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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문예광장] (시) 너랑 나랑/ 김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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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너랑 나랑' 관련 사진

마주보기로

별별 나무들 그런대로 잘 살고 있다

햇살이 숲의 옆구리 찌르기 전

저체온 개미들

이리저리 햇살 물어 날라

숲을 부풀리고 있다

인근 공단 매연에도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산나리꽃

들이쉰 숨 답답할 때

발뒤꿈치에 풀벌레 소리 가두는 숲

쉰 목청으로 다가갈 때도

날마다 새롭게 지저귀는 새가 있다

익은 열매는 저 혼자 익었다고 말하지만

장맛비가 허기 스위치 눌러준 걸 알면

끄덕끄덕 저녁의 밥상은 평화

낯선 미세먼지 종일 마신 숲은

칫솔모 되어 노을 문지르고

◆시작 노트

너랑 나랑은 내가 아는 사람과 자연 그리고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그려보고 싶어 쓴 시다 어쩌면 조금 시크하게 묘사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엮어가는 이미지의 선을 따라가보자.

개미들이 이리저리 햇살을 물어 나르며 숲을 부풀리고 있는 동안 미세먼지는 도시를 막다른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자연은 그런 하루를 파닥이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산나리꽃 풀벌레 새들은 매연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날마다 새롭다.

익은 열매가 저 혼자 익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햇살에 감사한 적 있었는지 돌아보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시인이 가져야 할 덕목처럼 나는 본능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자연의 대상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수시로 관찰하였다.

어느 날 숲길을 걷다가 발밑에 놓인 잎을 오래 바라본 일이 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 작은 흔적에도 햇살과 바람 흙의 이야기가 겹겹이 스며있었다. 그 순간 나는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한 평화를 느낀다.

너랑 나랑이라는 제목 속에는 사람과 자연이 나누는 오래된 대화가 있다. 내가 말을 건네지 않아도 자연은 이미 답하고 있었다. 그 조용한 응답을 오래 듣고 싶어서 나는 이 노트를 쓴다.

다만 나의 물음이 바람 한 자락이라도 붙들려는 데서 비롯되지 않기를 바란다. 칫솔모가 되어 지는 노을을 문지르는 숲처럼, 작은 평온이 큰 행복을 주 듯, 그렇게 그려 보고 싶었다.

김건희 시인
김건희 시인

◆신영조 약력

-2018년 '미당문학' 신인작품상

-2016년 동서문학상 제1회 해동공자 최충문학상 수상

-시집 '두근두근 캥거루' ' 오렌지 낯선 별에 던져진다면'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원, 대구문인협회재무국장

'미당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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