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노인은 청년의 미래다

권은태 (사)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권은태 (사) 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권은태 (사) 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옛 금호호텔 자리의 오피스텔, 원래 완공 예정일이 2019년 초였다. 그런데 아직도 그대로다. 공사가 시작될 때 일터가 바로 옆이어서 소음과 분진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곧 완공되겠거니 하던 차에 갑자기 현장이 조용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건설사가 자금난으로 공사를 멈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 회사 관계자는 고객들로부터 받은 돈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의아해했다.

그로부터 1년쯤 뒤 TV에서 우연히 창고에서 살고 있는 70대 부부를 보았다. '깨끗한 집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는 할머니의 인터뷰, 그리고 '오피스텔'이라는 자막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나지막이 탄식이 나왔다. 바로 그 오피스텔 분양 피해자였다. 바닥에 세간을 늘어놓은 채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 칠십 평생 모은 돈을 거기에 모두 갖다 넣었을 것이다.

그들이 잘못한 건 사실 눈곱만큼도 없다. 긴 세월 자신들이 살아온 사회의 시스템과 상규를 따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고 사회는 그들을 외면했다. 만회할 시간도, 회복할 여력도 없는 노부부를 구제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이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알려진 바로 그 오피스텔 분양 건으로 인한 피해자의 다수가 노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수 노인의 일'은 '다수 청년의 일'에 비해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속보는 나오지 않았고 그 일은 금세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2년 전 봄이었을 성싶다. KBS대구방송국이 'GPS와 리어카'라는 제목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방송 사상 최초로 폐지 줍는 노인들의 실태를 취재했는데 그 과정에 10명의 동의를 얻어 GPS 수신기를 부착했다.

그렇게 이동 거리와 노동시간을 분석한 결과, 한 사람당 하루 평균 13㎞를 이동하고 11시간 30분을 일했다. 그렇게 해서 한 달에 64만2천원을 벌었고 그걸 시급으로 환산하면 948원, 2022년 당시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 9천160원이었다. 캄캄한 새벽부터 다시 캄캄한 밤까지, 폐지 줍는 노인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무릎과 허리는 물론이고 리어카를 끄느라 어깨마저 아파 진통제를 먹으면서도 어떻게든 일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모두 같았다.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혼자 화장실에서 자주 운다는 할머니는 "삶 그 자체가 슬프지"라고 했다. 어떤 할아버지는 처음엔 창피해 사람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폐지를 주웠다고 했다. 쪽방에서 혼자 식사하던 82세의 할아버지는 제일 드시고 싶은 게 뭐냐는 물음에 '국물'이 먹고 싶다고 했다. 방송의 반향은 매우 컸다. 관련 보도가 잇따랐고 다수의 지자체들이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보건복지부는 폐지 수집 노인 지원 표준 조례안을 마련해 각 지자체에 안내하는 등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1년 남짓 지난 지금, 다시 잠잠하다. 지난 4월과 5월에 서울시와 광주시가 관련 조례를 개정 또는 시행했으나 대구시는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다. 지난 2021년, 대구시의회 김재우 의원이 발의한 조례에 근거해 폐지 줍는 노인에게 야광 조끼 1천여 벌을 지급한 게 전부다.

지금, 대한민국의 노인은 힘들다. OECD가 통계를 발표한 2009년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 부동의 1위 국가다. 무려 OECD 평균의 3배에 가깝다. 거기에 노인 자살률도 1위다. 어떤 청년이 서류 한 장 써내고 매달 수십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때 어떤 노인은 폐지 가득 실은 리어카를 하루 5시간씩 끌고 다녀도 한 달에 16만원을 채 못 번다.

비록 취소는 하였지만 국토부는 '고령자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성급히 발표해 노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 국책 연구기관은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을 늘리기 위해 노인들을 물가가 저렴한 국가로 이주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노인들은 생산성이 떨어지니 국외로 내쫓자는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기가 막힌다. 늙고 병들면 버려지는 오카방고 삼각주의 사자 무리가 떠오를 지경이다.

청년이 집이 없으면 난리를 쳐도 노인이 쪽방에 사는 건 그러려니 하는 사회, 노인이 단지 생존을 위해 몸이 아파도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 그런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노인의 오늘은 결국 청년이 맞이할 미래다. 우리 사회의 희망이 거기서부터 보여야 한다. 인간이 인간으로 계속 살아가기 위한 그 모든 모색과 방안이 노인의 삶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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