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상대를 떠나보낸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그것이 친구,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라면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변려견, 반려묘 등 십여 년간 함께하는 가족 같은 반려동물이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도 마찬가지다.
1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천5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4가구 중 1가구는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이다. 반려동물을 그저 작고 귀여운 물건이 아닌 어엿한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반려동물 상실에서 비롯되는 아픔을 겪는 사람도 늘고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
13년 간 키운 반려동물을 몇 달 전 떠나 보낸 A씨는 자신의 반려동물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상실감에 허우적대고 있다고 털어놨다. 사람과 이별하는 것 이상의 상실감과 허탈함, 우울함을 느끼고 있다는 A씨는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먼저 떠난 반려동물을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이 줄줄 흐른다.
A씨는 "사랑하는 반려견을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다는 생각만 하면 절망적이다.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다른 가족들이 있어서 힘이 되지만 어쩔 땐 그렇기 때문에 슬픔이 더욱 짙게 내려 앉을 때가 있다"며 "수개월 째 불면증을 겪고 있는데 '펫로스 증후군'인 것 같다"고 전했다.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란 자신의 반려동물이 사라진 것에 대한 극심한 슬픔과 우울감을 경험하는 정서적 상태를 말한다. 주로 반려동물이 사망하거나 유실 됐을 때 발생한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부터 더 깊게는 죄책감, 고립감을 느껴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 등의 증상을 보인다.
반려인구가 늘어난 탓에 반려동물을 잃은 후 펫로스 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도 적지 않다.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들은 반려동물이 죽은 뒤 느끼는 슬픔은 실제로 가족 구성원이나 절친한 친구를 잃었을 때의 슬픔과 비슷한 정도라고 말한다.

정운선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3년 8월 국제학술지에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반려동물의 죽음을 경험한 137명 중 55%(76명)가 슬픔 반응 평가(ICG)에서 보통 정도 이상의 기준점인 25점을 초과했다. 연구팀은 "이는 일반적인 사별의 수준을 넘어 지속해서 심리적인 부적응을 초래할 정도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상실의 아픔 역시 오랜 시간 이어질 시 정서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고 슬픈 감정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슬픔이 만성화돼 우울증으로 악화할 수 있어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명철 수의사는 "대신 이런 기간이 너무 힘들고, 한 달 이상 극심한 고통으로 이어진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기를 추천한다"고 강조했다.
◆나도 혹시 펫로스 증후군?
전체 인구의 30%에 달하는 1천500만 명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으로 추산된다. 반려동물 상실에서 비롯되는 아픔을 겪는 사람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펫로스 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은 감정적 반응과 행동적 반응으로 나뉜다. 감정적 반응으로는 ▷현실부정(현실회피) ▷눈물 ▷정신혼미 ▷불면증 ▷식음전폐 ▷분노 ▷죄책감 ▷고립감 ▷우울감 등이 있다.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 등 반려동물이 죽기 전 모습들과 행동들을 계속 곱씹어보는 것도 감정적 반응을 증폭시키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반려동물과의 추억이 깃든 물건에 집착해서 곁에 지니고 다니거나 혹은 버리지 못하는 등의 행동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추억이 깃든 물건을 외면하거나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하는 등 갖가지 회피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미국수의사협회는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한 5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이들은 ▷반려동물이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기 ▷슬픈 감정을 충분히 느끼기 ▷반려동물과의 추억을 떠올리기 ▷반려동물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되새기기 ▷다른 사람과 감정을 공유 등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키우던 말티즈 두 마리를 모두 하늘나라에 보낸 유모(30) 씨도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유 씨는 "사랑하는 이가 떠나면 상실감과 우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운 마음이 들지만 '같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니 괜찮다', '그간 아팠으니 이제는 안 아프리라' 생각하면서 잘 추스르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펫로스 증후군을 이겨내려면 슬픈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적절하게 표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김효진 훈련사는 한 TV프로그램에서 "해외 연구 자료를 보면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다면) 감정을 감추려고 하지 말고 드러내라고 한다. 슬플 때 울고 직접 마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펫로스 증후군을 예방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반려동물이 사람보다 먼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반려동물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나 관련 전문가와 슬픔을 공유하고 위로받는 것도 증상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펫로스 증후군을 떨치기 위해
반려인구 증가로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이들이 늘어나니 반려동물 관련 기업들도 나고 있다. 상실감을 겪는 반려인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경북 소셜벤처 활성화 사업에 참여 중인 언페일(Unpeil)이 '펫로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신규 서비스 '굿바이 어게인(Goodbye again)'을 출시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력 서비스인 가상현실(VR)과 첨단 영상기술로 반려동물을 만들어 펫로스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반려인들의 마음을 치료한다.
이 외에도 펫로스 증후군 극복을 위한 미술치료 심리 패키지, 마음 치료소 어플리케이션 개발, XR(확장 현실)환경으로 구현된 디지털 펫(Digital Pet) 플랫폼 개발을 통해 이별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반려인들을 위로한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포포즈'의 가상 추모홀 '걸어온'도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였다. '걸어온'은 펫로스 증후군 케어의 일환으로 포포즈가 오픈한 온라인 가상 추모공간이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동물의 사후 세계관인 '블리스랜드'에서 보호자와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걸어온'에서는 추모 사진 등의 전시 뿐만 아니라, 방문자들이 간편하게 방명록에 안부 글 및 추모글을 남길 수 있도록 개발됐다. 편지를 주고받는 기능도 있다. 방명록과 편지는 같은 슬픔을 가진 보호자끼리 서로 위로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역할을 한다. 같은 상실감을 앓는 사람끼리 감정을 공유하고 공유 받는 것.
포포즈 관계자는 "앞으로 펫로스 증후군으로 고생하는 보호자분들 위해 향후 다양한 펫로스케어 프로그램을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하게 제공할 것"이라며 "단순히 반려동물 장례서비스 자체에 국한되지 않고, 보호자의 마음까지도 함께 보듬어 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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