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힘 총선 공천 마무리…시스템 공천·국민추천제 뒷말 남겨 [종합]

"현역에만 유리한 심사…유권자 눈높이 만족 못 시켜"

국민의힘의 4·10 총선 공천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당을 대표해 뽑힌 후보들은 이제 본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열심히 뛰는 일만 남았다. 정치권에선 여당의 이번 공천을 두고 과거와 같은 농단을 되풀이하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사기도 하지만, 야심차게 도입한 시스템 공천은 결과적으로 현역에만 유리한 심사였다는 점, 공천 도중 도입된 국민추천제는 사실상 전략공천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만만찮다.

국민의힘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이 14일 여의도 당사에서 공관위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이 14일 여의도 당사에서 공관위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상유지 동원된 '시스템 공천', 정치신인에 희망고문만

국민의힘이 당을 대표해 4·10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후보를 대부분 결정했다.

이번에는 그동안 보수 정당의 최대 약점이었던 공천 농단(학살)이 사라지고 '시스템 공천'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큰 탈 없는 공천에 대한 갈증은 풀었지만 너무 조용해서 무감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정치권에선 정실(情實)과 진영논리에 의한 '사천' 논란은 피했지만 정교하지 못한 '시스템'으로 유권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공당이 총선을 앞두고 국민에게 정체성과 국가의 미래 청사진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은 공약과 인물 크게 두 가지다.

특히 기성 정당들이 정책적 지향의 차이가 거의 없는 '수렴정당(收斂政黨)'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각 정당이 선거에 내세우는 후보만큼 당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도 없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대구경북 25개 국회의원 선거구 가운데 무려 16곳(현역 생존율 64%)에 현역 국회의원을 다시 공천했다.

'수도권 국회의원은 금메달, 영남 국회의원은 동메달', '살찐 고양이', '수도권에서는 이름도 모르는 국회의원' 등의 수모를 당했던 대구경북의 현역 의원들이 '공천=당선' 분위기가 완연한 텃밭에서 정치적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인구·지역 소멸 대응, 대한민국 100년 먹거리 확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시대적 과제를 풀어낼 수 있는 인물을 발탁해 국민에게 선보이고 총선을 통해 평가를 받는 것이 공당이 할 일"라며 "그저 분란 방지에 급급해 현상유지에만 골몰한 공천으로는 총선 승리가 힘들다"고 말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경선)는 명분도 좋지만 집권당이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국가운영 비전을 공천한 후보를 통해 보여줄 필요도 있었다는 비판이다.

현역 의원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운동장을 만들어 놓고 정치신인들을 희망고문했다는 질타도 이어진다. 이번에 적용한 시스템의 설계가 부실했다는 충고다.

또한 당선가능성이 높은 텃밭에서 여당이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줄 신인 발굴에 공을 들였어야 했다는 훈수도 나온다.

심지어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이른바 '영부인 리스크'를 우회(특검법 부결)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현역 대거 생존 공천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당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국가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고 저마다의 삶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한다"며 "이런 관점에서 국민의힘의 이번 대구경북 공천은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인재영입식에서 양종아 한뼘클래식기획 대표,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 양 대표, 김 교수, 한 비대위원장.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인재영입식에서 양종아 한뼘클래식기획 대표,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 양 대표, 김 교수, 한 비대위원장. 연합뉴스

◆'깜깜이' 국민추천, 흥행·감동 노렸지만 씁쓸한 뒷맛만

국민의힘이 4·10 총선 지역 선거구 공천 후보 선출을 위한 흥행 카드로 도입된 국민추천 프로젝트가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한 채 깜깜이 진행으로 씁쓸한 뒷만만 남겼다.

정권 핵심과 인연을 내세운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지 않겠느냐는 우려와는 달랐지만 지역 정가에서 아무런 활동도 없이 본선 티켓을 따낸 점은 자신은 물론 유권자, 지역 정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잖다.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국민추천제 대상 지역 선거구는 서울 강남구갑·을, 울산 남구갑을 포함해 대구 북구갑·동구군위갑 등 총 5곳이다.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으로 여겨지는 대구경북(TK) 지역 선거구가 2곳이나 포함됐다.

이 때문에 TK 정치권에선 국민추천 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큰 관심이 쏠렸고 지난 15일 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북구갑에 30대 청년 변호사 우재준, 동구군위을에 CJ제일제당 대표이사를 지낸 최은석 등 2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2명 모두 대구 출신으로 지역 연고가 있고 그간 선출직에 출마한 경력이 없는 등 정치 신인이라는 점에서 신선함과 새로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장점이 기대된다. 이들 후보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는 등 잡음이 생기지도 않고 있다.

다만 애초 국민추천제 도입에서부터 진행 과정, 최종 결과를 두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도 도입부터 당 공관위가 공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성·청년, 정치신인 등 비율이 지나치게 적다는 비판에 임기응변하는 차원에서 제시된 측면이 크다. 시스템 공천을 공언해 온 공관위가 게임 도중 룰을 바꾼 셈이다.

진행 과정에서도 비공개 원칙을 고수해 선거구별 면접자를 찾기 위해 지역 정가가 들썩이고 일부 인사들은 실제 이름이 떠돌기도 했다.

총선 승리의 핵심 전장인 서울·수도권이 아니라 TK 지역 선거구가 2곳이나 포함된 점도 여러 뒷말을 남겼다. 현역 의원은 물론 그간 당 공천을 받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골목을 다니며 현장을 누볐던 예비후보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으나 이들은 모두 배제됐다.

공관위가 해당 선거구를 국민추천제 대상으로 선정했다면 왜 선정했는지, 기존 후보들은 어떤 점에서 공천을 받기 미흡했는지 등 이유를 주민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총선을 한달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당 공천장만 들고 지역에 내려와 당선되는 건 올바른 지역 정치 문화 형성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목소리도 크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과거 전략공천이란 이름으로 낙하산 공천이 횡행했던 TK 정치권은 유권자가 아니라 공천권자 입만 바라보는 정치인이 당선 뒤 여의도에서 존재감도 없이 지역과 괴리된 행태를 보이는데 실망을 거듭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추천제도 결국 이름만 바꾼 과거 전략공천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느냐"면서 "TK 정치권은 지역민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도 못하고 정치 경력도 없는 '인턴 국회의원'만 모시게 됐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오후 부산 사하구 괴정골목시장을 찾아 이성권, 조경태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오후 부산 사하구 괴정골목시장을 찾아 이성권, 조경태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與 선거 비용 천정부지…탈락 신인들 울상

국민의힘이 야심차게 도입한 시스템 공천이 경선 과정에서 여론조사 등으로 후보들의 선거 비용을 다소 상승 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도입한 시스템 공천은 객관적이고 공정성을 강조하면서 여론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선거 막판 여러 논란으로 인한 공천 잡음을 비롯해 경선 일정이 다소 늦어지는 선거구가 생겨났다.

국민의힘 강세지역인 대구경북의 경우 대부분 후보 다자 구도가 형성되면서 경선을 통과하기 위한 여론전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후보들은 수천 명에 달하는 책임 당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가운데, 경선 일정이 늘어날 수록 자연스럽게 홍보 문자 발송 등 전체 비용 상승이 불가피한 모습이다.

문자 한 번에 몇백만원이 소요되는 만큼 각종 홍보 비용까지 추가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런 막대한 비용을 치렀음에도 정당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은 선거비용 보전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비로 충당하는 구조다.

청년 등 정치신인의 입장에서는 몇백만원 이상의 비용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일부 후보들은 대출받아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총선 공천에 신청했던 한 청년 후보는 "공천을 받기 위해선 전략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당원 여론전을 펼쳐야 하는 만큼 상당한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자금 여력이 없는 후보들은 어려운 싸움이다. 최대한 아끼면서 했지만 결국 빚이 생겼다"고 말했다.

청년 등 신인 외에 기존 후보들도 지난 총선에 비해 비용이 상승하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예비 후보부터 뛰면서 경선에 결선까지 치를 경우 비용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현역이 유리한 가운데 내부 경선조차 비용이 클 경우 정치 신인이 넘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새롭게 생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덧붙여서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일부 지역만 비용이 들지 않는 국민추천제로 진행하면서 막대한 비용이 드는 전국의 다른 선거구들과 공평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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