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불릿 트레인’

일본풍 사무라이 판타지와 미국 액션의 만남
캐릭터와 피 흘러넘치지만 긴장감·스피드 느끼기 어려워

영화 '불릿 트레인'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영화 '불릿 트레인'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불릿 트레인'(감독 데이빗 레이치)은 초밥집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느낌의 영화다.

신선하지도 독특하지도 않으면서 질긴 미국식 스테이크의 과잉이 부담스럽다. 브레드 피트의 코믹 연기가 다소 눈길을 끌지만, 사무라이 판타지에 이식된 킬러들의 환장 파티가 너무나 두서없고 어수선하다.

'총알 기차'라는 뜻의 '불릿 트레인'은 돈이 든 알루미늄 케이스를 둘러싸고 일본 초고속 열차 신칸센에 탑승한 킬러들이 벌이는 액션영화다. 늘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투덜대는 킬러 레이디버그(브래드 피트)는 가방을 찾아 기차에서 내리면 되는 아주 간단한 미션을 받고 신칸센에 오른다. 돈 가방을 찾는 것도 쉬웠다. 쌓여 있는 수하물에서 꺼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꾸 이상한 일에 휘말리면서 하차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객실에서 갖가지 사연들이 있는 킬러들을 만나게 된다.

'불릿 트레인'은 일본풍의 배경이 미국 액션물과 만난 영화다. 신칸센을 비롯해 승객, 거리 모두 일본풍이다. 이사카 코타로가 쓴 원작 소설 '마리아 비틀'이 원작이기 때문이다.

데이빗 레이치는 전설(?)의 액션영화 '존 윅'(2015)을 연출한 감독이다. 기계적인 액션에 미적 아이디어를 가미해 마치 안무같은 액션 시퀀스를 선사해 네오 액션 느와르라는 찬사를 받았다. 존 윅 특유의 권총액션은 스피디한 템포와 둔탁한 총소리가 어우러져 역동성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존 윅' 급의 명불허전 액션영화를 기대하지만, '불릿 트레인'은 방향이 다르다. 정통 보다는 킬러들의 수다에 B급 정서를 터치한다. 어설픈 캐릭터들이 계속 떠들면서 장난기 가득 자신들의 일들을 처리한다. 그 이면에는 얽힌 과거의 사연들이 있다. 빠른 플래시백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극의 현란함을 보여준다.

쌍둥이 킬러 레몬과 탠저린, 자신의 결혼식을 살육파티로 만든 장본인을 찾아 복수에 나선 울프, 독으로 사람들을 살해하는 호넷 등 갖가지 캐릭터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레이디버그의 앞을 가로 막는다. 시속 200㎞의 초고속 열차가 전 세계에서 몰려든 1급 킬러들의 격전지가 된다.

이런 스타일은 이미 쿠엔틴 타란티노나 가이 리치가 20년 전에 이미 보여준 것들이다. 가이 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1999), '스내치'(2001) 등이 그랬다. 액션 또한 정교함 보다는 우연에 기대고, 에너지도 약하다.

영화 '불릿 트레인'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영화 '불릿 트레인'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그렇다면 '불릿 트레인'이 지향하는 것은 뭘까. 바로 일본풍 폭력의 이식이다. 야쿠자와 사무라이, 닌자의 래퍼토리를 녹여 넣는 것이다. 맹인 검객 자토이치처럼 지팡이에서 날이 선 칼이 나오고, 그 칼은 원한에 사무친 복수의 검이 돼 원수와 마주한다. 떼로 몰려드는 검은 정장의 야쿠자들은 '킬 빌'에서 브라이드에게 달려드는 '크레이지 88'의 멤버들과 다르지 않고, 10대 소녀 킬러 프린스 또한 암수를 쓰는 닌자의 캐릭터이다.

기무라는 일본 최대의 야쿠자의 2인자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백의 사신'에 의해 조직이 쑥대밭이 되고 보스와 아내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이제 노년이 됐지만 그는 아버지로서, 보스에 대한 충성심으로 그 복수를 실현하려고 한다. 기무라 부자의 복수는 에도시대부터 이어온 일본 특유의 정서를 담고 있다.

총과 칼, 단검, 독, 뱀 등 갖가지 살해 도구들이 난무하고, 살인 또한 피가 철철 넘친다. 그렇다고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긴장이 아니라 폭력의 카타르시스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총알 기차'를 탔지만, 마지막 액션을 제외하고 그 스피드를 느낄 수 없는 것도 아쉬움을 준다.

'불릿 트레인'에는 비지스의 'Staying Alive'와 피터, 폴 앤 매리의 '500miles' 등 추억의 올드 팝송이 나와 잠시나마 귀를 즐겁게 한다. 데이빗 레이치가 기획했던 '노바디'(2021)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쓰인 것 같은 효과를 준다. 쌍둥이 킬러의 끈끈한 형제애를 보여줄 때 사용된 '500miles'은 특히 애잔함을 더한다.

붉은 화투장처럼 난무하는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은 모두 레이디버그로 모아진다. 오해가 부른 참사든, 일시적 동지애든 영화 전편 대부분에서 패를 돌리는 캐릭터가 레이디버그이다. 레이디버그 역을 맡은 환갑을 바라보는 브레드 피트는 쿨하면서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잘 소화해 준다. 산드라 블록 등 몇몇의 거물 배우들이 얼굴을 비춘다.

판타지 가득한 상상 액션을 즐기는 관객에게는 비주얼이 반갑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정통 액션의 묵직함을 기대한 관객이나, 일본풍 사무라이 액션에 싫증을 느끼는 관객에게는 거부감이 들 영화다. 126분.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평론가

영화 '불릿 트레인'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영화 '불릿 트레인'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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