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자 79대 종손 "근필 선생 서세는 한국 유림에 큰 손실"

콩추이장, 이근필 퇴계종손 빈소에 추모 조사 보내 애도
인본가치 퇴계정신·유학확장 추동, 탁월한 학식·품덕 존중·공경받아

2017년 12월 안동을 방문한 공자 79대 종손 콩추이장과 함께한 퇴계 16대 종손 이근필 선생. 매일신문DB
2017년 12월 안동을 방문한 공자 79대 종손 콩추이장과 함께한 퇴계 16대 종손 이근필 선생. 매일신문DB

콩추이장 공자 79대 종손이 이근필 퇴계 종손 빈소에 보내온 조사
콩추이장 공자 79대 종손이 이근필 퇴계 종손 빈소에 보내온 조사

국내 유림사회 큰 어르신으로 종가문화 개혁을 실천하셨던 고 이근필 퇴계 16대 종손의 서세 소식에 공자 79대 적장손인 콩추이장(孔垂長·49) 종손이 조사를 보내 슬픔과 애통함을 전했다.

7일 별세한 고 이근필 종손 빈소에는 전국 유림과 종손, 지역사회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런 가운데 8일 콩추이장 종손은 퇴계종손 빈소를 지키는 이치억 차종손에게 보내 온 조사를 통해 "존경하는 이근필 선생께서 서거하셨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고 수장은 그 애통함을 이기지 못합니다"라 애도하는 마음을 전했다.

공자 종손은 "근필선생께서는 멀리 퇴계선생의 유맥을 이어서 각별히 종법전통을 지키고 예로서 몸을 받들어 닦아 유가사상을 전승하고 발양하는데 공헌한 바가 매우 큽니다"라며 "인본가치의 퇴계정신과 일생동안 유학의 확장을 추동하는데 온 힘을 바쳤습니다. 탁월한 학식과 품덕으로서 광범위한 존중과 공경을 받았습니다"라 공경을 표했다.

이어 "근필선생께서 이끌어 선도함과 그 영향하에 안동이 현저하게 농후한 유학정신을 보존하고, 성균관과 향교에서는 묘제를 올리고, 학계에서도 공부자를 받들어 제사지내고, 가정에서는 선조를 공경하고, 사회에서는 질서를 강론하고, 왕래가 거듭되어 예모가 갖추어지니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예악에 뒤떨어지면 군자가 아니다'라는 것이 전범이 되었습니다"라 역할을 강조했다.

종손은 "근필선생의 서세는 한국유림에게는 중대한 손실입니다. 우리도 이 사실에 심각히 슬프고 가슴아픈 감회를 떨칠 수 없으며, 또 장차 그분의 유가사상 전승홍양에 대한 위대한 공헌을 끼친데 대해 영원히 회상하며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 깊은 슬픔과 애도함을 전했다.

콩추이장 79대 공자 종손은 끝으로 "노선생께서 갑자기 신선되어 떠나시니 슬프도다!. 수장은 삼가공자의 후예들과 지성공자기금회원을 인솔해 선생과 선생의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지극한 정성으로 위문을 드리고자합니다"라 맺었다.

한편, 공자 가(家)와 퇴계 가(家)의 우의와 인연은 40년을 이어오고 있다. 공자의 77대 종손인 콩더청 박사는 지난 1980년 도산서원을 찾아 퇴계 선생에 참배하고 흠모하는 마음을 '추로지향'이라는 휘호로 남겨 안동이 공자·맹자와 같은 성현이 태어난 고향과 같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지난 2012년 3월 79대 종손 콩추이장, 증자의 75대 종손 정칭홍(曾慶泓), 맹자의 76대 종손 멍링지(孟令繼) 등 동양오성 후손들이 안동을 방문했다. 콩추이장 종손은 지난해 10월에도 안동을 찾아 퇴계 종손을 찾아 뵙기도 했다.

콩더청 박사가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2008년 11월 12일에는 퇴계 16대 이근필 종손이 "유림이 넋을 잃고 통곡을 그치지 못합니다"라는 제문으로 이별의 아픔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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