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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랑] 홀로 자폐 1급 딸 돌봐야하는데…심장질환에 하반신 크게 다쳐

미혼으로 살다 40살에 만난 연인, 교통사고로 세상 떠난 뒤 아이 생겨
자궁근종 녹여주며 태어난 효녀 딸, 자라면서 행동 굼뜨고 말 어눌
딸 치료 위해 직접 운전대 잡다 교통사고… 목발 없이는 못 걸어

지난해 7월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크게 다친 민귀주(가명·62) 씨는 집 안에서도 목발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몸이 됐다. 윤정훈 기자
지난해 7월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크게 다친 민귀주(가명·62) 씨는 집 안에서도 목발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몸이 됐다. 윤정훈 기자

소중한 사람들은 언제나 영원할 것만 같다. 그렇지 않기에 사는 건 고통이다.

민귀주(가명·62) 씨는 오늘도 좁은 방에 누워 떠나간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옛 고향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모님, 5명의 언니오빠와 5명의 동생들, 할머니가 있고, 밭으로 나가면 파종하느라 바쁜 일꾼들이 보인다. 지금은 집도 사라지고, 밭이 있던 곳엔 공단이 들어서고, 그 많던 사람들은 세월을 따라 흘러가 버렸다. 유일하게 곁에 있던 딸은 자신의 망가진 몸 때문에 시설에 가 있다.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딸을 매만지던 귀주 씨는 굽은 두 다리를 원망하듯 내려다봤다.

◆첫 결혼에 대한 상처… 40살 됐을 때 만난 연인은 황망히 하늘로

귀주 씨는 밭 농사를 하는 부모님 아래 '중간딸'로 태어났다. 위로 언니오빠가 다섯, 아래로 동생도 다섯 명이었다. 나이 서열처럼 집 안에서 귀주 씨가 갖는 지위도 어중간했다. 본능적으로 초조함, 내지는 위기감을 느꼈던 걸까. 귀주 씨는 열렬한 효녀를 자처했다. 농작물을 묶음으로 나누는 데도 기술이 필요한데, 이런 기술이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사람이 너무 안 구해져 부모님 표정은 늘 어두웠다. 귀주 씨는 자신이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조그마한 12살 소녀는 그때부터 밤새도록 마당에 나앉아 야채 단을 묶었다.

그렇게 일만 하다 23살에 중매를 통해 4살 위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최악의 결혼이었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늘 돈 달라, 집 사 달라 노래를 부르며 귀주 씨와 친정을 괴롭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남편은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 귀주 씨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결국 1년 만에 이혼했다. 이때부터 결혼이라면 치를 떨게 됐다. 다시 본가로 돌아간 귀주 씨는 옷 수선집에 취직해 미싱을 돌리고, 틈틈이 농사 일도 거들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40살이 됐다. 어머니를 도와 함께 보살펴 온 동생들이 하나둘씩 결혼해 집을 떠났고, 귀주 씨 홀로 남게 됐다.

시간의 유속에 피멍 든 첫 결혼의 기억도 흘러 내려갔다. 그 대신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시간을 먹고 자라났다. 아는 동네 언니에게 6살 위의 버스 기사였던 남자를 소개받았다. 말도 잘 통하고, 부드러운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이후 3년 정도 만남을 이어갔지만, 결혼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소개해 줬던 언니로부터 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와의 인연은 그렇게 끊겼다. 참 허무했다. 그리고 생리도 끊겼다. 산부인과에 갔더니 임신 5개월 진단이 나왔다. 아버지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귀주 씨는 낙태를 결심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자궁에 근종이 있어 수술이 불가능했다. 그렇게 딸 혜인(가명·22) 씨가 태어났다. 아이러니한 기적도 함께 찾아왔다. 배 안에 아이가 자라면서 자궁 안쪽에 있던 근종이 사탕처럼 녹아 점차 사라졌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엄마를 닮아 효녀였던 혜인 씨가 태어나자마자 효를 행한 것이었다. 그런 착한 딸은 자라면서 다른 아이들보다 행동이 굼뜨고 말이 어눌한 등 여러 문제를 보이기 시작했다. 6살쯤 큰 병원에 데려갔더니 자폐성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집 근처 어린이집은 장애아동을 받아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멀리 떨어진 어린이집을 다녀야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는 특수학교를 보냈다. 언어치료나 미술치료를 위해 각종 센터를 동분서주했다. 처음엔 택시를 이용했지만 혜인이의 돌발 행동이 심해 승차 거부를 당하기 일쑤였다.

◆기적처럼 태어난 딸은 자폐 1급… 최근 교통사고로 딸과 강제이별

귀주 씨는 어쩔 수 없이 53세라는 고령에 운전면허를 따서 중고 차량을 구입했다. 나이를 차치하고서도 귀주 씨는 운전엔 맞지 않는 몸이었다. 출산 이후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데도 심장이 급하게 뛰는 등 심장 질환 증세가 생겨 20년째 약을 복용 중이다. 든든한 울타리였던 아버지, 어머니도 차례차례 돌아가시고 형제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딸을 돌볼 사람은 엄마인 자신뿐이었기에, 귀주 씨는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났다. 지난해 7월 귀주 씨는 차를 끌고 근처 대학병원에서 심장질환 약을 타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터널을 나와 커브 길을 도는 순간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어 가드레일을 곧바로 들이박았다. 딸을 보살피고 치료하는 데 꼭 필요했던 소중한 차가 폐차됐다.

무엇보다 귀주 씨가 하반신을 크게 다친 것이 문제였다. 고관절 수술을 받았지만 귀주 씨는 현재 집에서도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신세다. 왼쪽에 목발을 짚고, 오른팔로 가구들을 띄엄띄엄 짚으며 이동해야 하므로 귀주 씨에겐 화장실 한번 가는 것도 고된 여정이다. 사고로 목도 다쳤다. 이로 인해 오른쪽 손에 감각이 없어 물건을 제대로 못 쥐고 있다. 왼쪽 팔은 아예 힘이 안 들어간다. 그래서 수저도 못 들고, 설거지도 못 하고, 걸레도 제대로 못 짜는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통사고의 원인이었던 갑자기 기절하는 증상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에도 귀주 씨는 집 입구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뇌전증이 의심되는 상황이지만 정확한 진단은 아직 받지 못했다. 지난달엔 고관절 부분에 나사가 풀려 재수술을 받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부터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등 시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현재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양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앞두고 있다.

도저히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뿐인 딸을 장애단기보호시설로 보내야 했다. 얼른 나아 다시 딸을 데려오려면 치료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신세에 혹시나 치료비가 너무 많이 나와 나중에 딸과 함께 생활할 수 없을까 봐 귀주 씨는 좀처럼 치료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도 딸의 사진이 담긴 액자로 가득한 방에 홀로 앉아 있는 귀주 씨.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여기까지 발버둥 치며 왔는데, 결국 혼자다. 시설에 홀로 있는 딸도 이대로 두면 계속 혼자일 테다. 얼른 나아서 장애인 일자리도 알아봐 줘야 하는데…. 귀주 씨의 입술은 바작바작 타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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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조산으로 낳은 셋째 아이 온갖 병 시달려 치료도 벅찬데 이번 집중호우로 집, 밭, 차 다 망가져 괴로운 조선영 씨에게 3,166만원 전달

셋째 아이 병원비로 힘겨운데 이번 집중호우로 집, 밭, 차까지 다 망가져 괴로운 조선영(매일신문 7월 25일자 10면) 씨에게 3천166만2천701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다우약품 50만원 ▷장하익 10만원 ▷이병규 25만원 ▷방태표 2만원 ▷신종욱 2만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성영아 1만원 ▷이정현 1만원 ▷김서연 2천원 ▷이장윤 2천원 ▷'지현이동환이' 1만원 ▷'한동엽 기부' 1만원 ▷'지성이' 2천원 ▷'채영이' 2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편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일찍 세상 떠나고 아들까지 소뇌위축증으로 눈감았는데 딸까지 소뇌위축증 걸려 힘겹게 치료시키는 중인 박현숙 씨에게 2,369만원 성금

남편은 사고로, 아들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이후 딸까지 아들이 앓았던 소뇌위축증 걸려 힘겹게 치료시키는 중인 박현숙(매일신문 8월 1일자 10면) 씨에게 54개 단체, 196명의 독자가 2천369만8천411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한정민)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감각인쇄소(손근찬) 20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주)태왕(김수경)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국제정밀(김용근)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미광종합주방(배소식)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네트컴퓨터아카데미학원 5만원 ▷다빈치커피대명마루점 5만원 ▷동산내과 (박준석) 5만원 ▷동산내과 박경아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남의원(김홍구)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김기욱사무소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연합광고 (김천수)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참한우소갈비집(신동애)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보성카써비스(김영수)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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