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통합 무임승차 도입 이후…버스 기사 “노인 승객 늘면서 늘 시간 부족”

무임승차 정책 이후 노인 승객 늘어나
정류장 머무는 시간 더 길어져…배차 시스템 개선 없이 그대로
기사들 “휴식 시간에 버스 정비 무리한 운행 땐 안전사고 위험”

대구시 노인 무임승차 시행 300일을 맞은 25일 중구 서문시장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탄 고령(89)의 어르신이 불편한 몸을 이끌며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이 어르신은 자리에 앉기까지 약 1분 정도 걸렸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시 노인 무임승차 시행 300일을 맞은 25일 중구 서문시장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탄 고령(89)의 어르신이 불편한 몸을 이끌며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이 어르신은 자리에 앉기까지 약 1분 정도 걸렸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지난 25일 버스 기사들이 종점에 도착한 뒤 버스 내부 청소를 위해 준비 중이다. 김지효 수습기자
지난 25일 버스 기사들이 종점에 도착한 뒤 버스 내부 청소를 위해 준비 중이다. 김지효 수습기자

"사랑합니다."

지난 23일 오전 10시쯤 '월배시장 앞' 버스 정류장. 끌고 있던 보행기와 함께 버스를 타던 80대 여성이 한참 주머니를 뒤진 뒤 어르신 통합 무임 교통카드를 꺼내 들자 친절한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A씨는 한발 앞서 버스에 탄 50대 남성이 보행기를 대신 들어준 덕에 평소보다 쉽게 버스에 탈 수 있었다고 했다.

836번 버스기사는 자리로 걸어 들어가는 A씨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A씨가 무사히 자리에 앉자 버스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고, 버스에 타고 있던 노인 승객들 사이에서는 "어머나", "아이고" 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했다. 이 정류장에서는 승객 2명이 타는데 2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어르신 대중교통 통합 무임승차' 정책이 시행되면서 버스 기사들이 '시간과의 싸움'을 펼치고 있다. 배차시간과 휴식시간은 그대로지만, 노인 승객이 늘면서 정류장에 머무는 시간은 더 길어진 탓이다.

이날 취재진이 탑승한 836번 버스는 전체 승객 20여명 대부분이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었다. 서문시장, 방촌시장 등 전통시장 7곳을 거치는 이 버스는 시장을 즐겨 찾는 노인들의 인기 노선이다.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들고 버스에 타고 있던 이순덕(82) 씨는 "혼자 살면서 사람이 그립다 보니 매일 습관적으로 버스를 타고 서문시장을 찾는다. 차비 부담이 없어 시장에 가면 나와 같은 또래들이 많이 나와 있다"며 "원래 한 달 버스비가 8만원 정도 들었는데 무임승차가 가능해지면서 한결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다른 버스 노선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부축을 받아 힘겹게 726번 버스 승차 계단을 오르던 김모(83) 씨는 "조금씩 장도 보고, 세상 구경도 할 겸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간다"며 "2년 전 버스에서 발을 헛디뎌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교통수단이 없으니 조심스럽게 버스를 이용 중"이라고 했다.

노인층의 버스 이용이 늘면서 버스 기사들은 근무여건이 더 악화됐다고 입을 모았다. 버스 운행 시스템 개선 없이 무임승차 정책을 시행하다 보니 버스 내 안전사고 위험성이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726번 버스를 몰던 김모(49) 씨는 "무리하게 배차시간을 맞추려다 사고라도 나면 결국 버스기사 책임이다. 한 달 무사고 수당 15만원도 못 받게 된다"며 "노인 무임승차 정책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버스기사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점에서 버스를 청소하고 있던 버스기사 50대 유모 씨는 "노인 승객이 많이 타는 서문시장 전까지 일부러 버스를 빨리 운행했다. 그때 시간을 벌어둬야 종점 도착 후 청소를 할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무임승차 정책 도입 후 매 순간 시간의 압박을 받는다. 배차시간은 늘 그대로니 결국 기사들이 점심시간, 휴식시간을 빼 버스 정비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버스 배차시간 조정뿐 아니라 저상버스 등 관련 시설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도우석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배차시간 개선뿐만 아니라 승·하차 계단 손잡이 등 각종 안전장치가 확충돼 노인 승객은 물론 버스기사에게도 최대한 사고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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