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한 인간의 삶이 이토록 깊은 존경과 감동을 자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무엇이 되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온전히 실천하며 사는 사람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묵묵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빛나는 삶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이종두 박사다.
이 박사의 삶을 마주한 순간 가뭄 끝에 단비를 맞은 것처럼 반갑고, 고맙고, 무엇보다 가슴 깊이 벅차오른다.
학문과 연구로 이룬 결실을 단 한 사람의 명예나 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후학들을 위한 밑거름으로 되돌린 그의 선택은 진정한 어른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청도초등학교를 졸업한 이 박사는 경북대 의대를 거쳐 월남전 파병 군의관으로 활약하며 '청도인의 기개'를 알렸다.
군복무를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외과 의사로 성공한 그는, 일평생 일군 부를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았다.
타향에서 한시도 잊어본 적 없는 고향 청도 땅, 그곳에서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학비를 보태고 싶다는 마음으로 1978년부터 모계중·고등학교와 이서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1천달러씩 장학금을 보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 이 박사가 귀국해 잠시 고향에 머무르던 중 당시 모계중고 교사였던 생질서 김수영 선생에게 장학금 운영을 의논하면서 시작됐다.
부인의 권유로 1985년부터는 청도중·고등학교까지 확대하여 매년 100만원씩 지급해 왔고, 지금까지 무려 46년째 '경파 장학금'을 이어 오고 있다.
장학금의 명칭인 '경파'는 이 박사의 부친이자 교육자였던 이준기 선생의 아호에서 유래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혼란기 속에서도 교육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청도의 청소년들에게 올곧은 가르침을 전하려 애쓴 지역 교육계의 큰어른이셨다.
'존경의 물결'이라는 '경파'의 뜻처럼, 교육에 헌신한 선친의 뜻을 계승하고자 하는 아들의 마음은 단지 장학사업으로 부친의 뜻을 기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학생들의 삶의 길을 열어 주는 큰 물줄기로 이어졌다.
특히 이 박사는 "배움이란 곧 책임이다"라고 했다. 자신이 받은 교육의 기회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 기회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배움의 완성이라고 믿었다.
그는 장학금 수혜자의 '성공'보다 그들이 또 다른 누군가를 돕는 '순환'을 더 크게 바라보았다. 그 순환의 철학은 장학금 수혜자 중 다수가 사회 곳곳에서 유능한 인재로 자리를 잡으며 꽃을 피웠다.
이어 이 박사의 조카이자 모계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인 이승복 씨에게도 이어져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기부로 실천되고 있다.
단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으며 단지, 배움으로 받은 은혜를 잊지 않았다. 이 박사의 경파 장학금은 그의 인생철학이자,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고요한 메시지다.
그는 결코 '성공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돈을 나눈 것이 아니라 '나눌 줄 아는 사람'을 키우고자 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교육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지침이 아닐까.
오늘도 그는 조용히 후학을 돕고, 말없이 사회의 그늘진 곳을 비추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삶의 궤적은 이 시대 청소년들에게 '한국판 큰 바위 얼굴'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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