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저희 곁을 떠나시고 일곱 번째 봄이 찾아왔네요. 떠나실 때도 이맘때처럼 따스한 봄날에 떠나셨지요. 그래서일까요, 따뜻한 봄이 되면 어머님 생각이 참 많이 납니다.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던 그날은 아직도 잊어지지 않습니다. 하필 그날 마늘 농사 일 때문에 바빠서 오후 늦게서야 어머님을 뵈러 갔었죠. 한 주 전에 갑자기 심장이 나빠지면서 안동에 있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신 터라 항상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날은 농사 일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었던 때였습니다.
중환자실 면회시간 끝나기 얼마 전에서야 겨우 도착해 어머님의 병세를 살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왜인지 어머님의 손과 다리를 묶어놓았길래 불편해 하시는 것 같아 묶여있던 손과 다리를 풀어드렸습니다. 그제서야 어머님은 "이제야 살 것 같다"고 힘겹게 한 마디를 하셨죠.
그리고 어머님은 저를 보며 "마늘 농사 일은 다 했니?"라고 물어보셨고 저는 그날 했던 농사 일에 대해 말씀을 드렸지요. 제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어머님은 음료수를 조금 마시시고는 "그래, 이제 농사 걱정은 잊어도 되겠구나"하시며 편안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머님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면회시간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오후 10시쯤 됐을까, 그 때 병원에서 어머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고 연락이 와서는 그 길로 내달렸지만 어머님은 숨을 거두셨으니까요.
어머님을 볼 때마다 저는 어머님이 이 집안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열심히 사신 모습을 그려보곤 했습니다. 재혼으로 결혼해서 시집을 와 보니 육남매를 키워야 했고, 거기에 시동생까지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상황. 아버님 한 사람 믿고 온 시집인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생전에 아침에 "내가 죽을 때는 자식들 고생 안 하게 너무 아프지 않고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지요. 이 기도에 어찌 보면 남의 자식이지만 자기 자식처럼 아끼는 어머님의 사랑을 진하게 느낍니다.
슬하에 자신의 자식이 없으셔서였을까 저희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손자까지도 알뜰살뜰히 돌봐주셨었지요. 생전에 감사함을 표했으면 좋았으련만 돌아가시고 나니 이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항상 손자, 손녀들이 착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지금 제 자식들이 각자 자리에서 제 역할 하는 걸 보면 어머님에게 늘 고맙습니다.
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예전에는 어머님과 저의 관계가 일반적인 고부관계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나이가 어머님의 나이에 가까워져 가면서 어머님과의 일을 되돌아보면 어머님이 저를 많이 사랑하셨음을 깨닫습니다. 어머님의 병간호를 제가 많이 맡았는데 어느 날 "아플 때 돌봐주는 며느리가 제일 낫다"고 하셨었지요.
저는 요즘 마늘 농사도 잘 짓고 있고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영남이공대 사회복지서비스과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또 이웃에 소설을 쓰시는 분이 계시는데 저와 어머님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한 권 써 주셨어요. '가도실 칸타타'라는 제목의 책인데 어머님이 집안에 시집오면서 겪었던 이야기, 이후 자식들이 장성하고 어머님이 연로해지면서 겪었을 감정 등등이 소설로 표현됐더라고요. 어머님의 이야기를 소설로 다시 읽으니 많은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어머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감동을 줄 수 있으니 어머님의 생전 고생이 고생으로만 끝난 건 아닌 듯합니다.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님, 저는 어머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머님이 숱한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비록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닌데도 잘 키워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 모습은 아마 없었겠지요. 그 덕분에 어머님과 함께 보냈던 나날들이 좋은 기억과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머님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삶을 사셨어요. 저희들을 떠나간 그 곳에서는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 사랑하고 정말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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