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신중현 엮음/ 학이사/ 2020)

마스크로 입을 가리지 않아도 되니 좋다. 모처럼 나온 대구수목원에서 붐비는 사람들을 보는 게 고맙고 또 고마웠다. 계절에 맞춰 피고 지는 꽃이며 무성한 잎을 보는 것도 행복하다.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산책하는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는 안다. 2020년 2월과 3월 이곳 수목원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거리엔 사람도 차도 한산하고, 불 꺼진 상가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봄이 왔으나 봄이 먼 봄날이었다.

"가게 앞에 있는 대구의 중심 달구벌대로도 텅 비었다. 차도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인근 무료급식소까지도 문을 닫아 식사를 하러 오던 노숙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도심이 적막강산이었다. 가게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는 방역작업이 끊이지 않았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십 년 넘게 도심 중심가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했지만 이렇게 도심이 텅 빈 적은 처음이라는 마트 대표의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다. 한 시대, 같은 봄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곧 모두의 이야기면 역사가 된다. 대구라는 지역에서 펴냈지만 분명 시대적 의미가 큰 책,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책을 만든 학이사 신중현 대표는 "각기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대구 시민 51명의 아픔을 모았다"고 머리말에 밝히며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진심은 힘이 세다. 진심은 역경의 현실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발행한 신 대표의 기획은 탁월했다. 대구 시민의 개인적 기록들이지만 우리 모두의 기록이기도 하다. 전 국민, 나아가 전 지구적 문제였던 바이러스를 이겨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구 시민의 한 사람인 게 자랑스럽게 한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했을 뿐이지만 세계 공통의 화두를 푸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읽다 보면 내 얘기인 듯 단숨에 읽게 되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각자 다른 모습, 다른 공간에서 방법은 다르지만 공공의 적 앞에 마음을 모으는 우리의 저력은 막강하다. 조용하게 자기의 삶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이 책을 살리는 숨이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고마웠다.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마웠다." 신 대표의 이 말이 내 안에서도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 다시 봄이다.

강여울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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