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성걸 칼럼]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국민의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최근 국민의힘과 관련해 가장 핫한 키워드는 단연 '한동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후배로서 40대 말에 전격 법무부 장관에 발탁됐던 한동훈은 재임 중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끊임없는 공세를 보기 좋게 받아내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자신을 공격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속사포 같은 말솜씨에 보수 우파 국민은 환호했다.

윤석열 정부의 명운을 좌우할 제22대 총선에 비대위원장으로 차출된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유례없는 참패를 기록하며 물러났었다. 그런 그가 국민의힘 관련 뉴스의 중심에 선 것은 선거 참패의 원인 분석을 위한 백서 작성 과정에서의 잡음과 차기 당대표 후보 경선에의 참여 가능성 때문이다.

192석을 범야권에 몰아준 국민의 의사는 분명하다. 윤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협치와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경고와 함께 민생을 제대로 챙겨 국민 삶을 편하게 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런데도 영남 자민련 수준으로 쪼그라든 국민의힘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알량한 당권 투쟁에 허송세월하고 있다. 사실은 과거 자민련보다 훨씬 더 나쁜 상황이다. 자민련은 오롯이 집권 여당이 된 적이 없지만 국민의힘은 엄연히 대한민국의 5년을 책임져야 하는 여당이기 때문이다.

총선 참패의 원인을 분석할 백서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중립성 시비에 휘말린 정당이 나라를 경영할 자격이 있는가. 한동훈이 당권에 도전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미리 방어막을 치고, 차기 대권 도전의 경쟁자가 될 것을 우려해 사사건건 막말로 시비를 거는 분이 당의 원로란다. 국민이 다음 대선에서 그런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이번 총선의 참패 원인은 분석하거나 조사해 볼 필요조차 없이 너무나도 자명하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대표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자의적이고 독재적인 공천, 그리고 일부 후보들의 자질 및 막말 논란 등에 휩싸여 있었고, 조국 씨의 조국혁신당도 대표를 포함, 다수 후보가 범죄 피의자로서 재판 중이었다. 그런 정당과 후보들보다 국민의힘이 선택받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스스로 부르짖었던 공정과 상식, 정의와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은 당선 직후 있었던 지방선거에 개입해 경기지사 후보에 출마했던 유승민을 인위적으로 배제시켰다. 이후 이준석 대표 축출 과정이나 김기현 대표 만들기 과정에서도 공정과 상식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만든 김기현 체제도 버리고 여러 비대위를 거쳐 한동훈에게 선거를 맡겼으면서도 또다시 그와 대립각을 세우며 스스로 패배를 자초했다. 오죽했으면 수도권과 충청권의 민주당 압승의 최대 공로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얘기까지 나왔을까. 그나마 낙동강 벨트에서 국민의힘이 크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이 역효과를 냈기 때문이었다.

민주당은 입만 열면 특검과 개헌, 그리고 탄핵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김건희 여사 특검 등 현재 경찰과 검찰, 혹은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도 모두 특검으로 압박해 이를 거부하는 대통령을 고립시키고 있다. 현행 3분의 2가 아니라 60%인 180석 이상으로 대통령의 재의 요구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원포인트 개헌도 주장한다.

윤 대통령은 국회 동의가 필요한 어떤 일도 할 수 없고, 민주당은 각종 선동과 상징 조작을 통해 검사와 장관, 심지어 대통령 탄핵도 수시로 언급하며 사실상 협박하고 있다. 곧 이어질 제22대 국회 원 구성 협상에서도 운영위, 법사위는 물론 21대 국회 전반기처럼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려 할 것이다.

상황이 이토록 엄중한데 국민의힘은 한가하게 당권 싸움에 빠져 있다. 당대표에 출마하느냐 마느냐는 후보자들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고 선택은 전당대회 규칙에 따라(현재는 당원 100%) 당원과 국민이 할 일이다. 지금은 뼈를 깎는 혁신을 할 때지 침몰하는 배의 선장을 누가 맡을 것이냐를 놓고 다툴 때가 아니다. 범야권에 192석의 국회 의석을 빼앗긴 참패를 겪었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국민의힘은 더 이상 집권 가능성이 있는 정당이라 할 수 없다. 차라리 스스로 해체해 새로운 보수 정당이 태어날 길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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