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가족 회사’로 전락한 선관위, 이대로 둘 수 없다

감사원의 선거관리위원회 경력직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한 감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2013년부터 10년간 291건의 채용 과정에서 중앙선관위 400여 건, 지역 선관위 800여 건 등 1천200여 건의 규정 위반과 고위 간부 자녀의 특혜 채용 등의 비리가 적발되었을 뿐 아니라 감사 과정에서 조직적 증거 인멸 등의 감사 방해 행위도 적발됐다.

중앙선관위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기 위해 설치된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그런 만큼 정치적 중립성은 물론 높은 청렴도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채용 비리 의혹이 백일하에 드러남에 따라 선거 및 투·개표 관리 기관으로서 국민적 신뢰를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사무총장이 전횡을 일삼고 직원들의 복무 기강 해이도 심각한 데다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채용 비리가 만연한 조직이 투·개표와 상시적 공직 선거운동 감시 등의 선거 관련 업무를 공정하고 철저하게 관리해 왔다고 믿기 어렵다. 무엇보다 독립기관으로서 감사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고위 간부 자녀나 친인척을 부정한 방법으로 특혜 채용한 것은 시대정신인 공정·상식·정의의 파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특혜 채용 의혹이 제기되자 선관위는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는 그게 독립기관의 위상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채용 비리가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는 수작임을 '확인'해 준다.

채용 비리가 드러나면서 선거 관리 업무가 제대로 이뤄져 왔는지도 도마에 올랐다. 그런 의심은 이미 2020년 총선 때 빚어진 '소쿠리 투표 사태'로 제기된 바 있다. 소쿠리 투표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님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선관위의 일탈은 국정감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선관위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선관위의 채용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선관위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절실하다. 당분간 대형 선거가 없는 지금이 그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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