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국학이 뭐지?

엄재진 북부지역 취재본부장
엄재진 북부지역 취재본부장

나는 한 지인으로부터 심심찮게 질문을 받는다. "한국국학진흥원이 뭐 하는 기관이냐? 유교나 성리학이 국학을 대표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다.

막걸리 한잔으로 불콰해진 기분에 농담 삼아 던진 질문이었으리라. 하지만 내겐 늘 '국학이 뭘까?'라는 문제는 풀리지 않는 답을 찾아야 하는 숙제였다.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문제였으나 실제로는 국학진흥원의 존재 가치를 찾는 인문학적 고민이었다. 그런 고민이 어느 순간 풀리고 있다.

지난 2021년 7월 15일, '국학 30비전 선포식'에서 정종섭 원장이 한국국학진흥원의 미래 지향적 위상 정립에 대한 철학을 밝히면서다.

그동안 한국국학진흥원은 대부분 시대적으로는 전근대인 조선시대, 주제에서는 유학 사상을 위주로 연구 작업을 추진해 왔다.

62만여 점의 소장 민간 기록물 자료 중 조선시대 유학 관련 자료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특성을 인정하면서도 국학 연구 영역이 지나치게 유학에 편중됐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이에 진흥원이 기존의 조선시대를 넘어 전근대에서 근현대까지 확장하고 있다. 주제에서도 기존 유학 중심의 틀을 벗어나 종교와 인물 등 다양한 영역으로 시야를 넓혀 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전통생활사 총서' 발간 사업에 나섰다는 소식을 접했다.

성리학 연구에 집중됐던 진흥원의 연구 사업을 민간과 지식·정보에서 벗어났던 계층들의 일상생활로 확대해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정체성과 가치관'을 찾아 나선다는 계획이다.

2022년 사업을 시작해 최근 첫 사업 결과물로 20권을 선보였다. 앞으로 2026년까지 해마다 20권씩 모두 100권 이상의 전통생활사를 책으로 엮는 국내 생활사 관련 최대 규모 사업이란다.

'전통생활사 총서'는 한국 전통 시대의 다양한 역사적 현장과 인물 속에 숨어 있는 사례들을 하나하나 발굴해 재구성한다.

당시 사람들의 일상 속을 세밀하게 파악해서 그동안 덜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를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한다.

특히, 중앙정부 중심의 자료가 아닌 민간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통해 재현하는 만큼 살아 있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참여하는 집필진 모두 인문학자로서 전문성 역시 담보하고 있다 하니 더욱 총서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국내 생활사 집대성 연구 사업의 첫 사례라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학 연구 분야와 영역을 다양화해 국학을 더욱 심도 있게 연구한다는 생각에 "그래 이거지"라고 무릎을 치게 된다.

국내에서 '생활사'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그동안 한국의 역사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국가 기록물의 존재로 인해 중앙, 왕조 중심으로 이해돼 왔다.

이에 반해 민간의 일상생활에 대한 이해나 연구는 관심을 덜 받았다.

산업화, AI 등 디지털 기술혁명 시대를 맞으면서 인문학이 점점 갈 길을 잃어가고 있다.

어느 노교수는 인문학적 사고가 사라지고 접목되지 않은 디지털 시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걱정한다.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생활사', 개인의 삶을 돌아보는 '생애사', 지역적 삶과 역사를 새롭게 찾아 나서는 '지역사' 등 인문학적 고민이 담긴 기록화 작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전통생활사 총서'라는 기록화 사업이 단순한 생활사 알아보기를 넘어 사람들의 일상 속에 담긴 따뜻하고, 지혜로운 철학과 가치관, 정체성을 전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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