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철공장에서 근로자 파견이 인정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국내 기업의 하청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원청업체가 제철공장에서 일정기간 이상 일한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이 같은 판결은 원청업체의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하청업체의 관리 책임으로 떠넘기기 급급했던 안전관리에 원청업체들이 상당한 주의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측면에서 크게 반길 만하다. 그동안 제철공장의 안전사고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집중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안전사고 예방에 상당한 파급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28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포스코 소속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포스코 사내 하청 노동자 59명이 지난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 대해 길게는 11년 만에 원고 승소 판결을 한 것이다. 이 판결에 따라 포스코는 2년 이상 일해 온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향후 포스코 노동자로 직접 고용해야 하게 된 셈이다. 법원이 제철 공정 특성상 포스코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의 업무가 분리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뤄져 왔고, 포스코가 전산 관리 시스템을 통해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작업 계획과 순서, 수량 등을 전달하며 근무 태도 관리와 인원 배치에 직접 관여했다는 하청 노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 판결 이후 포스코 등 철강업계는 잇따른 소송의 패소 가능성과 하청 노동자 직접 고용에 따른 부담감을 호소하고 있다. 당장 같은 내용으로 진행 중인 포스코와 현대제철 사내 하청 노동자 3천558명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실제 포스코의 협력·하청업체 노동자 수는 포항제철소와 자회사 등 정규직·무기계약직 전체 노동자 수와 맞먹는 1만8천 명가량. 만약 이들을 직접 고용했을 경우 포스코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연간 1조 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물론 포스코가 이들을 직접 고용하기보다 별도의 자회사를 만들어 협력사 직원을 고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기존 포스코 직원에 상응하는 임금과 복지 수준에 달하는 비용 부담까지는 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반면 하청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경기 등락에 따른 고용 불안을 해소할 수 있고, 이전보다 임금과 복지도 상당 부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겠다.
철강 원청업체와 하청 노동자들의 이런 셈법과는 별개로 필자가 이번 판결에서 가장 주목하는 점은 안전관리 부분이다. 여태까지 철강업계 안전사고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 환경에 집중됐고, 피해 대상도 하청 노동자들이 주였다.
하지만 그동안 원청업체는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사고에 대해 자사의 책임은 회피한 채 전적으로 협력사의 관리 책임이라고 떠넘기기 일쑤였다. 원청업체에 비해 규모가 영세하고 재정이 어려운 협력사는 투자나 인력 등에서 안전관리에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로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원청업체의 직고용이 이뤄질 경우 원청업체들이 안전관리에 더 세심한 신경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때부터는 안전관리의 책임을 더 이상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모쪼록 이번 판결과 잇따른 비슷한 소송의 결과가 국내 제조업 하청 구조 개선과 작업 현장 안전관리 강화에 기여하는 좋은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