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기록적인 폭우가 중부지방을 덮쳤다. 서울은 기상 관측 시작 이후 115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의 비가 하루 동안 쏟아졌다. 동작구 기준 하루 사이 381.5㎜의 비가 쏟아지는 극단적인 날씨를 경험했다.
일부 지하철 역사는 물이 차올라 열차 운행이 중단되고, 대로 한가운데 멈춰선 차들은 흙탕물에 잠겼다. 한반도 아열대화로 국지성 집중호우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순간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느지막이 형성된 장마전선으로 서울에는 이틀간 300㎜가 넘는 폭우가 더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6말7초 장마'라는 공식이 폐기될 처지다.
반면 비를 바라는 남부지방은 고온다습한 '찜통더위'와 녹조 문제로 몸살을 앓는다. 외래종 해충 창궐은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가하는 '역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변화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인구의 91.8%가 도시에서 살 정도로 도시화율이 높아지면서 체감하기 어려웠을 뿐, 농촌에서 기후변화는 눈앞의 현실이다.
대구경북의 기후변화 피해를 취재하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도 아열대성 병해충 피해였다. 온실가스 영향으로 겨울철 기온이 오르면서 아열대성 해충도 한국의 겨울 추위를 견딜 수 있게 된 영향이다.
최근 경주에서 발생한 열대거세미나방이 대표적인 사례다. 왕성한 번식력으로 80종 이상의 식물 잎과 줄기를 먹어치우는 이 해충은 열대 및 아열대 지방에서 서식하는 종이지만 2019년 동아시아로 확산된 이후 국내에도 토착화하고 있다.
열대거세미나방은 지난달 들어서만 경주시 천북면 6천여㎡의 옥수수밭을 비롯해 청송군 파천면 등 6만7천㎡의 면적에서 유충이 발견됐다.
지난해에도 경산, 경주, 포항, 영주 등 10개 지역에서 12만8천여㎡의 농경지가 열대거세미나방의 피해를 입었다. 지난 2020년에는 13만9천707㎡의 면적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2019년 피해 면적이 고령과 경산 등 1만1천695㎡에 그쳤던 점과 비교하면 피해 규모가 해마다 늘고 있는 것이다.
겨우내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진 '꿀벌 실종' 사태 역시 기후변화가 범인으로 지목받는다. 겨울철 이상 고온에 벌통 밖으로 나간 벌들이 큰 일교차를 견디지 못하고 귀환하지 못했다는 해석이 많다. 모기·진드기의 활동 역시 늘어나면서 일본뇌염, 말라리아, 유행성 출혈열 등 질병 위험성도 덩달아 커졌다.
모두 사소해 보이는 1℃ 남짓의 기후변화가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몰고 올 수 있다는 방증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도 이런 점을 들어 기후변화의 위험이 남태평양 섬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지구 온난화가 빠르고 뚜렷해지면서 이 같은 현상이 화석연료나 목축 등 인간 활동이 원인이 아니라는 '음모론'도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를 기후 위기에서 구할 정부나 지자체, 기업, 시민사회의 대응은 여전히 더디다.
산업활동 전과 비교해 지구 온도는 1℃ 상승했다. 지구가 스스로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불가역적 변화'를 맞이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6년 남짓이라고 한다. 이 시한은 우리의 행동에 따라 더 당겨질 수도 늘어날 수도 있다.
환경단체는 플라스틱 줄이기 및 자원순환, 대기전력 차단, 지역 먹거리 이용 등 다양한 탄소중립 행동을 제시하고 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폭염, 가뭄, 집중호우를 일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상의 작은 부분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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