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건속으로] "카자흐 검찰총장 동업자" 데이팅앱서 만난 여성에 사기

40대男, 20억원대 차명 투자해달라며 차용증 먼저 쓰게 해
실제 돈 전달하지 않고 채권추심 들어가…징역 2년 선고

대구법원·검찰청 일대 전경. 매일신문DB
대구법원·검찰청 일대 전경. 매일신문DB

"내가 카자흐스탄 검찰총장이랑 골프 리조트 사업을 하는데…"

자신의 직업을 속인 채 외국 유력자의 동업자를 자처하며 모바일 데이팅앱에서 만난 여성에게서 20억원을 뜯어내려던 40대 남성이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대구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종길)는 사기,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기소된 A(42)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모바일 데이팅앱으로 B(46) 씨를 만나 자신을 미국 시민권자이자 유명 외국계 디자인 회사 한국지사장으로 소개했다. B씨와의 만남을 이어가던 A씨는 2020년 B씨 귀에 솔깃하게 들릴 제안을 했다.

자신이 카자흐스탄에 골프장 리조트 사업을 하고 있는데 자신의 지분이 45%, 카자흐스탄 검찰총장이 45%라는 것이다. 또 20억원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추가적인 직접 투자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A씨는 B씨에게 "20억원을 줄테니 차명으로 투자해달라. 20억원은 차용증을 쓴 다음날에 커피숍에서 직접 현금으로 지급해주겠다"고 속였다.

A씨는 B씨가 여기에 속아 법무법인에서 차용증을 작성하자 "코로나19로 리조트 사업이 중단됐다"며 돈을 지급하지 않았다. A씨는 이후 앞서 작성한 차용증을 바탕으로 법원에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신청해 그해 12월 결정까지 받아냈다.

정작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A씨의 정체는 '자기소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었고 외국계 디자인 회사를 다니지도 않았다. 카자흐스탄에서 골프장 리조트 사업을 수행하지도 않았고 그저 2006~2012년 골프장 설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4년 간 약 3억원 정도를 번 기록만 있었다.

A씨는 B씨에게 20억원을 지급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미리 준비해 둔 B씨의 인감도장으로 20억원 영수증을 위조하기도 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법원은 애초에 A씨가 이런 돈을 B씨에게 지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는데, A씨가 주장하는 현금 전달 과정의 신빙성이 떨어지고 소득 기록 상 20억원의 현금을 확보하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법원을 상대로 소송사기 범행까지 감행한 죄질 및 범행 수법이 매우 불량하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면서도 "다만 피해자도 범행 발생이나 피해 확대에 일부 책임이 있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