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계급장의 무게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나 때는 그랬다. 계류장처럼 머물렀던 곳은 훈련소가 아니었다. '보충대'라는 곳이었다. 훈련소로 가기 전 3박 4일 정도였다. 할 수 있는 측정이란 건 다 했다. 체격이나 간단한 체력 측정도 했지만, 인성 측정까지 했다. '장정'이라 불리긴 했지만 불량 보급품을 골라내는 듯한 오싹한 기분도 들었다. 군 생활 부적응 가능성이 있는지 거르는 감별 과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6주의 신병 훈련은 사단 훈련소라는 곳에서 받았다. 설악산 기슭을 자동으로 떠올리게 되는 사단가를 외워야 했다. 6주 동안 열심히 불렀을 뿐인데 30년이 다 된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건 반복의 힘이다. 악전고투의 시기를 끝내고 나면 이윽고 가로로 누운 한 일 자 막대(가로 5㎝, 세로 1㎝ 정도) 하나를 군모와 가슴팍에 부착하게 된다. 이등병 계급장의 표식, 그렇게 무거울 수 없다는 세칭 '작대기 하나'다.

BTS 멤버 RM(본명 김남준·30)과 뷔(본명 김태형·29)가 최근 육군훈련소 수료식을 가졌다고 한다. 최정예 훈련병으로 선발됐다니 서른 즈음에 느지막이 간 군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이 전해진다. 평생 군 복무 문제로 괴롭힘당할 일 없을 '까임 방지권'까지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군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소감도 나왔다. 이등병 김남준은 "정신전력교육을 통해 분단국가이자 휴전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에서 군의 필요성, 기초군사훈련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어젯밤도 편안히 잠에 빠질 수 있었고, 오늘 낮에도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걸 '일상'이라 부를 수 있음을 깨우쳐 준다. 우리의 형제자매와 아들딸, 친구들이 묵묵히 지켜 주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북한이 연초부터 강도 높은 겁박을 이어 가고 있다. 핵 위협은 기본값이 됐다.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북핵 개발은 자위권 차원에서 일리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피력했다'고 했던 사람들의 근거가 희박한 낙관적 언변의 값을 치르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는 흔들림 없이 일상을 영위한다. 여유는 우리 군이 충분히 강하다고 믿는 데서 온다. 이등병 계급장이 든든해 보이는 요즘이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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