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원·달러 환율 1,370원 돌파…더 가까이 온 'S 공포'

美 연준 '자이언트 스텝' 변수…단행 땐 1400원 돌파할 수도
고환율에 원자재 가격 올라…수입·국내 물가 동반 상승세
경제 성장률 2%대로 진입 땐…경기 침체 속 물가만 오를듯

원/달러 환율이 1,370원을 넘어선 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8.8원 오른 1,371.4원에 마감했다. 장중 1,370원을 돌파한 것은 2009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1,370원을 넘어선 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8.8원 오른 1,371.4원에 마감했다. 장중 1,370원을 돌파한 것은 2009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연합뉴스

미국의 고강도 긴축에 따른 '킹달러'(달러 초강세)로 원·달러 환율이 연일 천정부지로 치솟고 잇다. 5일에는 급기야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4월 1일(고가 기준 1,392.0원, 종가 기준 1,379.5원) 이후 13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1,370원을 넘어섰다.

심지어 주요국 긴축 움직임, 중국발 경기둔화, 원자재 가격 상승과 같은 대외 변수가 산적해 이처럼 환율이 하늘 높게 치솟는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고환율이 고물가·고금리를 낳고 결국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으로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당국 개입성 메시지에도…금융위기 이후 첫 1,370원 돌파

이날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1,362.6원) 보다 8.8원 오른 달러당 1,371.4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일 기록한 연고점(1,362.6원)을 1거래일 만에 다시 경신한 것이다. 이날 환율은 1,365.0원에 개장한 뒤 한때 1,361.7원까지 내렸다가 반등해 1,375.0원까지 고점을 높였다. 고가 기준으로도 2009년 4월 1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심지어 이날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금융·외환시장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관계기관 간 긴밀한 공조 하에 필요시 선제적으로 대응해 시장 안정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구두 개입성 발언을 내놓았지만 고공행진하는 환율에 속수무책이었다.

더욱이 환율 상승을 압박하는 악재가 많아 1,400원을 돌파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가장 큰 변수는 이달 개최하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이다. 미국의 8월 고용·제조업 지표까지 예상보다 양호하게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p〉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이 경우 달러 가치 상승은 불가피하다.

이응주 대구은행 자금운용부 차장은 "기대인플레가 안 잡히고 매수 우위의 달러 수급이 지속될 경우 지루한 고점 경신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이미 환율이 1,340원을 넘어서면서 기존 금융시장의 예측한 범위를 넘어섰다. 시장 불안과 연준의 매파적 메시지로 1,380원을 고점으로 봤는데 이마저도 조만간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연준이 금리 인상을 멈추거나 인하를 할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일종의 오버슈팅(단기 급등)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 역시 일일 차원에서 쫓아가며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차장은 "오는 13일 발표되는 미국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반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인플레이션이 꺾이는 조짐이 보이면 긴축 완화 기대감으로 반락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달러 환율이 1,370원을 넘어선 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8.8원 오른 1,371.4원에 마감했다. 장중 1,370원을 돌파한 것은 2009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1,370원을 넘어선 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8.8원 오른 1,371.4원에 마감했다. 장중 1,370원을 돌파한 것은 2009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연합뉴스

◆킹달러에 무역적자 등 경기 침체 요인 가득

최근의 일방적 달러 강세가 한국 경제에는 커다란 암초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환율 흐름이 수출 증대라는 호재보다는 수입 물가 상승이라는 악재를 더욱 강화하고, 국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또 이러한 흐름을 잡으려 기준금리를 높이는 통화정책을 고민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원화 가치 하락은 수출에 도움이 된다. 수출 업체 매출액이 늘어 채산성이 개선되어서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이와 다르게 움직인다. 불안정한 국제정세로 안전 자산인 달러 가치만 오르고 원화를 포함한 다른 화폐의 가치는 떨어지고,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까지 맞물리면서 수출입 수지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경기 침체가 심화하면 재화 신규 생산도 힘들어져 고용, 소비 등 다른 경제 활동에도 위축을 주는 연쇄 작용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지난 7월 보고서에서 원자재 가격과 환율 변동이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원자재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각각 10% 상승하는 경우 수입은 3.6% 증가하는 반면 수출은 0.03% 늘어나는 데 그친다고 분석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8월 무역수지도 94억7천만 달러 적자였다.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6% 늘어난 566억7천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수입은 28.2% 늘어난 661억5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높은 원자재 가격에 환율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수출 효과보다 수입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역 경제 역시 이러한 흐름에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6월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대구경북 211개 제조업체에 환율 상승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관련 설문을 했는데 '수입비용 부담 증대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고 답한 경우(43.1%)가 '수출 가격 경쟁력이 더 높아져 도움이 된다'는 답변(13.3%)의 세 배였다.

대구상공회의소 관계자도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이 유리하다고 하지만 지역기업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직접 원자재를 수입하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유통되는 원자재 가격이 올라 조달 단가가 오르고, 외국 클라이언트도 환율이 오르니 납품 단가를 낮춰달라고 요청을 하는 등 이중고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 유로화 달러 대비 최저치 기록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유로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5일 한국시간 오후 3시 2분 유로화는 장중 유로당 0.9878달러까지 내려갔다. 유로/달러 환율 추이. 0eun@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끝)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위험↑…외환보유액도 감소세

고환율이 고물가·고금리를 부르고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 침체 속에 물가만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스태그플레이션 경험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올 하반기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2%대 초반까지 떨어지면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고환율이 고물가·고금리를 부르고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 침체 속에 물가만 상승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외환보유액이 한 달 사이 약 22억달러 줄었다.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천364억3천만달러로 집계됐다. 7월 말보다 21억8천만달러 줄어든 것. 외환보유액은 3월 이후 4개월 연속 뒷걸음치다가 7월 반등했으나 다시 한 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달러 강세에 그간 적정 외환보유액 관련 우려가 있었는데 외환보유액 감소세가 이어지자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현재 외환보유액이나 대외 건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달러 평가 절상으로 기타 통화 외화자산의 달러화 환산액이 줄어든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도유정 DGB금융지주 ESG전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경기 침체 이슈가 나오는 건 대외 여건과 풀렸던 유동성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빚어진 것"이라며 "한국은 과거 위기를 거치면서 금융산업의 체질 개선을 지속 추진해 자산건전성·외환유동성 등을 크게 개선했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이유로 대외 여건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픽] 유로화 달러 대비 최저치 기록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유로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5일 한국시간 오후 3시 2분 유로화는 장중 유로당 0.9878달러까지 내려갔다. 유로/달러 환율 추이. 0eun@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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