이식 검사 포기…수면제 털어 넣을 찰나 도와준 동료 떠올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온 김동년(55) 씨가 길거리에 주저앉아있다. 김세연 기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온 김동년(55) 씨가 길거리에 주저앉아있다. 김세연 기자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그냥 죽어라…"

김동년(55) 씨의 친형이 죽으라는 말을 내뱉고는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의 진료실, 김 씨에게 막 '백혈병' 진단이 내려진 참이었다. 형의 말이 진심이 아닌 걸 알지만 치료비가 없는 본인의 상황을 잘 알기에 그냥 죽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의사는 골수 이식을 하랬지만 김 씨는 포기하겠다고 했다. 형도 본인을 도울 수 있는 형편이 안 됐다. 병원을 나서는 길, 형제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사기에 백혈병까지

아내는 15년 전 김 씨 곁을 떠났다. 부부는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아이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김 씨는 입양을 원했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결국 자녀 문제는 갈등의 원인이 됐고 둘은 갈라섰다.

이혼 후 생활은 외로웠다. 형편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돈을 벌었던 터라 아내가 떠난 이후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더욱 필요했다. 그런 김 씨는 30년간 함께 공장을 다닌 후배를 끔찍이 아꼈다. 후배를 가족이라 생각하며 든든한 형 노릇을 했다. 하지만 후배는 김 씨를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다.

후배는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며 김 씨에게 돈을 빌려 달랬다. 김 씨는 의심 없이 돈을 빌려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김 씨의 전 재산인 1억5천만원이 후배에게 가 있었다. 후배는 그 길로 잠적했다. 소송을 진행했지만 차용증을 쓰지 않았던 터라 김 씨는 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전 재산을 날려버렸기에 김 씨는 죄책감과 함께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약은 '시간'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둠의 터널은 어느덧 끝이 보였고 주어진 삶을 살아야 했기에 김 씨는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집값이 저렴한 경북의 시골마을로 들어가 공장에 취직해 새 삶을 시작했다. 150만원 남짓한 월급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하늘은 무심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 씨의 팔다리엔 원인을 알 수 없는 멍이, 항문엔 주먹만한 혹이 생겼다. 백혈병이었다.

◆약으로 버티는 삶

요즘 김 씨는 임상실험 약으로 통증을 버티고 있다. 그는 매주 대구의 병원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온다. 왕복 10만원의 돈이 들지만 극심한 어지러움에 대중교통 이용은 꿈꿀 수 없다. 통장에는 200만원이 전부. 교통비 탓에 이제 치료비마저 내지 못할 처지다.

백혈병 진단 후 김 씨는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형편이 어려운 친형에게 피해를 주기 싫었고 돈을 빌릴 친구도 없었다. 약국에서 수면제 한 통을 사와 입에 털어 넣을 찰나, 그의 소식을 들은 동료들이 "빨리 치료받으라"며 소액의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김 씨는 눈물과 함께 수면제를 그대로 내려놨다. 그는 한 번 더 살고 싶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기로 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완치를 위해서 골수이식이 필요하지만 돈이 없어 수술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의사는 김 씨에게 골수 이식 검사라도 해보길 권했지만 김 씨는 애써 의사의 말을 외면하는 중이다. 수중에 가진 돈이 없는데 괜히 희망만 생길까 두렵다.

그런 그는 매일 적막한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몸이 아프기 전엔 좋아하던 낚시로 외로운 마음을 달랬지만 이젠 10분 이상 걷는 것조차 힘들다. 밥도 챙겨 먹기 힘들다. 기초생활수급비 50만원이 생활비의 전부인데 교통비로 모조리 지출돼 제대로 된 끼니를 먹는다는 건 어느덧 사치가 됐다. 가끔 친형이 가져다준 반찬과 밥이 유일한 식사다.

김 씨는 몸이 회복되면 자신을 도와준 공장 동료들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고 했다. 그날을 꿈꾸며 항암치료제보다 더 쓴 삶의 고통을 견뎌내려 발버둥 치고 있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 없이 피해만 주는 자신의 모습에 삶의 의지는 자꾸만 희미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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