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근무중 종이컵에 든 독극물 마신 근로자…52일째 혼수상태

피해자 남편 "병원 3번 옮길 동안 불산인 것 알려주지 않아"
"불산인 것 알았다면 경과 훨씬 좋았을 것"

종이컵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종이컵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경기 동두천시의 한 중견기업에서 종이컵에 담긴 불산을 물인 줄 알고 마신 근로자가 52일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기업은 직원이 병원에 실려갔는데도 독극물의 성분을 숨기다 심정지 소식을 듣고서야 성분을 밝힌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경찰과 피해자 가족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28일 오후 4시쯤 동두천시에 있는 한 중견기업에서 30대 여성 근로자 A씨가 불산이 들어간 용액을 마시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이 회사의 검사실에서 광학렌즈 관련 물질을 검사하는 업무를 맡은 근로자였다.

평소 종이컵에 물을 따라 마시는 A씨는 이날도 현미경 검사를 마친 후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컵을 발견하고, 이를 의심 없이 마셨다.

하지만 종이컵에 담긴 것은 주로 세척제로 사용되는 불산이 포함된 무색 유독성 용액으로, 직장 동료 B씨가 검사를 위해 종이컵에 따라 놓은 것이었다.

용액을 마신 A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져 몸 안에 있는 유독성 용액을 빼내기 위해 인공심폐장치(에크모·ECMO)를 달고 투석 치료를 받아야 했다.

A씨는 맥박과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사건 발생 52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경찰은 고의성·과실 여부 등을 중심으로 수사하고 있다.

목격자 진술과 CCTV를 토대로 현재까지 A씨를 해치려는 고의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경찰은 유독성 물질 관리가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관련 법규를 확인하고 법리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A씨의 가족은 회사 측에서 독극물의 성분을 숨겼다고 주장했다.

A씨의 남편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아내에게 심정지가 온 사건 발생 7시간 후에야 아내가 물인 줄 알고 먹은 성분에 불산이 들었다는 걸 알게 됐고, 병원을 3번이나 옮기는 동안 (아내) 회사에서 보내준 성분 표시에는 불산이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아내 회사 관계자는 '극악 독극물은 아닐 거다. 해당 약품을 제공한 업체 사장에게 물었더니 자기네는 맨손으로 작업할 만큼 (안전에) 문제없다고 했다더라'는 맥락의 말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 말만 믿고 3번째 병원에서 심정지가 오기 전까지 불산 관련 어떠한 치료도 하지 못했다"며 "의사는 '심정지가 오기 전 불산 사고라는 걸 알았다면 더 빨리 조치해 경과가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토로했다.

한편 불산은 염산보다 부식성이 크며 다른 산과 달리 피부를 뚫고 조직 속으로 쉽게 침투해 강력한 독성을 일으킨다. 피부를 뚫고 혈액 속으로 들어간 불산은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부정맥과 심장마비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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