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누명 벗고 싶다” 中서 10년 갇혀 지낸 사업가의 절규

MLCC 기술력 바탕 중국인과 동업하려다 석연찮은 기소, 징역 5년 판결
재판과정 방어권 행사 제한, 가혹한 수감생활 시달려
옥중에서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암 진단
우여곡절 끝 '빈털터리' 귀환했지만 출국금지 당해 재기도 막혀

10년 전 중국 공안에 의해 억류, 석연치 않은 기소와 재판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지역 사업가 김형태 씨가 대구 북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에게 관련 서류를 내보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10년 전 중국 공안에 의해 억류, 석연치 않은 기소와 재판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지역 사업가 김형태 씨가 대구 북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에게 관련 서류를 내보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14년 중국 공안에 억울하게 억류됐다가 옥고를 치른 김천의 한 사업가(매일신문 2020년 1월 20일 등)가 지난달 23일 귀국했다. 그는 석연치 않은 재판 끝에 사실상 10년의 옥살이를 마쳤지만 정부로부터 여권 발급 제한 통보를 받아 재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연찮은 中재판…사실상 10년 감옥살이

박막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생산제조 분야의 특허를 여러개 보유한 김형태(57) 씨는 2012년부터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해왔다. 그러다가 알게 된 중국인 A, B씨와 함께 동업을 시작한 것이 사태의 단초가 됐다. 당시 A씨가 약 80억원, B씨가 약 8억원을 투자했고 김 씨는 기술 분야만 전담했다.

2014년 2월, 중국인 두 사람의 갈등으로 회사 운영이 중단됐고, 가장 많은 돈을 투자했던 A씨가 B씨, 김 씨를 횡령 혐의로 중국 공안에 고소했다. 김씨는 회사 자금 3천여만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김 씨는 경영에 참여한 적이 없고 월급만 받았다고 항변했지만 공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는 증거 부족으로 석방됐지만 고국으로 돌아가려던 차에 중국 공안이 김씨에게 보석, '거주감시' 처분을 내리고 여권을 압수했다. 억류 상태에서 공안 재조사와 검찰 기소 반려가 반복되다 김씨는 2015년 12월에야 기소가 됐다. 죄목은 횡령에서 합동사기로 바뀌었다.

사건은 빠르게 처리되지 못했다. 2018년 5월에야 1심 판결 선고 기일이 잡혔는데 검찰은 재판 당일 김씨에게 형사 책임이 없다며 공소를 취하했다. 결과가 나온 후 김씨는 압류된 여권을 찾으러 갔지만, 공안은 검찰 내부 사정이 있다며 여권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1개월 뒤 검찰은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며 김씨를 또 다시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은 김씨가 당시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던 장비납품업체 사장 C씨와 합작해 장비대금을 허위로 부풀려 회삿돈을 횡령,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장비 대수와 사양을 고려해 장비대금이 산정됐고 돈도 C씨 계좌로 입금됐는데 횡령으로 재기소 됐다"고 하소연했다. 정작 같은 혐의로 한국에서 기소된 C씨는 무죄 판결이 나왔다.

중국 현지 재판과정에서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컸다. 일례로 재기소 후 재판에 나온 진술서에는 김씨의 진술과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김씨는 "당시 통역사가 조선족 공안으로, 그 사람이 불러주는 내용이 맞으면 맞다, 아니다고 답했는데, 막상 법정에서 본 진술서는 내 진술과 달랐다. 녹화된 진술 장면을 요청했으나 재판장이 확인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억울해 했다.

김씨는 결국 중국 재판부로부터 2019년 12월, 징역 5년형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앞선 5년 간의 거주감시 기간은 형량에 산입되지 못했다. 김씨는 "고소인이 칭다오에서 자금 능력이 좋고, 회삿돈 일부가 지역 고위 공무원 손으로 들어갔다는 점 때문에 고소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판이 흘러간 것 같다"고 추정했다.

◆지금도 자다 깨면 중국으로 착각, 경제적 어려움도

"자다 깨면 아직도 중국인 줄 알고 공포감이 밀려온다. 내 집이라는 걸 알고 나서야 잠이 든다."

김씨는 출소한지 한 달이 지나도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중국에서의 10년이 '악몽'같다고 했다.

5년 동안의 수감 생활동안 김씨의 체중은 20㎏가량 빠졌다. 13㎡짜리 방에 8명이 잠을 잤고, 용변은 방 안에 설치된 칸막이 없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해결했다. 하루 12시간 동안 육체노동에 매주 수요일은 사상교육을 받았다. 식단의 대부분은 흰죽, 가끔 나오는 무 반찬은 상한 식재료로 만든 것 같았다고 했다.

출소 후 10년 만에 만난 어머니의 몸 상태는 김 씨를 더 힘들게 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김씨가 중국에서 옥살이를 할 동안 췌장암에 걸렸고, 지난 해 9월부터 치매 증세도 생겼다. 김씨는 "중국에 억류돼 아버지 임종도 못 지켰는데 어머니 병세도 악화돼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귀국 뒤 경제적 곤궁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보석금과 변호사 비용만으로 1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쓰였기 때문이다. 자금은 고향에서 연로한 부모님이 보내주신 돈과 여동생의 퇴직금으로 조달했다. 현재 투병중인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김 씨는 매달 어머니 명의로 나오는 기초 생활비 70만원으로 생활 중이다. 김씨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고 한 달 뒤쯤 나오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영사 면회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설상가상 출국 제한 조치

김씨는 그간 외교부에 청원을 넣는 등 도움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바램과 달리 적극적인 조치는 이뤄지지 못했던 점도 아쉽다고 했다.

지난 2019년 외교부는 칭다오 주재 한국영사관에서 김씨에 대한 수시 영사면회, 자문변호사를 통한 법률지원 등 영사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영사 면회는 3개월에 한 번 이뤄지다가 1년에 한 번 꼴로 진행됐다. 자문변호사도 선임되지 않았다. 외교부는 중국 측에 항의 공한을 보냈지만, 중국 사법기관의 수사·재판에 개입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현재 김씨는 남아있는 특허기술 2개로 새로운 사업을 진행해야만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사업을 펼칠 계획이었으나, 귀국 2주 만에 한계에 봉착했다. 이달 7일, 외교부로부터 여권 발급·재발급 제한 통지를 받아서다. 여권법 제12조에 따르면 '외국에서 중대한 위법행위 강제 퇴거 조치를 받은 사실이 있는 사람'은 2년간 여권 발급·재발급이 제한된다.

이에 김씨는 지난 19일, 외교부에 출국금지 조치에 이의 제기 서면서를 전달한 상태다. 외교부 민원과 관계자는 "외교부에서 김 씨의 사연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사실이 있어도, 검토 결과를 기다려야 봐야 한다"고 일축했다.

전문가는 사업 목적의 중국 진출은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립외교원 교수를 지낸 이지용 계명대 중국어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은 법치사회가 아니고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라 사법부가 독립돼있지 않다"며 "법원, 공안, 검찰을 돈으로 매수해야만 승소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패소하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유명 대기업도 배터리 기술을 빼앗기는데 김 씨의 사례처럼 개인 사업가는 대응하기가 더욱 힘들었을 것"이라며 "중국이 공산당 사회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정부 조치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그간의 누명을 벗기 위해 변호사 비용이 마련되는 대로 재심을 신청할 계획이다. 끝으로 김씨는 "우리 정부가 국민들을 더 보호해줘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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