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다운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다. 사회의 중심을 잡아주는, 존경하고 따를만한 인물의 통찰력 있는 한 마디가 필요한 때다. 이런 시기에 대구 미술계가 진정한 어른으로 추앙하던 극재 정점식(1917~2009) 화백의 미술에세이 선집(選集) 두 권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경북 성주 출신으로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를 졸업한 정 화백은 한국 추상화 1세대 작가다. 모던아트협회, 신상회, 창작미협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15회의 개인전을 비롯해 한국현대작가 초대전, 아시아국제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미술의 해 한국 대표작가 파리초대전 등 수많은 단체전에 출품했다.
대한민국청년비엔날레 운영위원장과 이인성미술상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국립현대미술관의 '2004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경상북도 문화상(1959), 은관문화훈장(1998), 이동훈미술상(2005), 대한민국예술원상(2009)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그 시절, 미술계에서 모든 능력을 갖춘 '올라운더(All-rounder)'였다. '본캐(본래 캐릭터)'는 작가였고, '부캐(부 캐릭터)'는 교육자이자 비평가, 에세이스트였다.
교육자로서 그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을 창설하고 후학 양성에 헌신했다. 지역 화단을 넓히고 예술 자원을 풍부하게 만든 그의 공헌은 지금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를 얘기할 때는 '글'을 빼놓을 수 없다. 예술과 문화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은 사유로 담금질한 그의 글은 시대를 꿰뚫는 혜안을 보여준다. 그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으로서 지역 미술평론 활동을 이끌어나갔고, 자신의 문체를 지닌 에세이스트로서 생전 '화가의 수적' 등 4권의 미술에세이집을 펴내기도 했다.
특히 정 화백은 미술에 대한 이해가 바닥이었던 시절, 대구에서 강연과 글쓰기를 통해 국내외 미술계의 동향을 알리는 한편 낯선 현대미술의 확산과 정착에 공을 들였다. 당시 그가 청탁을 받아 쓴 글은 학술지와 학보, 언론매체 곳곳에 실렸다.
이 책은 그 글들 중 일부를 엄선해 갈무리한 선집이다. 그의 제자이자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미술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를 역임한 정민영 씨가 엮었다.
1편 '예술의 밀어'는 ▷아마추어리즘과 전통성 ▷피카소와 이우환 등 국내외 여섯 작가의 작품세계 ▷국내외 미술의 동향 ▷조형예술과 대중문화 등 4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된다. 비평가이자 이론가로서 조형예술과 작가의 작품세계, 대중문화를 사유하는 정 화백의 비평적 안목을 볼 수 있는 비교적 호흡이 긴 글들을 모았다.
그는 윌리엄 블레이크, 앙리 마티스, 폴 클레, 잭슨 폴록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동양의 공간사상과 초월의식을 짚어내고, 팝아트 등을 통해 미국 미술의 리얼리즘과 극사실 전통과 경향도 톺아봤다. 또한 기술의 급속한 발달이 초래한 대중문화의 확산과 상상력과 기술 사이에 선 예술가의 고민 등 현재의 상황과 통하는 얘기들도 볼 수 있다.
2편 '삶의 평형과 예술'은 당대의 주요 문화예술인들과의 교우관계, 미술과 문화의 실상과 허상, 그의 자전적 얘기 등 독자들이 비교적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글들을 담았다. 생활과 세태에 대한 단상, 인간 존재에 대한 통찰 등 격동의 시대를 헤쳐온 예술가의 초상과 경험치로 빚은 사리 같은 생각을 만날 수 있다.
그의 글이 일반적인 비평가의 그것과 다른 점은, 작가로서 직접 예술적 과제를 껴안고 자기만의 해법을 찾아가는 고민 속에 숙성시켰기에 이론 너머의 좀 더 넓은 지점으로 독자를 데려간다는 것이다. 깊은 사색과 그것을 받아안는 밀도 높은 문장은 디지털 시대에도 광채를 잃지 않는다. 작가이자 비평가, 교육자로서 예술과 문화, 삶에 대한 고민과 함께 사색, 수행하듯 펼친 예술의 길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1편 312쪽 2만2천원, 2편 280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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