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 내당동에 거주하는 A(10) 군은 하교 후 집 근처 놀이터에 들릴 때마다 실망한다. 주변 단독 주택가 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A군의 놀이터는 낙후된 시설 탓에 아이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A군 역시 자신의 놀이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쓰레기가 나뒹구는 바닥과 놀이기구에 적힌 갖가지 욕설을 보면 기분이 '팍' 상한다.
홀로 남겨진 A군은 놀이터 바닥에 기어 다니는 벌레만 구경하다 좀처럼 오지 않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엄마 손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A군은 "옛날엔 이만큼 더럽지 않았는데, 내 놀이터가 없어진 느낌"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대구 어린이들이 '놀 권리'를 잃고 있다. 놀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공공 어린이 놀이터는 갈수록 낙후되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들은 입주민 자녀가 아니면 접근이 어렵다. 부족한 놀이 공간을 대신해 생겨난 고가의 유료 어린이 시설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놀 권리가 차등받는 사회적 문제까지 낳고 있다.
6일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에 있는 어린이 놀이시설은 모두 3천551곳이다. 문제는 전체 놀이시설의 절반 이상인 2천24곳(56.99%)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단지 내에 있다는 점이다. 학교·유치원·어린이집 등 교육시설에 있는 놀이시설(815개·22.95%)이 그나마 부족한 놀이시설을 채워주고 있지만 민간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특히 누구나 찾아와서 이용할 수 있는 도시공원 속 공공놀이시설은 혁신도시 신서중앙근린공원 놀이터, 중구 수창공원 놀이터, 달서구 와룡산 선원공원 숲속놀이터 등 481곳(13.54%)에 그친다.
놀이시설 부족은 양극화와 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 최근 지어진 신축 대단지 아파트의 놀이터는 아이들이 즐길만한 다양한 놀이시설이 가득하지만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일부 아파트에선 다른 곳에 사는 아이들은 이용하지 못하도록 배척하는 현상도 빚어진다.
부족한 공공 놀이시설의 부재는 키즈카페, 체험센터 등 다양한 '놀이시설의 외주화'를 가속화시킨다. 오래된 아파트나 도시공원 놀이 시설은 낡고 빛바랜 놀이시설로 아이들에게서 외면받는 탓에 고가의 입장료를 부담할 수 있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즐길 수 있는 놀이 문화가 크게 달라지는 셈이다.
박영준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기본법은 아동의 놀 권리를 위해 건강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라고 명시한다"며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지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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