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나고 자란 때문인지 성년이 될 때까지 바다가 좋은 줄 몰랐다. 비취빛 파도에 황금빛 모래밭이라니, 어디 낯간지러운 연애소설에서나 쓰일 미사여구 취급이다. 어디서 출발하더라도 몇 분이면 볼 수 있는 바다가 어린아이 눈에 뭐 그리 특별했겠는가.
성년이 되고 대학 진학을 위해 대도시로 떠나고 나니 이상스레 바다가 그리웠다. 흰색 속옷 하나만 입은 채 다이빙을 실컷 하고, 고사리손으로 딴 홍합 한 봉지와 바꿔 먹던 아이스크림이 어떤 비싼 음식보다 싱그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우리에게 바다는 무척이나 넓고, 온갖 것이 다 있는 백화점이었다. 말 그대로 스포츠와 먹거리, 휴식이 모두 갖춰진 종합 놀이터이다.
그렇기에 최근 포항이 복합해양레저관광도시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참 특별하게 다가온다. 철강으로 대표되던 도시가 이제는 '바다와 함께하는 도시'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이면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숙제들도 있다. 더 이상 조개껍데기 하나로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어린 추억을 바라서는 안 될 일 아닌가. 해양스포츠와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시설과 장비, 그리고 안전 관리 체계가 튼튼해야만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다. 가족 단위, 청년층, 노년층 등 다양한 계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요구된다.
요즘 들어 포항은 요트·카약·서핑과 같은 다양한 액티비티의 유행을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해양 생태 체험 및 교육·문화 예술 이벤트까지 풍성한 해양관광 콘텐츠를 기대한다. 지역 특산물과 연계한 먹거리 산업 활성화도 빼놓을 수 없다.
포항으로서는 이번 복합해양레저관광도시 선정을 '단순 관광객 수 늘리기'로만 받아들이지 말아 주길 부탁한다. 비대면과 자연 친화적 관광에 대한 관심이 커진 지금, 포항의 해양 관광은 지역민뿐 아니라 전국의 관광객들에게 힐링과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다. 바다는 포항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며 정서가 담긴 공간이다. 새로운 해양관광 도시로 나아가는 길에서 주민들이 소외돼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주민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해양관광 사업이 주민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도록 설계돼야 한다. 주민들도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서 쓸데없는 트집 잡기나 '내 집 앞마당은 안 된다'는 이기주의를 버리길 당부드린다. 기자 생활을 해오며 목격했던 온갖 국책사업 현장에서 이기적 혹은 좁은 생각으로만 외쳐 대던 주민 반대가 없었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복합해양레저관광도시라는 타이틀은 포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하나의 큰 그림이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긴 여정이겠지만, 포항은 이미 그 출발점에 섰다. 바다와 도시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누구나 찾아오고 머무르고 싶은 명소가 될 수 있도록 세심한 계획과 추진력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선정이 지역에 가져다줄 긍정적인 변화가 단지 수치나 지표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진정한 의미의 변화는 사람들의 일상과 꿈, 그리고 공동체 의식 속에서 피어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포항이 바다와 함께 웃고, 성장하며, 미래를 열어 가는 도시로 기억될 날을 기대한다.
포항에서 왔다고 말하면, '철강공업도시'를 먼저 떠올리던 친구들에게도 '이렇게 멋진 바다가 있다'고 자랑을 떠들어 대고 싶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이제 그 바다 위에 포항의 새로운 이야기가 힘차게 펼쳐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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