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음악텐트에서 26일 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이 울려 퍼졌다.
올해로 20회째를 맞은 평창대관령음악제의 개막공연은 관객들에게 거대한 산을 오르내리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자연'을 주제로 삼은 음악 축제의 시작을 알리기에 탁월한 곡이었다.
이날 개막공연 2부를 꽉 채운 알프스 교향곡은 슈트라우스가 열다섯에 경험했던 고향 독일 뮌헨 근처의 알프스 산행을 녹여낸 곡이다. 악장 구분 없는 교향곡으로 악보에 '숲속으로', '꽃밭', '길을 잃어버리다', '정상', '피어오르는 안개', '일몰' 등 22개 섹션이 표시돼 있다.
지휘자 최수열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이어지며 섹션이 바뀔 때마다 공연장의 나무 벽에는 조명으로 해당 섹션의 이름이 새겨졌다. 심벌즈가 힘차게 소리를 내면 '일몰'이 펼쳐지고, 하프 소리가 아름답게 울리면 '폭포의 요정'이 춤췄다.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인 알프스 교향곡은 악기들의 다채로운 소리와 거대한 소리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이 곡에는 보통 때는 무대에 잘 오르지 않는 하프도 2대나 등장하고, 오르간도 한자리를 차지한다. 현악기도 다른 교향곡 편성보다 현저히 많고, 자연의 소리를 내기 위한 윈드머신(풍음기), 선더머신(뇌음기) 등도 동원된다.
윈드머신은 '폭풍우 전의 고요' 끝부분에 등장해 '뇌우와 폭풍우, 하산' 섹션에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는 마치 거대하고 두꺼운 은박지 같은 모양의 선더머신도 힘을 보탠다. 연주자가 선더머신을 흔들면, 밖에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이날의 연주는 공연장의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정식 명칭이 '대관령 야외공연장'인 음악텐트는 돔 형태 공연장의 천장을 텐트와 같은 튼튼한 천막으로 덮은 구조다. 실내 공연장과 유사하지만, 천막과 공연장 벽 사이에 틈이 있어 강원도 산골의 차가운 밤공기가 공연장 안으로 들어왔다.
이 틈 사이로 벌레들이 공연장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비교적 큰 벌레가 조명을 받으며 오케스트라 위를 가로질러 날아가기도 하고, 나방처럼 보이는 작은 벌레가 악기에 앉으려다 연주자가 휘젓는 활에 쫓겨나기도 했다. 얼굴 쪽에 달려든 벌레에 순간 움찔하는 연주자도 있었다.
벌레들의 공격에 연주자들은 괴로웠을 수 있지만, 관객들은 색다른 환경에서 음악을 즐길 좋은 기회였다. 중간 휴식 시간에는 공연장 밖으로 나가 풀냄새를 맡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공연 직전 한바탕 쏟아진 비로 차가워진 산골의 밤공기는 1부 첫 곡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1번' 중 '아침의 기분(Morning mood)'과도 잘 어울렸다. 양성원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이 "맑은 공기의 평창에서 아침 산책하는 느낌을 줄 것"이라고 귀띔했던 곡이다. 아침 산책 대신 밤 산책을 나온 듯한 기분을 안겼다.
1부 두 번째 곡으로 양성원 예술감독이 첼로를 잡고, 주목받는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피아니스트 윤홍천이 선사한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도 공연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양성원 예술감독은 공연 시작 전 무대에 올라 "매 공연 자연과 연관된 곡을 들려줄 것"이라며 "전 세계에 자연재해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자연과 관련된 아름다운 곡들을 들으면서 어떻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자연을 보호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면 뜻깊은 공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다음 달 5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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