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극재 정점식 화백이 남긴 예술·삶에 대한 사유…미술에세이 선집 출간

정점식 지음/ 아트무빙 펴냄

고(故) 극재 정점식 화백. 차규선 작가 제공
고(故) 극재 정점식 화백. 차규선 작가 제공
2019년 계명대 행소박물관에서 열린
2019년 계명대 행소박물관에서 열린 '다시 보는 극재의 예술세계' 특별전. 계명대 제공
정점식 미술에세이 선집 1편 예술의 밀어, 2편 삶의 평형과 예술. 도솔문화원정점식기념사업단 제공
정점식 미술에세이 선집 1편 예술의 밀어, 2편 삶의 평형과 예술. 도솔문화원정점식기념사업단 제공

어른다운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다. 사회의 중심을 잡아주는, 존경하고 따를만한 인물의 통찰력 있는 한 마디가 필요한 때다. 이런 시기에 대구 미술계가 진정한 어른으로 추앙하던 극재 정점식(1917~2009) 화백의 미술에세이 선집(選集) 두 권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경북 성주 출신으로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를 졸업한 정 화백은 한국 추상화 1세대 작가다. 모던아트협회, 신상회, 창작미협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15회의 개인전을 비롯해 한국현대작가 초대전, 아시아국제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미술의 해 한국 대표작가 파리초대전 등 수많은 단체전에 출품했다.

대한민국청년비엔날레 운영위원장과 이인성미술상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국립현대미술관의 '2004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경상북도 문화상(1959), 은관문화훈장(1998), 이동훈미술상(2005), 대한민국예술원상(2009)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그 시절, 미술계에서 모든 능력을 갖춘 '올라운더(All-rounder)'였다. '본캐(본래 캐릭터)'는 작가였고, '부캐(부 캐릭터)'는 교육자이자 비평가, 에세이스트였다.

교육자로서 그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을 창설하고 후학 양성에 헌신했다. 지역 화단을 넓히고 예술 자원을 풍부하게 만든 그의 공헌은 지금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를 얘기할 때는 '글'을 빼놓을 수 없다. 예술과 문화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은 사유로 담금질한 그의 글은 시대를 꿰뚫는 혜안을 보여준다. 그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으로서 지역 미술평론 활동을 이끌어나갔고, 자신의 문체를 지닌 에세이스트로서 생전 '화가의 수적' 등 4권의 미술에세이집을 펴내기도 했다.

특히 정 화백은 미술에 대한 이해가 바닥이었던 시절, 대구에서 강연과 글쓰기를 통해 국내외 미술계의 동향을 알리는 한편 낯선 현대미술의 확산과 정착에 공을 들였다. 당시 그가 청탁을 받아 쓴 글은 학술지와 학보, 언론매체 곳곳에 실렸다.

이 책은 그 글들 중 일부를 엄선해 갈무리한 선집이다. 그의 제자이자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미술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를 역임한 정민영 씨가 엮었다.

1편 '예술의 밀어'는 ▷아마추어리즘과 전통성 ▷피카소와 이우환 등 국내외 여섯 작가의 작품세계 ▷국내외 미술의 동향 ▷조형예술과 대중문화 등 4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된다. 비평가이자 이론가로서 조형예술과 작가의 작품세계, 대중문화를 사유하는 정 화백의 비평적 안목을 볼 수 있는 비교적 호흡이 긴 글들을 모았다.

그는 윌리엄 블레이크, 앙리 마티스, 폴 클레, 잭슨 폴록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동양의 공간사상과 초월의식을 짚어내고, 팝아트 등을 통해 미국 미술의 리얼리즘과 극사실 전통과 경향도 톺아봤다. 또한 기술의 급속한 발달이 초래한 대중문화의 확산과 상상력과 기술 사이에 선 예술가의 고민 등 현재의 상황과 통하는 얘기들도 볼 수 있다.

2편 '삶의 평형과 예술'은 당대의 주요 문화예술인들과의 교우관계, 미술과 문화의 실상과 허상, 그의 자전적 얘기 등 독자들이 비교적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글들을 담았다. 생활과 세태에 대한 단상, 인간 존재에 대한 통찰 등 격동의 시대를 헤쳐온 예술가의 초상과 경험치로 빚은 사리 같은 생각을 만날 수 있다.

그의 글이 일반적인 비평가의 그것과 다른 점은, 작가로서 직접 예술적 과제를 껴안고 자기만의 해법을 찾아가는 고민 속에 숙성시켰기에 이론 너머의 좀 더 넓은 지점으로 독자를 데려간다는 것이다. 깊은 사색과 그것을 받아안는 밀도 높은 문장은 디지털 시대에도 광채를 잃지 않는다. 작가이자 비평가, 교육자로서 예술과 문화, 삶에 대한 고민과 함께 사색, 수행하듯 펼친 예술의 길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1편 312쪽 2만2천원, 2편 280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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