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다가 낮엔 또 기온이 올라서 당최 어떤 옷을 입어야 좋을지 모를 시기를 보냈다. 그러다가 낮 동안에도 도톰한 옷이 필요한 계절이 왔다. 이럴 때 여지없이 단풍이 든다. 단풍이 든다는 것은 가을이 깊었다는 뜻이다. 큰 일교차와 짧아진 낮시간으로 나무들은 계절을 감지한다. 잎자루에 세포층이 만들어지고 잎으로 공급되던 영양분과 수분이 중단된다. 그로 인해 초록색을 띠던 엽록소가 파괴되고 숨어 있던 다른 색이 드러나는데 우리는 그것을 보고 '단풍이 든다'라고 한다.
단풍은 나무들에 따라 색깔이 아주 다양하다. 은행나무처럼 노란색을 띠는 나무도 있고, 단풍나무처럼 붉은색을 띠기도 한다. 갈참나무처럼 갈색이 되는 나무도 있다. 딱히 정해진 색 없이 해마다 다른 색으로 물드는 나무도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물드는 것을 해마다 반긴다.
팔공산에도 울긋불긋 단풍이 드는 계절이다. 품고 있던 푸르름을 떨치고 다양한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계절은 등산하기 참 좋다. 약간은 차가운 바람과 공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움직여도 땀이 나지 않는다. 이런 계절을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당장 산으로 가서 물들어가는 세상을 눈에 담고 싶다.
단풍이 드는 계절은 아주 짧다. 며칠 어영부영 망설이다 보면 낙엽 되어 떨어지고 만다. 그 전에 단풍 닮은 고운 옷을 입고 그들의 붉은 몸부림을 보러 팔공산 능선을 걸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전국의 산을 붉게, 당단풍나무
당단풍나무는 우리나라의 단풍나무과(科) 중에서 가장 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단풍나무와 당단풍나무는 서로 조금 다르다. 제주도를 포함한 남쪽 지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당단풍나무가 많다. 팔공산에도 산 아래 순환도로에 식재된 나무 외에 산속에서 만나는 나무는 다 당단풍나무이다. 잎은 손바닥을 펼친 모양으로 깊게 갈라지고, 꽃은 봄에 피었다가 열매는 단풍이 물들면서 함께 성숙한다.
열매는 날개가 있고 한쪽 부분에 씨앗이 자리 잡고 있다. 잘 익은 후 씨앗이 무게중심을 잡고 바람을 따라 뱅글뱅글 돌면서 날아간다. 비교적 반음지나 음지에서 잘 자라고 큰 나무 아래에서도 그 기세가 당당하다. 기세만 그런 게 아니라 목질도 섬세하고 단단한 편이다. 외국에도 다양한 종류의 단풍나무들이 자생하는데, 가구재로 쓰이기도 하고 공명이 좋아서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현악기를 만드는데도 쓰인다고 한다. 당단풍나무는 가을에 주황색 쪽으로 치우친 붉은 색으로 팔공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을 물들인다.


◆오묘한 갈색 단풍, 갈참나무
갈참나무는 참나무 종류 중 하나이다. 그중에서도 아주 흔하게 자란다. 팔공산을 비롯해서 전국의 산에서 만날 수 있다. 오히려 피해 다니기가 어렵다. 봄에 꼬리처럼 늘어지는 수꽃으로 꽃가루를 날린다. 암꽃은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다. 그 작은 꽃이 자라서 도토리가 된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도토리는 갈색으로 익어서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람이 불 때 나무 아래 있으면 꿀밤을 맞기 십상이다. 꿀밤으로 꿀밤을 맞으면 그 맛이 어떨까. 그렇게 도토리를 다 떨어트린 후에 단풍이 든다. 처음엔 노란색으로 변하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이름처럼 갈색으로 변한다. 갈참나무의 단풍을 보면 갈색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어진다.
오묘한 색의 잎에 맑은 햇살이 투과하면 그 빛깔에 반하게 된다. 흔하디흔한 나무이지만 사람들은 갈참나무의 단풍을 제대로 감상한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갈참나무의 단풍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는 가을이 더 많기 때문에 더욱 귀한 것이 말간 갈색 단풍이다.

◆산속에도 많아요.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아주 친숙한 나무이다. 마을의 당산목으로 마을숲의 일원으로 늘 사람들 곁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특히 나이 먹은 느티나무를 귀히 여긴다. 느티나무는 수명이 긴 편으로 천년이 넘었다는 나무들도 종종 있다. 팔공산 주변에도 노거수가 더러 있다. 은해사 운부암의 느티나무가 그렇고 양방마을 느티나무도 유명하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보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산에는 느티나무가 없는 것일까? 있다. 산에도 느티나무가 생각보다 많다. 팔공산을 비롯해서 남부내륙의 산에 꽤 많이 자생한다. 숲속에 자라는 느티나무는 마을숲에 자라는 나무와 수형이 많이 다르다. 숲에서는 다른 나무들과의 경쟁으로 인해 키가 크게 자라고 윗부분에 주로 잎들이 달린다.
그렇게 평범한 나무로 보인다. 느티나무는 봄에 연두빛의 잎이 돋아나고 꽃은 눈에 띄게 예쁘지 않다. 그다지 크지 않은 잎들이 조밀하게 달려서 여름을 지나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든다. 느티나무는 해마다 단풍의 색이 다를 수 있다. 어떤 가을에는 노랗게, 어떤 가을에는 붉게 들기도 한다. 올가을에는 어떤 색으로 물들까? 해마다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화살깃 모양의 코르크가 달린 화살나무
화살나무는 왜 화살나무일까? 줄기에 얇은 코르크가 사방으로 달리는데 그 모습이 화살깃을 닮아서 화살나무라고 불린다. 꽃도 열매도 아닌 코르크의 모양으로 이름이 붙었다. 그만큼 코르크가 특징적이다. 화살나무는 흔하게 자라는 키 작은 나무이다. 산 가장자리며 숲 가장자리에 어느 정도 햇빛이 드는 곳에서 잘 자란다.
봄에 홀잎나물 또는 홑잎나물이라고 불리는 나물이 화살나무의 새순이다. 잎이 자라면서 잎과 같은 색으로 꽃이 피는데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나물로 유명한 나무를 왜 봄이 아닌 가을에 언급하는 것일까. 그만큼 단풍이 곱다는 뜻이다. 화살나무는 가을이 되면 자잘한 잎들이 붉게 단풍이 드는데, 그 색깔이 단풍나무의 붉은색과 다르다.
자주색으로 살짝 치우친 단풍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팔공산 언저리나 능선길을 걷다가 키가 자그마한 나무인데도 신비스러운 색을 가진 단풍든 나무를 보면 가까이 가보길 권한다. 줄기에 화살깃이 달려있으면 그들이 바로 화살나무이다.

◆이름마저 붉은 붉나무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나무이다. 붉나무는 붉어서 붉나무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잎이 붉은 것은 아니다. 여름 내내 초록으로 있다가 단풍이 들면 붉기가 그 어떤 나무와 견주어도 지지 않는다. 붉나무는 겹잎으로 가졌고 엽축을 중심으로 작은 잎들이 양쪽으로 나열되어 달린다. 그 엽축에는 날개가 있다. 그 날개마저 붉은 단풍이 든다.
가끔 잎에 울퉁불퉁한 혹처럼 생긴 벌레집이 달리는데 그것을 오배자라고 한다. 약재로 사용하기도 하고 염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열매는 가을에 단풍이 들 때 익는다. 익어가는 열매에 하얀 결정이 생기는데 먹어보면 짠맛이 난다. 그래서 소금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양한 이유로 세간에 알려진 나무지만 그 모든 유명세를 어찌 단풍에 비할까. 붉은 나무 붉나무는 단풍 덕에 붙은 이름이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제22회 팔공산 단풍축제가 오는 27일부터 31일까지 5일간 팔공산 동화지구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다. 팔공산동화지구상가번영회(회장 김남호) 주최로 마련된 이번 축제는 '행복가득, 추억만개'를 주제로 진행된다.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이 울긋불긋 팔공산 단풍과 함께 단풍길 걷기여행, 떡메치기 행사, 단풍가요제, 축하공연 등으로 구성됐다.

글·사진 산들꽃사우회 (대표집필 김영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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