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내가 만난 북녘 사람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추석이 지났다. 밤이 점점 길어지고 이런저런 생각이 깊어지는 가을이다. 나는 2000년대 초반 남북 공동 학술 행사 관계로 북한 학자들을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다. 당시 통일 문제를 연구했던 나로서는 이들과의 만남이 설레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분단의 세월이 벌써 70여 년을 넘어서 버렸다. 자동차로 하루 이틀이면 돌아볼 수 있는 가까운 북녘땅, 우리는 분단의 장벽 앞에서 오늘도 좌절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주 핵 정책 국가 법제화를 선언하여 또다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우리 측이 남북 이산가족 재회를 제안했지만 북한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이런 때일수록 지난 시절 만났던 북녘의 학자들이 그립기도 하다.

2004년 5월 중국 연변대학 주최 남북 학술회의에 참석하였다. 이 대회에는 북한 공화국 사회과학원 소속 중진 교수들도 대거 참석하였다. 일행 중 6·25전쟁 시 낙동강 전투에서 오른팔을 잃은 북한 역사 연구소 소장 'K원사'도 참석하였다. 북한의 원사는 박사급을 지도한다는 높은 칭호이다. 학자들 간 인식 차이만을 확인한 학술회의였지만 그날 저녁 뒤풀이는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주체 문학 연구소장 G박사는 자신의 주변 이야기를 서슴없이 쏟아부었다. 중국 출장 시 금주령을 선포한 평양의 부인 이야기, 평양산원 개원 후 딸을 낳아 수령님이 아이의 이름까지 하사했다는 자랑도 하였다. 그는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도 구성지게 불렀다. 그날 밤 나는 그에게 2차를 제의했지만 관철되지 못했다. 그들의 하루를 반성하는 '생활 총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원로 학자들까지 반성회를 갖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또 있을까.

2007년 12월 추운 겨울 금강산에서 사회과학자 학술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남북(북남) 관계 발전을 위한 학자들의 역할'이며 회의장은 금강산 현대호텔이었다. 북측에서는 김일성대학 등에서 젊은 교수 20여 명, 우리나라에서는 사회과학자 20여 명이 참석하였다. 불행히도 학술회의는 개회된 지 얼마 안 되어 중단되고 말았다. 남한의 진보적 경제학자 L교수의 '식량 문제도 해결치 못하는 북한'이라는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북측 대표 이종혁 아태부위원장이 국가 존엄인 수령을 의도적으로 모독했다는 것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5시간 만에 회의는 재개되었다. 그날 저녁 만찬장에서 나는 북한 단장인 그를 만났다. 그는 월북 소설가 이기영 선생의 아들이며 서울 출생이다. 그는 만찬장에서도 북한의 '사회주의 강성 대국'은 군사 강국이 최우선임을 강조했다. 나는 경제 건설이 우선이라고 논박하였지만 막무가내였다. 북한의 핵문제가 매우 오래된 설계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08년 6월 MB 정부 초기 베를린의 남북 공동 발표회에 다녀왔다. 북한에서는 학자 두 명과 '평양 예술 소조'가, 남쪽 역시 학자 두 명과 '걸판'이란 연극단이 참석하였다. 그들과 프랑크푸르트까지 보름간 동행했으나 그들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나는 통일을 위한 재외 동포의 역할에 관한 강연을 하였고, 북한의 J교수는 우리 상식으로 이해가 어려운 북한 주체 경제 관련 강연을 하였다. 프랑크푸르트 강연장에서의 질문은 북한 학자들에게 집중되었다. 대학원 정치학과 학생이라는 독일 청년은 '풍요로운 북한에서 탈북자가 왜 많은지'를 신랄하게 질문했다. 옆 자리의 J교수는 처음에는 "탈북자는 없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학생이 독일 신문 보도를 흔들며 재차 질의하자 "탈북자는 없고 공화국 배신자는 있습네다"라고 답변하였다. 장내에 폭소가 터지고 잠시 소란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남북 간에는 이처럼 대화가 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를수록 남북 인식의 이질화는 더욱 커질 것이다. 북녘땅에는 누구나 종교처럼 신봉하고 지켜야 할 당위적 규범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 규범은 실용적 현실과 간격이 너무 크다. 북한에도 시장경제와 정보화에 따라 그들의 실용적 욕망은 점점 커지고 있다. 통일의 과정은 멀고 힘들겠지만 그들과의 대화 통로는 항시 열어 두어야 한다. 남북의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보다는 남북 간 '작은 걸음'인 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만났던 어느 북녘 학자가 몇 해 전 인편에 안부를 전해 왔다. 그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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