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

김이삭 지음/나무발전소 펴냄

10일 오후 배우 현빈 소속사 VAST엔터테인먼트와 손예진 소속사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는
10일 오후 배우 현빈 소속사 VAST엔터테인먼트와 손예진 소속사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는
김이삭 지음/나무발전소 펴냄
김이삭 지음/나무발전소 펴냄

시간을 거슬러 2008년. 기자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북한으로 갔다. 금강산 관광이 막 시작된 시기였고, 교복 차림으로 금강산을 올랐다.

숨을 헐떡이며 열심히 오르던 중 금강산에서 식음료를 팔던 한 북한 언니가 기자 일행 곁으로 오더니 말을 걸었다.

"교복 얼매나 합니까?"

난생 처음 북한 사람이 말을 건네 그럴까. 일행은 모두 침묵했다. 보다 못한 기자가 나섰다.

"20만원이요"

"우와, 20만원이나 합네까?"

북한 언니의 잔뜩 커진 눈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난생 처음 북한 사람과 말을 섞어본 귀한 경험은 성인이 된 지금도 평생 안줏거리로 삼고 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탓일까. 북한 이야기는 늘 인기가 있다. 금강산 관광 시기가 짧게 끝나면서 직접 북한을 경험해봤다는 누군가의 무용담은 더는 들을 수 없게 됐지만, 대신 우리와 함께 사는 북한 이탈주민의 이야기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다. 100만 다문화 시대에서 우리는 3만여 명의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소비되는 그들의 이야기는 한정적이다. 북에서 겪었던 어려움이나 탈북 과정이 사실 전부다. 어쨌거나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그들인데 북한 이주민의 현재는 사실 잘 전해지지 않는다. 3만여 명. 한국 사회에서도 소수 중의 소수라서 북한 이주민과 접점을 찾아내기도 쉽진 않다.

자주 접하지 않으면 편견이 쌓이는 법. 한국에 사는 북한 이주민의 삶을 다룬 조금 특별한 책이 나왔다. 어느 누가 들어도 흥미진진해지는 바로 연애 이야기다. '남남북녀'라고 했다. 남한 남자와 북한 여자가 만나는 이야기가 조금은 더 친숙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아니다. 배우 현빈과 손예진이 주인공인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현실판이다. 남한 여자와 북한 남자, 남녀북남의 연애 스토리다.

어쩌다가 이 둘은 사랑에 빠졌을까. 시작은 대학교였고, 결론은 5년 연애 끝에 둘은 결혼에 성공한다. 주인공이자 책의 저자 김이삭 작가는 중국문화학과에 입학해 수학과인 함경북도 출신 남자친구 '민'을 만난다. 이야기는 '여주' 입장에서 어쩌다 사랑에 빠졌는지로 흘러가는데 그렇다고 드라마처럼 마냥 달콤하진 않다. 여느 연인들의 이야기처럼 달콤했다가도 사회의 편견에 부딪혀 맵기도 하다.

까치는 까치끼리, 까마귀는 까마귀끼리.

북한 사람(까마귀)은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까치)은 남한 사람과 사귀어야 한다는 뜻에서 북한 이주민들이 하는 말이다. 남한 여자와 연애를 한다는 고백에 남주 '민' 역시 북한 이주민 친구로부터 실제로 이 말을 듣기도 한다. 결국 한민족인데도 종(?)을 뛰어넘는 결합은 서로가 서로에게 신기하다. 여주와 민은 그저 연애를 할 뿐인데, 여전히 사회의 시선은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유쾌하게 연애사를 풀어내는듯해도 그 안에서 작가는 '소수인'에 대한 우리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차별과 편견을 지그시 짚어낸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기자도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만약 내가 북한 남자와 연애를 한다면? 어떠한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그 사람만을 바라볼 수 있을까? 가족과 친구들의 시선은 어떨까?

솔직히 장밋빛 상상은 펼쳐지지 않는다. 기자 역시 멀었다는 뜻이다. 2008년 금강산에서 만났던 북한 언니의 놀라움에 내심 '우리는 이만큼 잘 사는데?'라며 마음에 찼던 어떤 철없던 자만심이 뒤늦게 떠올랐다.

이야기했듯 자주 접하지 않으면 편견은 깨트리기 어렵다. 나에게도 현실판 '사랑의 불시착'이 오면 어떨까하는 달콤한 상상에 조금의 주저함이 느껴진다면 이 책을 펴면 된다. 어려운 현실을 느끼라는 게 아니라 이들도 똑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평범함만 느끼면 충분하다. 남녀북남 혹은 남남북녀의 이야기는 많아져야 한다. 196쪽, 1만4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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