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생 김성진 작가는 드라마 장르의 폭이 넓다. 33세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광범위한 글쓰기로만 측정하면 중견작가다. 20여 편의 희곡과 TV, 웹드라마와 각색한 작품들까지 그가 대중적으로 섭취한 작품을 보면 1년 2-3편은 써온 셈으로 〈The time without her〉은 나고야 TV를 통해 일본 드라마로 올해 11월 방영될 예정인 것만 봐도 작가적 장르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희곡 외에도 드라마, 시나리오, 웹소설과 각색까지 장르를 넘는 전방위적인 작가 활동과 연출을 보여주고 있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 방송극작과를 2014년도에 졸업하고 그해 갱스터 연극 <치고받고>를 작, 연출한 이후부터 정범철 사단이 이끄는 '극발전소301'(2016)에 입단해 극단 몽중자각(2019) 창단 이전까지와 '극발전소301' 활동 시기는 희곡과 연출적인 역량을 동시적으로 섭렵할 수 있는 극작가 정범철의 키즈로 성장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이러한 작. 연출적인 근본적인 토양은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본인의 작품을 연출할 뿐만 아니라 다른 희곡작가의 작품도 무대화할 정도로 감각적인 연출력도 보여주고 있다. 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하면서도 '창작과 무대'라는 학과 연극반을 통해 희곡을 쓰고, 글의 언어가 무대로 형상화될 수 있도록 자발적이면서도 집단적인 훈련을 받은 것도 작가적인 역량을 키우는 시간이었다면, (사)한국 극작가협회 극작 워크숍을 통한 희곡 쓰기 훈련은 작가의 희곡들을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할 수 있다. 그의 희곡 「이름탐한대가」, 「가족사진」, 「소년 공작원」 세 편이 『한국희곡 명작 선』으로 희곡집(평민사)을 발간할 정도로 그의 생산적인 희곡은 2016년부터 2024년까지 20여 편의 희곡들이 집중적으로 창작되거나 발표된 작품들이다. 대체적으로 작, 연출로 무대화되었거나 연출가들에 의해 공연되었다는 점에서 놀라운 희곡 쓰기의 속도감을 보인다.
『동시대 단막극선 2』(연극과 인간)에서는 이강백, 오세영, 전옥주 작가들의 희곡과 김성진 작가의 「먹감나무 아래 있는 집」과 러시아어로 번역된 『한국 단막극』에는 단막극 「빈방」 수록되어 있다. 김성진 작가는 연극 연출가로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특히 그가 타 작가의 연출작품 중에서 평단에 주목받았던 공연 작품은 <물고기의 남자> (작, 이강백 연출 김성진), <밀정 리스트>(작, 정범철 연출 김성진)이다. <물고기 남자>는 '자본독식주의'로 오염된 죽음의 물속을 헤엄치며 삶의 아가미로 허우적 되는 한국 사회 전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밀정 리스트>는 영화적 기법으로 밀정들의 친일 역사성을 감각적인 연출력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 절망을 작가적 언어로 치유하는 위트의 감각.
이번 『김성진의 희곡집』에 수록된 「마리모에는 소금을 뿌려 주세요」 (2021) 「탄내」 (2020) 「가족사진」 (2019) 「안녕, 오리」 (2019) 「조선궁녀 연모지정」(2020) 희곡은 대체적으로 2019년부터 2020년 사이에 발표된 희곡들이다. 「탄내」는 '대전창작 희곡공모'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고 「마리모에는 소금을 뿌려주세요」는 대한민국연극제 명품 단막 희곡에 당선된 작품으로 작, 연출을 겸한 희곡들이다. MZ세대들을 대표할 수 있는 작, 연출을 통합하는 청년 예술가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으랏차차 세우다 공모전' 선정에 당선된 「당신의 오리는 안녕하십니까」(2017) 희곡을 기점으로 그의 출현은 MZ세대들이 바라보는 돌직구적인 한국사회의 현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부조리한 모순과 현실, 결혼관과 취업, 세대 갈등과 기성세대의 불신, 희망이 부재한 청소년들의 삶과 고뇌 등을 세밀한 작가적 시선으로 포착한다. 극 중 인물들은 대체로 삶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들을 내포하며 작품이 관통하고 있는 것은 삶의 욕망으로 점화될 수 없는 사랑의 결핍들이다. 이들의 결핍은 충분한 삶의 영양소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와 삶에서 발화되는 모순과 부조리에서 그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삶의 불균형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관심, 연대, 공감, 사회제도와 정책들이다. 이들 삶은 강렬한 햇빛이 스며들지 않는 모퉁이에 놓여있다. 그러니 사랑이 결핍될 수밖에 없으며 삶에 영양소가 차단된 극 중 인물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절망과 죽음뿐이다.
절망의 사회에서 희망을 기다리는 「안녕 오리」도 그렇지만, 대출 연대보증으로 한 가족이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균열 가는 가족사진도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매몰되어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희망이 전소된 세상에서는 죽음으로 맞서는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극 중 인물들의 삶을 극한의 세상으로 내몰지 않는다. 희망에 대한 기다림은 물병 속에 갇혀 소금으로 성장하는 마리모를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구조의 삶으로 바라보고 있다. 소금의 영양분으로 살아가는 희귀 녹조류인 마리모는 물병 속으로 퍼져가는 염분의 농도로 죽음이 갈리게 된다. 염분이 말라 죽어 가는 마리모의 물병 속으로 소금을 뿌려달라고 말한다.
물의 온도와 양, 공기 순환의 환경, 어항과 물병은 삶의 구조이고 마리모는 인간과 동일시되는 삶과 인생의 환경들이다. 왕따를 당하고 있는 「탄내」의 극 중 인물 승근이의 자살소동과 친구들의 집단적인 언어적 폭력성도 타인에 대한 사랑이 결핍되어 일어나는 행위들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희망을 기다린다. 작가는 이들 세상을 절망적인 죽음으로 내몰지 않으며 악물고 웃음으로 버틴다. 그래서 김성진의 이야기는 어둡고, 불안한 사회를 은유하는 것 같으면서도 따뜻하다. 200년 동안 이말산 묘역을 떠나지 날 수 없는 「조선궁녀 연모지정」의 궁녀 연화와 내시의 사랑처럼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불안해도 200년을 기다리며 위트의 웃음을 잃지 않고 우직하게 버티며 삶의 고뇌와 불안함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소금 같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림으로 나타나고 있다.
◆ 김성진 작가의 기다림과 희망의 은유
「안녕 오리」는 오리보관소가 배경인 판타지 우화 희곡으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목에 긴 줄을 매달고 태어나고 작은 오리 한 마리가 달려있다. 사람들은 오리가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 자신을 하늘 이로 올려다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생활한다. 오리를 아끼고 새장을 만들어 오리를 키우는 것이 삶이다. 언젠가는 이들이 희망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기다림으로 말이다. 그러나 오리가 새가 되는 것을 본 사람도, 하늘로 날아간 오리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리를 키우는 일은 힘들어지고 사람들은 오리를 죽이고 줄을 끊어낸다. 오리에 대한 꿈의 환상은 절망으로 바뀌고 오리를 단지 어릴 때 잠시 키워보는 애완동물쯤으로 여기게 된다. 거리는 전쟁터보다도 지독한 오리들의 죽음으로 넘쳐나고 정부는 죽은 오리들을 처분할 수 없어 보관소에 맡기는 시민들한테는 생활보조금을 지급하게 된다. 우리 보관소에 온 한 남자(어른)는 오리 보관을 거부당하고 배고파하는 오리를 위한 자기 몸을 오리에게 던져주고 충격을 받은 아들은 자신의 목줄을 끊어 버리고 오리를 죽여버린다. 「안녕 오리」는 우화적인 희곡이면서도 현실을 투영하는 은유적인 구조가 탁월한 작품이다.
새장은 삶의 집으로 텅 비어 있을 뿐이다. 오리가 새가 되어 새장을 달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기다람만이 유일한 희망이고, 반복될 뿐이다. 새장을 매달고 오리를 키우기 위해 어른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날 수 없는 절망의 세계이다. 미래가 없는 세상에서 어린이는 종이비행기를 접어 하늘에 날리는 행위를 반복하고 마법처럼 이들이 기다리던 새가 된다. 오리 사체로 넘쳐나던 도시의 사람들의 절규는 희망으로 아우성 거리고, 담당관은 여전히 오리보관소만을 지킬 뿐이다. 오리가 새가 되어 날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기성세대의 불신으로 비롯된다.
정부는 오리를 맡기고 지급되는 보증대여프로그램으로 국민을 현혹할 뿐, MZ세대가 바라보는 정책은 삶의 현실이 될 수 없는 불신과 불안감으로 표출된다. 부는 대물림되고, 삶의 불평등은 희망의 기다림만으로 지속되는 도시이다. 넘쳐나는 오리들의 죽음에도 정부는 오리보관소만을 지킬 뿐 미래 세대들에게는 미래가 없는 절망의 도시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오리들이 죽어가는 불투명한 세계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우울, 불안, 고독, 절망과 죽음으로 세계로 이어진다. 희망이 소멸 된 세상이다. 텅 빈 새장, 오리가 새가 될 수 있다는 꿈같은 세상의 현혹은 어른들도 몸을 희생하면서도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세계인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죽음의 절규를 종이비행기를 접으면서 희망으로 기다린다. 작가의 기다림은 삶의 체험적 아픔과 통증들을 「안녕, 오리」를 통해 은유적으로 들어내고 있다. 세상을 이처럼 불안한 세계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작가적 내면은 「안녕 오리」에 등장하는 극 중 인물 어린이와 작가는 유년 시절로 동일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것이 작가를 이처럼 비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했을까. 1991년생 33세의 청년 작가 김성진이 다량의 희곡을 섭취하고 세상을 향해 빠른 속도로 희곡을 토해 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성장기는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아픔의 경험들이 투영되는 것 같다. 영정 사진을 찍겠다며 허름한 사진관에 들어와 살고 싶지 않다며 막무가내로 영정 사진을 찍어 달래는 「가족사진」의 고등학생 아들도 그렇고,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마리모에는 소금을 뿌려 주세요」도 불안전한 삶의 허무와 고독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김성진 작가의 성장기가 느껴진다.
33세의 나이에 방대한 장르의 희곡과 대본을 쓸 정도로 그의 내면은 극 중 인물들이 경험하고 있는 세상을 이미 다 경험한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탄내」에 등장하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유튜브 영상으로 자살 예고편을 만들고 친구들의 반응을 보려고 하는 승근처럼 그의 희곡은 죽음과 절망, 불안과 우울로 채워져 있으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위트의 감각에 있다. 그의 낙천적인 성격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김성진 작가는 삶에 어두운 이면을 바라보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로 채워지는 그의 희곡은 아프면서도 삶의 통증을 치유할 수 있는 위트의 감각이 넘치는게 특징이다.
그만큼 김성진 작가의 희곡은 경험적 서사가 내재하여 있는 것처럼 일상적인 풍경과 언어에 맞닿아 있으며 삶을 관조(觀照)하는 작가적 시선은 상상으로만 채워낼 수 없는 경험의 섬세한 설정과 서술이 많다. 그가 희곡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궁녀 연모지정」에 등장하는 20대 중반 공익근무요원처럼 능청스럽게 연상의 누나한테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위트의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김성진 작가의 희곡에는 아픔도, 절망도, 희망의 부재로 가득 차 있지만 드라마, 영화, 희곡 등 장르를 넘나들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프고, 견디기 어려워도 웃음을 잃지 않는 타고난 작가적 기질에 있다. 이번에 발표되는 「김성진 희곡집」은 33세의 나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메시지는 무겁고 언어는 MZ세대처럼 감각적인 위트로 넘친다. 시공간을 전개시키는 구성은 때로는 영화와 드라마적이면서도 연극적인 구도를 이탈하지 않고 그만의 세계로 밀고 가는 힘도 느껴진다. 극 중 인물들의 언어로 발화되는 의미들은 작가가 경험을 하지 않거나 희곡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서사로 묻어 나올 수 없을 만큼 단단하다. 앞으로 「김성진 희곡 2」에서는 삶의 세상을 바라보는 아픔의 언어가 치유된 희곡들이 작가 특유의 기질로 더 담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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