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로 탈출 언제할 거예요?"
동성로의 위기감은 상인들의 입에서부터 나오기도 한다. 동성로 상인 2명 이상이 모이면 인근 부도심으로의 이른바 '탈출각'을 재고 있다는 말을 농담 삼아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런 까닭에 도심인 동성로의 권리금이 인근 교동 등 부도심의 권리금보다 값싼 현상도 나타난다. 동성로에서 5년째 술집을 운영하는 이모(40) 씨는 "즐길거리·볼거리 등 콘텐츠가 없어지면서 확실히 동성로 활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은 동성로를 잘 아는 상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한다"고 했다.
◆'초짜'도, '장사의 신'도 동성로 진입은 머뭇
상권이 살려면 콘텐츠가 많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집객이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동성로는 빈 상가가 대폭 늘어난 탓에 선순환 구조가 사실상 끊겼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상권들은 대체로 엔데믹 분위기를 맞으면서 공실이 난 자리에 새로운 가게로 채워지고 있지만 동성로는 예외다. 왜 그럴까.
'초짜' 사장님들은 동성로가 진입장벽이 높은 상권으로 꼽았다. 코로나 이후 소위 '핫플'에 갔다는 인증샷을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는 게 젊은 세대의 문화가 됐다. 또 낯선 곳보다는 익숙하고 마음에 드는 곳에만 가는 현상도 강화됐다. 높은 임대료를 내고 젊은 세대들의 취향을 저격할 만한 '킬러 콘텐츠'를 개발할 자신이 없는 '초보 사장님'들은 동성로에서 장사를 시작하기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사 수완이 남다른 고수들은 동성로가 아닌 인근 부도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빠르게 입지를 꿰찬 곳은 교동 전자상가거리다. 이 거리는 1990년대 컴퓨터·텔레비전·오디오 등 각종 전자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지만 이후엔 '쇠락한 거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동성로에서 장사 노하우를 키운 젊은 사장들이 코로나19 이후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교동 전자상가거리에 진출했다. 객단가가 높으면서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와인·위스키·하이볼을 파는 가게들이 많아졌다. 분위기 있는 삼겹살 가게나 '사진 맛집'인 카페들도 생겨났다.
옛 흔적이 남아있는 거리와 세련된 가게가 혼합되면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힙(Hip)'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인기를 모았다. 교동거리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신천시장·경북대병원 인근 거리로도 번지고 있다.
◆젊은 감각 맞춰 체질 변화해야
동성로가 대구 1등 상권 타이틀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나온다. 동성로상점가상인회도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면서 '체질 변화'를 이뤄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이준호 동성로상점가상인회장은 "10~20년 동성로는 프랜차이즈·대리점 위주로 성장해왔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먹혀들지 않는 것을 실감했다"며 "젊은 층의 감각에 맞는 특색 있고 즐기는 장소로 변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저가 패션·화장품 브랜드들의 박리다매식 판매 형태도 코로나19 이후 매력도가 떨어졌다. 이 회장은 "'코로나 불황'에도 동성로의 보세 의류·액세서리 가게나 개성 있는 식당·카페는 나름 선전했다"고 했다.
지속된 불황에 작년 초 동성로에서 장사를 접었다는 김성로(55) 씨는 "이대로 유동인구가 줄어들면 결과적으로 '코로나 수혜'를 봤던 가게들도 얼마 가지 못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동성로 상권의 '가게 밀집→집객' 선순환 구조를 되찾기 위해서는 '인풋(Input)'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최영은 대구경북연구원 박사는 "동성로는 코로나 이후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게들이 거의 다 빠져버려서 즐길거리는 없는 거리로 전락했다"며 "민간·공공에서 접점을 찾아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동성로가 대구 교통의 중심에 있는 만큼 다양한 축제·공연 등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상인들은 동성로가 관광특구로 지정되길 바라고 있다. 관광특구로 지정되면 도로·주차장 확충과 조명·간판·조형물 등 시설물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 동성로에서 장사하는 사업자에 대한 창업지원자금도 조성될 수도 있다. 소상공인 개인 차원에서 이뤄지던 홍보나 마케팅도 정부·지자체가 나설 수 있다. 중구는 작년 동성로를 관광특구로 신청했지만 '1년간 외국인 방문자 수 10만 명' 규정이 코로나로 인해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불발됐다. 중구 관계자는 "동성로 관광특구 지정을 역점사업으로 두고 관광 인프라 구축에 무게를 두겠다"고 밝혔다.
김철영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 건물주·임차인들이 십시일반해 거리 활성화를 위한 자금을 모으기도 한다"며 "정부·지자체에서 도와주길 바라고 손 놓고만 있다간 동성로가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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