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포와 환상 속으로 도피하고 싶다면…장르소설 3색 매력

브라이언 에븐슨 호러소설집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박문영 '방 안의 호랑이'·이산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왼쪽부터 '방 안의 호랑이'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각 출판사 제공
왼쪽부터 '방 안의 호랑이'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각 출판사 제공

장르소설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현실을 벗어난 마법과 환상의 세계를 제공한다는 점일 것이다.

소위 '순수문학' 범주에 속하는 전통적인 소설이 주위에 '있을 법한' 현실을 다룬다면, 장르소설은 기발한 착상과 비현실적 설정을 통해 독자에게 '현실에선 있을 법하지 않은' 완벽한 상상의 도피처를 잠시나마 선사한다는 매력이 크다.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고픈 사람들을 위한 장르소설 세 권이 각기 다른 색채의 재미로 무장한 채 독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얼굴 없이 뒤통수만 달린 채 태어난 아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 넣을 고요함을 찾기 위해 기상천외한 살인을 저지른 영화감독, 돌연변이 생명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존자 공동체…

미국의 호러작가 브라이언 에븐슨의 단편집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는 기이한 섬뜩함으로 가득하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와 기괴함은 다채롭다. 사방에 유혈이 낭자하기도 하고, 정체불명의 괴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가 하면, 누군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거나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가스라이팅 유형의 이야기도 있다.

작가는 현실의 조각난 틈에서 자라나는 분노와 수치, 강박과 집착 같은 감정들을 서늘하고 처연한 필치로 그려냈다.

다양한 장르를 비틀어 변주하고, 영화적인 장면 연출을 도입하는 등 글로 읽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컬트 영화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박문영의 SF 소설집 '방 안의 호랑이'는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표제작은 '작자 복원' 프로그램을 개발해낸 근미래의 한국이 배경이다. 스캐너로 그림을 읽어내면 홀로그램 장치 위에 그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풍경과 그림을 그린 이가 한눈에 펼쳐진다.

20세기 초 한국의 유명한 천재화가 김부영의 그림으로 알려졌던 북악맹호도를 새로 개발된 '작자 복원 장치'로 스캔한 '나'는 어두운 곳에서 그림을 그리던 이가 김부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것은 젊고 왜소한, 김부영의 세 번째 여인 여홍옥이었다.

"홀로그램의 여자를 올려다봤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고독하고 정다운 눈빛, 홍옥은 꿈에서 본 호랑이와 닮은 인상이었다"(236쪽)

'방 안의 호랑이' 외에도 이 소설집에는 '누나와 보낸 여름', '무주지' 등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훈훈한 시선이 돋보이는 SF 단편 13편이 수록됐다.

신작은 아니지만 이산화 작가의 장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도 눈에 띈다.

사람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칩을 심은 채 살아가는 미래의 지하도시 '블랙 포레스트'는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욕구와 오류로 가득하다.

조사관 도나우벨레 역시 왼쪽 다리를 의체로 바꾸기를 꿈꾸며 맡은 사건을 열심히 해결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어느 날 그를 돕던 룸메이트 할루할로가 '미안해'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작동을 멈춰버리고, 도나우벨레는 그런 그를 되살리려 애쓰다가 금기를 깨고서 지상낙원 레드 벨벳으로 향한다.

추리물이나 수사물로 시작하는 것 같은 이 소설은 점차 인물과 사건 간 관계가 뚜렷해지면서 '모든 기계를 만들어내는 인간은 과연 완벽한 존재인가', '기술 발전 끝에 기계는 완벽한 존재가 될 것인가' 등의 현대 과학문명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이 날로 첨예하게 발전해가는 요즘 더 의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2018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이번에 표지를 바꾸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추가한 개정판이 나왔다.

▲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 하빌리스. 이유림 옮김. 312쪽.

▲ 방 안의 호랑이 = 창비. 412쪽.

▲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 안전가옥.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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