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로 입을 가리지 않아도 되니 좋다. 모처럼 나온 대구수목원에서 붐비는 사람들을 보는 게 고맙고 또 고마웠다. 계절에 맞춰 피고 지는 꽃이며 무성한 잎을 보는 것도 행복하다.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산책하는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는 안다. 2020년 2월과 3월 이곳 수목원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거리엔 사람도 차도 한산하고, 불 꺼진 상가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봄이 왔으나 봄이 먼 봄날이었다.
"가게 앞에 있는 대구의 중심 달구벌대로도 텅 비었다. 차도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인근 무료급식소까지도 문을 닫아 식사를 하러 오던 노숙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도심이 적막강산이었다. 가게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는 방역작업이 끊이지 않았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십 년 넘게 도심 중심가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했지만 이렇게 도심이 텅 빈 적은 처음이라는 마트 대표의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다. 한 시대, 같은 봄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곧 모두의 이야기면 역사가 된다. 대구라는 지역에서 펴냈지만 분명 시대적 의미가 큰 책,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책을 만든 학이사 신중현 대표는 "각기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대구 시민 51명의 아픔을 모았다"고 머리말에 밝히며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진심은 힘이 세다. 진심은 역경의 현실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발행한 신 대표의 기획은 탁월했다. 대구 시민의 개인적 기록들이지만 우리 모두의 기록이기도 하다. 전 국민, 나아가 전 지구적 문제였던 바이러스를 이겨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구 시민의 한 사람인 게 자랑스럽게 한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했을 뿐이지만 세계 공통의 화두를 푸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읽다 보면 내 얘기인 듯 단숨에 읽게 되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각자 다른 모습, 다른 공간에서 방법은 다르지만 공공의 적 앞에 마음을 모으는 우리의 저력은 막강하다. 조용하게 자기의 삶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이 책을 살리는 숨이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고마웠다.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마웠다." 신 대표의 이 말이 내 안에서도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 다시 봄이다.
강여울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