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들의 경주 그곳에 가고싶다] <18> 경주감성 교토감성(상)

고즈넉하고 편안한 닮은꼴 '천년 고도' 경주·교토

'기요미즈데라(청수사)'는 교토관광의 시그니처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찰이기도 하지만 기요미즈데라는 사찰로 들어가는 상점가인 기요미즈자카와 산넨자카에서부터 교토감성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다.
'기요미즈데라(청수사)'는 교토관광의 시그니처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찰이기도 하지만 기요미즈데라는 사찰로 들어가는 상점가인 기요미즈자카와 산넨자카에서부터 교토감성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다.

가장 '일본스럽고 일본다운 것', 진짜 일본을 느끼고 싶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교토(京都)를 떠올린다. 오래된 도시가 주는 편안함과 고즈넉함, 넝쿨나무가 온 도시를 뒤덮을 정도로 오래된 천년의 시간을 기억하면서도 정갈하게 잘 관리가 된 듯한 고도가 주는 향기를 맡고 싶을 때 우리는 교토로 향한다.

봄이 절정을 향할 때 우리가 온 도시가 벚꽃으로 가득한 경주를 떠올린다면, 일본인들은 '기요미즈데라'(淸水寺)와 '아라시야마'(嵐山)를 비롯한 교토의 벚꽃 명소로 간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봄날, 만개한 벚꽃 아래 어깨를 맞댄 채 돗자리를 펴놓고 봄볕과 맥주 한 캔 손에 들고 꽃놀이를 즐기는 교토의 '하나미(花見)'는 대장관이다. 하나미는 나라(奈良)에서 교토로 수도를 천도한 이후인 헤이안(平安)시대(794~1185)부터 자리 잡히기 시작한 일본의 전통풍습이다.

'천년고도'는 경주와 교토에 따라붙어 다니는 자연스러운 수식어다. 우리나라에 경주가 있다면 일본에는 교토가 있다. 두 도시는 여러모로 판막이처럼 닮았다.

불국사와 석굴암, '기요미즈데라'(淸水寺)와 긴카쿠지(金閣寺)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불교문화유산은 물론이고 고즈넉하면서도 정갈한 '고도(古都)감성'을 경주와 교토가 모두 갖고 있다.

그래선가 경주에선 교토의 감성을 느낄 수 있고, 교토에 가면 경주가 떠오르기도 한다. 천년고도는 경주와 교토 외에 로마와 중국 시안(西安)도 꼽힌다. 로마제국의 영욕을 지켜 본 로마와 왕조를 달리하면서도 사랑받아 온 시안은 그러나 경주와 교토의 감성과는 달리 웅장하고 투박하다는 점에서 거리가 있다.

기요미즈데라는 청수사로 오르는 언덕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전통가옥을 개조한 상점과 찻집이 많아 옛 일본의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기요미즈데라는 청수사로 오르는 언덕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전통가옥을 개조한 상점과 찻집이 많아 옛 일본의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경주같은 교토, 교토같은 경주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우리나라 도시로는 경주가 꼽힌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 수학여행단도 경주를 자주 찾는다. 그들은 경주에서 정교하면서 소박한 '신라미'(美)를 찾아내는가 하면 천년고도가 선사하는 '케케묵은' 고즈넉함을 즐긴다.

지난 5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방한일정 중 대통령관저 만찬에 대통령실이 내놓은 전통술이 '경주법주'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부부에게 직접 "한국 청주 중에서도 굴지의 천년고도 명주"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초특선'이라는 일본 청주 최고 등급을 붙일 정도로 '경주법주' 초특선은 일본 청주 제조법으로 빚어 일본식 사께라도 해도 다를 바 없다.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구보다 만주'(久保田 萬酒)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경주의 술이다.

일본의 경주 같은, 한국에서 교토(京都)를 여행하듯이 교토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를 통해, 교토를 통해 한국과 일본은 오래전부터 전통과 문화를 교류하고 소통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794년 간무(桓武) 천황이 나라에서 교토로 수도를 이전한 이후부터 1868년 무사정권이 에도(도쿄)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교토는 일본의 수도이자 정치·문화의 중심이었으며 지금도 일본정신의 본향으로 여겨진다.

교토로 천도한 8세기말은 통일신라의 최전성기였다. 경주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 페르시아의 바그다드,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과 더불어 아시아 최고의 도시로 각광을 받았다.

교토는 그때서야 장안을 모방한 계획도시로 출발, 천년고도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두 도시가 천년고도의 감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는 2차세계대전 등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폭격이나 공습을 당하지 않아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문화유적들이 온전하게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요미즈데라(청수사) 경내 풍경
기요미즈데라(청수사) 경내 풍경

교토에는 무려 2,000여개의 사찰이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도 교토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찰은 기요미즈데라다. 헤이안 시대 일본의 국교는 불교였다. 마치 현세의 불국토라 칭하던 신라의 왕경 경주와 버금갈 정도로 온 도시가 사찰로 뒤덮였다. "寺寺星張 塔塔雁行"(절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펼쳐져 있고 탑들이 기러기 떼처럼 줄지어 있다)는 삼국유사에 표현된 경주를 교토로 대체해도 될 정도다. 청수사와 금각사, 은각사, 동복사, 고산사, 용안사, 대각사, 남선사 등 둘러봐야 할 사찰의 숫자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불교유적 뿐 아니라 신사도 꽤 있어 교토에 가면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의 향기를 그저 맡기만 하면 그만이다. 교토의 품격을 대신할 수 있는 기온(祇園)거리를 거닐면서 기모노를 차려입고 가부키화장을 한 얼굴로 출근하는 게이샤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헤이안시대로 들어가는 타임슬랩에 올라 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기요미즈데라

교토에 가면 기요미즈데라(淸水寺)와 기온 거리, 킨카쿠지(金閣寺)와 긴카쿠지, 아라시야마, 니조성 그리고 교토교엔 교토역 뒷골목 정도는 꼭 가봤으면 좋겠다.

'기요미즈데라'는 교토관광의 시그니처다. 교토에 가는 누구나 한 번쯤은 기요미즈데라에 간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찰이기도 하지만 기요미즈데라는 사찰로 들어가는 상점가인 기요미즈자카와 산넨자카에서부터 교토감성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상점들은 교토의 관광상품이라기 보다 교토의 일상적 감성을 가득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기요미즈데라(청수사)입장권
기요미즈데라(청수사)입장권

사찰에 들어가면서 받아든 입장권은 소장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벚꽃이 활짝 피는 봄 입장권에는 벚꽃으로 뒤덮인 기요미즈데라가 있고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하얀 눈에 뒤덮인 기요미즈데라가 있다. 교토감성을 입힌 특별한 입장권이다.

교토의 또 다른 명소인 킨카쿠지(금각사)와 긴카쿠지(은각사) 입장권은 건강과 평안을 비는 부적형태여서 눈에 띄었다. 킨카쿠지같은 사찰에 한 번 입장하는 것으로 일 년 내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부적을 선물 받는 셈이다.

기요미즈데라의 핵심포인트는 기묘미즈노부타이라는 테라스같은 나무데크다. 절벽 위에 지어진 넓은 테라스에 올라서면 교토타워가 솟아있는 교토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천년고찰에서 느끼는 고도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교토타워에 올라서 바라보는 교토시내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20만장의 금박을 입힌 전각이 있어 '금각사(金閣寺)'로 불리게 된 킨카쿠지는 교토여행의 또 다른 명소로 꼽힌다.
20만장의 금박을 입힌 전각이 있어 '금각사(金閣寺)'로 불리게 된 킨카쿠지는 교토여행의 또 다른 명소로 꼽힌다.

◆킨카쿠지와 긴카쿠지

20만장의 금박을 입힌 전각이 있어 '금각사(金閣寺)'로 불리게 된 킨카쿠지는 교토여행의 또 다른 명소로 꼽힌다. 화려한 자태로 번쩍거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침햇살을 받으면서 작은 연못가에 자리 잡은 금각은 우아하고 기품있는 금각이었다. 산책을 하듯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고 '합격'구호를 붙인 부적을 사거나 건강을 빌면서 향을 피우는, 사찰을 찾는 일본인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단풍이 물든 가을이나 눈 내린 설경의 금각도 꽤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킨카쿠지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여러 번 올렸던 작각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로도 유명하다. 기요미즈데라와 킨카쿠지, 그리고 긴카쿠지를 둘러보면 어느 사찰을 가더라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찰들과는 사뭇 다른, 교토사찰의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교토를 교토답게 하는 풍경은 기온 (祇園)이다.매일같이 총총걸음으로 게타를 신고 출근하는 게이샤와 게이코들을 만날 수 있다.
교토를 교토답게 하는 풍경은 기온 (祇園)이다.매일같이 총총걸음으로 게타를 신고 출근하는 게이샤와 게이코들을 만날 수 있다.

◆기온, 교토의 품격

'교토를 교토답게 하는 풍경'은 누가 뭐라고 해도 기온(祇園)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일본의 3대 축제 중 하나인 '기온마쓰리'(祇園祭)로 익숙한, 기온에 가면 매일같이 총총걸음으로 게타를 신고 출근하는 게이샤와 게이코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면 수백 년 전부터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에도시대의 고급요정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이른 저녁 시간에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게이코들이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친 모습도 색다른 볼거리다. '게이샤의 추억'같은 영화속 장면으로 빠져들어 갈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을 기온은 연출하고 있다.

천년수도로서의 위용을 뽐내는 곳은 교토교엔(京都御苑)이다. 하나미로도 유명한 교토의 벚꽃 명소 중 한 곳이기도 한 교엔은 지난 천년 동안 일왕이 거주하던 교토의 심장이자 황궁인 교토 고쇼(御所)를 한 가운데에 갖고 있다. 일왕의 각종 행사가 종종 이곳에서 벌어지기 해서 교토고쇼를 보려면 궁내청사무소에 사전 예약신청하고 가이드를 따라 관람을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전 예약 없이도 현장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됐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청와대 관람이 떠올랐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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