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문환의 세계사] 알함브라 궁전과 모로코…세계 최초 물시계 만든 이슬람문화

이슬람 석조 조각 예술 백미, 동화 속 궁전 누가 건축했나?
세비야·그나나다·코르도바 등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780년을 꽃피운 이슬람 유적지
기독교 회복 전쟁 이사벨라 여왕 1492년 나스르 왕국 알함브라 함락
모르코 페스 '알쿠아라윈' 모스크…9세기 대학 교육기관의 역할 담당
1362년 세계 첫 '물시계' 만든 도시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 1232년 그라나다에 세운 이슬람 나스르 왕조의 궁전.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 1232년 그라나다에 세운 이슬람 나스르 왕조의 궁전.

알함브라(Alhambra). 이슬람문화에 대해 잘 몰라도 알함브라 궁전은 귀에 익숙하다. 트레몰로 주법의 감미로운 기타 선율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한 번쯤은 마음을 빼앗겼을 터이다. 스페인 출신 작곡가 타레가의 우수 어린 선율은 알함브라 궁전을 모티프로 삼는다. 알함브라를 건축한 이슬람교도는 1492년 1월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의 기독교 국토회복 전쟁에 패해 모로코로 쭟겨났다.

알함브라 주역들이 모로코로 밀려나던 해 가을 이사벨라 여왕의 후원을 받은 이탈리아 제노아 출신 콜럼부스는 인도를 찾겠다며 항해에 나섰다. 뜻밖에 아메리카에 닿으면서 지구촌 문명의 중심은 서양으로 옮겨졌다. 711년 상륙부터 1492년 축출될 때까지 모로코 출신을 비롯해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와 모로코에 700년 넘게 꽃피은 문화상을 지난 호에 이어 살펴본다.

◆이슬람, 스페인에 700년 넘게 문화예술 꽃피워

스페인 남부지방으로 가보자. 안달루시아라고 부른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로 널리 알려진 도시 세비야, 알함브라 궁전의 그라나다, 고색창연한 중세도시 코르도바 등이 안달루시아 지방에 보석처럼 빛난다. 이슬람 유적이 시내를 아름답고 장엄하게 수놓는다.

스페인 코르도바 대성당 내부 이슬람 건축요소. 785년 건축이 시작돼 11세기까지 증축된 이베리아반도 최재 모스크였다. 1238년 성당으로 개조됐다.
스페인 코르도바 대성당 내부 이슬람 건축요소. 785년 건축이 시작돼 11세기까지 증축된 이베리아반도 최재 모스크였다. 1238년 성당으로 개조됐다.

코르도바 대성당은 말이 대성당이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컸던 이슬람 모스크다. 지금도 이슬람 건축의 독특한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788년 후기 우마이야 왕조(756년-1031년)의 압달라흐만 1세가 건축을 시작해 압달라흐만 2,3세 그리고 히삼 술탄(재위 976년-1009년)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으로 확장한 결과다.

후기 우마이야 왕조 아래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를 학문과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번영시켰다. 천문학과 의술이 발달하고, 중국에서 전파된 제지술이 북아프리카와 이슬람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서유럽으로 넘어갔다. 14세기부터 시작되는 서양의 문예부흥 르네상스는 이베리아 반도를 거친 제지술 덕분이었다.

모로코 출신 타릭 장군의 이슬람 세력이 711년 이베리아 반도 고트 왕국을 정복한 뒤, 700여년 넘게 지배하면서 남긴 문화유산이다.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1232년 그라나다에 세운 이슬람 나스르 왕조의 궁전.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1232년 그라나다에 세운 이슬람 나스르 왕조의 궁전.

◆기독교 국토회복 전쟁으로 이슬람 세력 퇴각

모로코 땅에서는 780년경 토착 베르베르족의 이드리스 왕조에 이어 알 모라비드 왕조, 알 모하드 왕조가 차례로 들어서면서 이슬람 문화를 꽃피웠다. 모로코의 이슬람 왕조는 1031년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해 아랍 출신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트리고 직접 안달루시아를 지배했다. 물론 기독교도의 국토회복 전쟁 레콩키스타(Reconquista)로 이미 이베리아반도 북부는 기독교도 손으로 넘어간 뒤였다.

레콩키스타는 718년 서(西)고트 귀족이 이슬람군을 격파하고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에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건설하며 시작됐다. 10세기 기독교 카스티야 왕국이 성립되고, 1085년 이슬람 세력의 서북쪽 중심지 톨레도를 회복했다. 이베리아반도 북동부 피레네 산맥 부근에서도 기독교도는 10세기 나라바 왕국, 11세기 아라곤 왕국을 세운 뒤, 1118년 요충지 사라고사를 되찾았다.

카스티야는 마침내 1236년 코르도바, 1248년 세비야를 점령해 모로코 기반 이슬람 왕조의 안달루시아 지배를 종식시켰다. 코르도바 대모스크는 1238년 성당으로 문패를 바꿔 달고 오늘에 이른다.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1232년 그라나다에 세운 이슬람 나스르 왕조의 궁전.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1232년 그라나다에 세운 이슬람 나스르 왕조의 궁전.

◆알함브라 궁전 지은 이슬람 세력, 모로코로 이동

안달루시아의 진주 같은 도시 그라나다로 가보자. '눈 덮인 산맥'이란 뜻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 북쪽 분지에 자리한 비옥한 그라나다 평야의 시가지 동쪽에 동화에나 나올법한 궁전이 탐방객을 반겨준다. 이슬람 석조 조각예술의 백미, 알함브라 궁전이다. 이 궁전을 누가 건축했을까?

기독교 세력이 레콩키스타의 맹렬한 기세로 남하할 때 1232년 그라나다를 거점으로 아랍 출신 나스르 왕조가 들어섰다. 나스르 왕조는 모로코 이슬람 왕조와 긴밀히 협력하며 기독교 세력을 막아냈다. 나스르 왕조가 안달루시아 나머지 지역을 통치하며 13세기 알함브라 궁전을 건축했다.

일함브라 궁전에서 정확히 서쪽으로 그라나다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그라나다 대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그라나다 대성당에 알함브라 궁전을 이슬람 세력에게서 빼앗은 여왕이 잠들어 있다. 통합 스페인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이다. 1469년 마드리드 중심의 카스티야 왕국 이사벨라 여왕과 동쪽 바르셀로나 중심의 아라곤 왕국 페르난도 2세가 결혼하면서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탄생했다.

기독교 스페인 왕국은 레콩키스타를 완성시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1492년 1월 나스르 왕국의 내부분열을 틈타 그라나다를 함락시시켰다. 나스르 왕국의 마지막 왕 무하마드 12세는 눈물을 머금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알함브라를 빠져나왔다. 무하마드 12세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어 이동한 곳이 아틀라스 산맥의 모로코 페스다.

모로코 페스의 알 쿠아라윈 모스크. 859년 완공됐으며 이슬람 초기 대학으로도 이름높다.
모로코 페스의 알 쿠아라윈 모스크. 859년 완공됐으며 이슬람 초기 대학으로도 이름높다.

◆모로코 이븐 바투타, 중국 다녀간 중세 최고 지리 탐험가

모로코 페스로 발길을 돌려보자. 859년 완공된 알 쿠아라윈(Al Quaraouiyine) 모스크가 오롯이 남아 1천년 넘은 이슬람 숨결을 들려준다. 무엇보다 석조 조각술이 그라나다 알함브라와 닮은꼴이어서 장엄하고 화려한 이슬람 건축과 조각문화의 진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789년 건설된 페스의 초기 정착자는 튀니지와 이베리아 반도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아랍계 이슬람교도다.

수준 높은 아랍 이슬람문화의 정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튀니지 기반의 파티마 왕조가 만든 알 쿠아라윈 모스크는 교육기관 마드라사(대학)으로도 이름 높다. 12세기 유럽에서 대학이 처음 등장하기 전 이슬람 문명권에서 9세기 먼저 생겼다. 튀니지 케루안과 모로코 페스의 대학은 초기 이슬람 대학으로 유명하다. 12세기 페스는 인구 20만명이나 돼 당시 지구촌 주요 도시로 손꼽혔다.

페스 대학에서 공부한 이슬람 지리 탐험가가 있으니 이븐 바투타다. 1304년 대서양 연안. 탕헤르에서 태어난 바투타는 22살 메카 순례여행을 떠난다. 바투타는 메카를 넘어 무려 27년간 북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 터키, 중앙아시아, 인도를 거쳐 말레이반도와 중국까지 다녀온다.

고향 모로코로 돌아와 『도시들의 진기함, 여행의 경이 등에 대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란 책을 1356년에 쓴다. 이보다 60여년 앞선 베네치아 마르코폴로의 『동방 견문록』을 뛰어넘는 역작이다. 헬레니즘 시대 불가사의로 평가받던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도 기록에 남겼다. 과학자 리차드 헤닝은 바투타를 고대와 중세 가장 위대한 여행가라고 평가한다.

세계 최초 물시계 복제품. 1365년 모로코 페스에 설치됐다. 24개의 물잔을 달아 1시간 단위로 시간의 흐름을 알수 있도록 했다. 이스탄불 이슬람 과학기술 박물관
세계 최초 물시계 복제품. 1365년 모로코 페스에 설치됐다. 24개의 물잔을 달아 1시간 단위로 시간의 흐름을 알수 있도록 했다. 이스탄불 이슬람 과학기술 박물관

◆모로코 세계 최초 물시계 만들어

모로코 페스는 세계 최초의 물시계를 만든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362년 만들어졌으니 조선 세종의 명으로 1434년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 자격루보다 74년 앞선다. 장영실의 자격루는 항아리에 물이 차면 쇠구슬이 움직여 징이나 북을 치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모로코 페스의 물시계는 건물 형태다. 건물 지붕 아래에 24개의 물컵을 설치해 1시간마다 1개의 컵에 물이 차 움직이도록 설계됐다.

모로코 페스의 물시계는 모스크에서 하루 5차례 행하는 기도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마치 고대 로마에서 신전의 의식시간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 해시계를 설치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학문과 예술이 발전했던 모로코는 15세기 이후 포르투칼, 스페인, 프랑스에 밀리며 결국 19세기 말 프랑스와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가 1956년 독립해 오늘에 이른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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