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풍(文風)부는 대구, 명과 암] "개인 문학관은 안돼", "계파 뛰어넘는 트렌드 맞춰야" 문화공간 설립 둘러싼 엇갈린 반응들

개인 위한 문화 공간은 콘텐츠 부족 한계 생겨
한 문인 작가에 대한 3~4개 계파 통합할 필요도
2023년 트렌드에 맞는 문화 공간 설립해야

대구 북구 동천동 이태원 문학관.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 북구 동천동 이태원 문학관.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올해 대구에 본격적으로 부는 '문풍'(文風·문학관 및 문화 기념관 건립 움직임)을 두고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시민과 문학, 역사 등 '문화'가 더 밀접해진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있지만, 단순 개인, 계파를 뛰어넘은 트렌드에 맞는 문화 공간 조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개인 인물 관련 공간은 한계 드러나"

"계속 문학관을 찾을 만한 요소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지난 17일 찾은 대구 북구 동천동에 조성된 소설가 이태원 문학관. 노란색 단층 컨테이너 건물 겉에 그려진 이태원 소설가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문학관 내부에는 이태원 소설가가 펴낸 책과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 샤프와 볼펜 등 이태원 소설가 애장품 등이 유리관 안에 전시돼 있었다. 다소 작은 규모의 문학관을 모두 둘러보는 데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곳을 함께 찾은 일부 시민은 문학관을 금세 돌아보고 나서는 모습이었다.

지난 2020년 행복북구문화재단은 대구 칠곡3지구 중심상권 보행자 전용도로를 대구 출신 소설가의 이태원의 이름을 담은 '이태원길'로 재탄생시켰다. 이태원 소설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태원 문학관과 영상관을 설치했고 인근에 버스킹존과 토요문화골목시장 운영도 함께 나섰다.

북구문화재단은 매년 약 2억원을 투입해 이곳에서 문학 프로그램, 거리 연극, 관광 투어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전체 예산 중 약 10%인 2천만원가량이 이태원문학관 운영비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 문학관을 찾는 관람객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지난 2020년 개관 당시 2천301명을 기록한 관람객은 2021년 8천357명에 이르렀으나 지난해 7천903명으로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일부 시민은 '콘텐츠 부족'을 이유로 꼽는다.

이태원문학관을 찾은 시민 A(44) 씨는 "노란색 문학관 외형이 눈에 띄어 아들과 이곳을 찾았다. '이태원'이 소설가 이태원을 말하는 줄 몰랐는데, 대구 지역 출신 작가라니 놀랍다"며 "하지만 문학관은 아이와 볼 수 있는 내용이 적어 한 번 휙 둘러보면 끝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이 같은 문제는 예견됐다는 지적도 있다. 소설가 등 개인에 집중하는 문학관의 경우 콘텐츠 구성에 한계가 반드시 발생한다는 것이다. 개인 문학관보다 지역 출신 전체를 조명할 수 있는 문학관 조성이 콘텐츠 개발 등에 있어 더욱 효과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위발 대구경북작가회의 지회장은 "개인 문학관보다는 지역 문학관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 문학관이 돼버리면 스토리나 콘텐츠가 한정돼 버린다"며 "지역 출신 문인들이 많은데, 이외 작가들의 문학관을 또 따로 만들 수 없다. 아주 유명한 인물이 아니면 위상은 사라져 버린다. 특정 인물에 대한 문학관을 지으려면 인근 생가 등을 연계한 콘텐츠 발굴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중구 남산동 이육사 기념관.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 중구 남산동 이육사 기념관.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계파를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가나 문화 인물에 대해 나뉘어진 계파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특정 유명한 작가에 대해서 계파가 3, 4개로 나뉘어진 경우가 많기에 문인들의 목소리가 흩어져 아쉬움이 크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동일 인물을 대상으로 소규모 문학관 등이 여기저기 생기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지역 문화계 A관계자는 "문학관이나 역사관들이 많이 생겨 지역 문인들이 많이 거론되는 건 좋은 일이나, 유명 작가에 대한 계파가 나뉘어 문인들이 파벌화돼 각자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다"며 "문학관이나 역사관 건립에 있어 하나의 목소리를 내어야만 제대로 지어질 수 있다"고 했다.

문화계 B관계자는 "이육사 인물이 가지는 의미가 워낙 크기에 기념관을 여러 곳에 만들어 보존해야 한다는 시선도 있지만, 기념관마다 콘텐츠 등이 비슷한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도 많다"며 "동일 인물에 대한 기념관을 짓더라도 특색이 명확하게 구분되도록 건립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 북구 동천동 이태원 문학관.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 북구 동천동 이태원 문학관.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트렌드 못 읽는 공간은 그만

문화계는 군위군의 대구 편입으로 인해 문학 또는 문화 관련 기념관이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삼국유사 등 군위군이 지닌 콘텐츠가 많아서다.

다수의 전문가는 건립이 점쳐지는 문화 공간이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 명소가 될 수 있도록 문화 트렌드에 맞게 조성될 필요가 있다며 입을 모은다.

문화계 C관계자는 "단순 대구에서 만든 문학관, 기념관 등을 넘어서 한국 전체의 문학, 문화예술 트렌드에 맞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아카이빙, 문학 프로그램, 기획, 전시 등을 여전히 옛날 방식 그대로 하니, 아무리 큰 예산을 투입해서 전국 명소화가 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문학관 등이 전국 명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조성 당시부터 전문가와 시민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체계적인 그런 과정이 없이 지어진 문화 공간들은 콘텐츠 부족 등으로 시민들에게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계 D관계자는 "문학이나 문화 관련 공간은 관람객이 와서 어떤 울림을 느끼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요소들이 없는 이상 관람객들의 재방문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현재 지자체장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문화 공간들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획 단계부터 깊은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 공간이 지속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숱한 문화 전문가, 교수들, 시민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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