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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칼럼] 좌파가 이승만에게 씌운 누명, ‘분단의 원흉’

정경훈(매일신문 논설위원)
정경훈(매일신문 논설위원)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관객이 2일 107만명에 이르렀다. 이런 상업적 성공은 '진실 투쟁'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 투쟁'을 통해 좌파가 이승만에게 씌운 누명들을 벗겨낸 것이다. 그런 누명들 모두가 비열하지만 '분단의 원흉'이란 누명은 특히 비열하고 악의적이다.

그게 거짓임은 북한 정권의 수립 과정을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북한 정권의 산파는 소련이다. 일본의 항복 후 북한에 군을 진주시킬 때부터 소련은 미국처럼 한반도에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스탈린이 1945년 9월 20일 극동전선군 총사령관 A. M. 바실레프스키와 연해주 군관구 군사회의에 내린 '북한에 반일적인 민주주의 정당 및 조직의 광범위한 블록을 기초로 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라'는 지령이다.('세번의 혁명과 이승만', 오정환) 공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통일전선전술이다.

이런 구상하에 소련은 1945년 10월 28일 "북한을 별도의 국가로 만들려는 첫걸음"('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로버트 스칼라피노·이정식)으로 평가되는 '오도행정국'(五道行政局)이란 중앙행정기관을 창설한다. 이를 시작으로 북한 단독 정권 수립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설립됐다. 위원장은 김일성, 부위원장은 '연안파'인 김두봉, 서기장은 김일성의 외가 쪽 할아버지뻘 되는 강양욱이 됐고 각료에 해당하는 국장급 14명 중 상업국장과 보건국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산주의자였다.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정부가 수립된 것은 1948년 9월 9일이지만 이미 이때 실질적인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이를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성립 경축 대회' 사진(1948. 2. 8)으로, 윗부분이 찍히지 않은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찍힌 부분의 문구는 "~회(會)는 우리에 정부(政府)이다"이다.([북한] 8·15해방 1주년 기념 중앙준비위원회, '8·15해방 1주년 기념 북조선민주주의 건설 사진첩').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우리의 정부이다'라는 것으로, 정부가 수립됐음을 공표한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북한 연구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가 이때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정권이 탄생했다"고 한 이유다. '임시'라는 말을 붙인 것은 북한 단독 정권 수립을 감추려는 위장술이었던 것이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명실상부한 정부 조직을 갖추고 정부 기능을 수행했다. 2월 9일 국가 건설의 기본 방향을 담은 11개조 당면 과업을 발표했고, 3월 5일 지주를 민간인에서 정부로 바꾸는 '토지개혁에 관한 법령', 같은 달 23일 국가 건설 정책을 구체화한 '20개 정강(政綱)'을 공표했다.

이 모든 것이 좌파가 이승만이 '분단의 원흉'인 증거로 드는 1946년 6월 3일 이른바 '정읍발언'보다 수개월 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남한은 어떤 유형의 정치적 제도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에 통일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에서 소련이 "통일 임시정부는 모스크바 삼상(三相)회의 한반도 신탁통치 결정을 지지하는 정당과 사회단체를 망라한 대중단체의 토대 위에서 수립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탁(反託)인 우익을 빼고 찬탁(贊託)인 좌익 세력만으로 임시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것으로, 북한에 구축된 김일성의 '민주기지'를 발판으로 남북한을 아우르는 '붉은 임시정부'를 세우겠다는 속셈이었다.

이에 미국이 반대하면서 1차 미소 공위는 1946년 5월 6일 무기 휴회에 들어갔다. 한반도 분단이 고착된 것은 사실상 이때로 정읍 발언보다 한 달이 앞선다. 북한에는 이미 정부가 들어섰고 통일 정부 수립이 불가능해진 이런 상황에 맞서 남한만이라도 임시 정부를 수립하고 세계 여론에 호소해 북한에서 소련을 몰아내자는 것이 정읍 발언이다. 1947년 5월에 열린 2차 공위에서도 소련은 기존 입장을 고수해 결국 결렬됐다.

정읍 발언은 이런 시대적 배경을 놓치면 좌파의 주장대로 '남한 단정론(單政論)'이다. 그러면 좌파는 그 시대적 배경을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분단의 원흉'은 악랄한 허위 선전이다. 진짜 분단의 원흉은 소련과 김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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