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차 법관인 정현숙 대구가정법원 경주지원 부장판사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경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을 준비해 판사가 됐다. 2017년엔 희망했던 가사전문법관으로 선발됐다. 지난해 2월까지 8년간 부산가정법원에서 가사전문법관으로 근무하며 수많은 이의 인생사를 접했다. 지금껏 처리한 이혼사건은 협의이혼, 재판상 이혼, 조정이혼을 모두 합하면 5천 건이 넘는다. 지금은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소속으로 형사단독과 영장업무를, 대구가정법원 경주지원 소속으로 가사단독과 가사조정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껏 깨져가는 수많은 가정을 봤고, 이들이 회복될 수 있다면 도와주고 싶었다. 헤어져야 한다면 잘 마무리지어주고 싶었다. 어른들의 싸움에 아무런 대비 없이 내팽개쳐진 아이들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보호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가슴 아픈 일, 화나는 일, 재미있거나 보람된 일을 만날 때마다 일기를 썼다. 이 글을 책으로 엮으면 어떨까 고민했다. 이혼을 고민하거나 그 과정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지난해 '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란 책이 세상에 나왔다.
정 부장판사는 '부부의 날'을 앞두고 매일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부부의 행복은 서로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결국 결혼 이후 부부의 사랑은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낸 책 제목의 '이혼주례'란 단어가 낯설다.
▶협의이혼 의사확인기일에 판사가 양 당사자에게 이혼하기로 합의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선언하는 절차를 뜻한다.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고, 가정법원 판사들이 사용하는 은어적 표현이다.
-책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었나.
▶처음부터 책을 내려고 작정하고 쓴 글이 아니었기에 특별히 어떤 메시지를 염두에 두진 않았다. 다만, 수많은 이혼사건을 처리하다보니 불가피하게 이혼을 해야 하는 부부도 분명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만 다른 기회가 있었다면 이혼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수많은 부부가 보였다. 그 속에서 힘들어하는 자녀의 모습도 보였다.
돌이켜보면, 이혼소송을 담당하는 판사의 마음을, 결코 판결문에서는 드러낼 수 없었던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게 출간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동기였던 것 같다. 결혼 전이라면 상대방을 두 눈 부릅뜨고 잘 살펴보고 신중히 결정했으면 좋겠고, 그렇게 선택한 결혼이라면 한쪽 눈 딱 감고 배우자를 믿고 서로 노력하며 그 가정을 잘 영위해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이혼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생명과 신체를 위협하는 폭행이나, 도박·사치 등 가정 경제에 중대한 타격을 줘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끼치게 하는 경우엔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혼이 필요하다. 극심한 부부간 갈등으로 자녀 앞에서 지속적으로 부부싸움을 하면서 욕설·몸싸움을 한다든지 할 경우엔 자녀를 위해서라도 이혼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부부싸움을 자녀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은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행위에 가깝다. '자녀를 위해 참고 산다'고 하면서 부부가 매일 이런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기본적으로 갈등이나 문제가 없는 가정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부부간 갈등이 심각하게 깊어지기 전이라면,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무조건 이혼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녀들에겐 부모와 함께 사는 게 최고다. 갈등을 무조건 감추는 게 아니라, 갈등을 잘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자녀들에겐 큰 교육이 될 수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이들이 다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큰 것 같다.
▶부부의 이혼으로 자녀는 큰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남편과 아내는 각자의 분노감정에 휩싸여 어린 자녀들이 얼마나 상처받고 아파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혼소송이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녀를 무기삼아 상대방을 벌주려하고, 자녀를 통해 이혼소송의 증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이 자녀의 인생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칠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녀를 절대로 재판에 이용해선 안 된다. 자녀들은 부모 양측 유전자를 모두 가지고 태어났기에 둘 중 한 사람에 대해 적대감과 거부감을 갖는다는 것은 무의식에서 이미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게 되는 심리상태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남편과 아내가 이혼하는 것이지, 엄마와 아빠의 지위나 역할이 박탈돼선 안 된다.
소년보호사건을 처리해보면 십중팔구는 이혼가정의 자녀가 많다. 특히, 소년범의 십중팔구는 이혼가정 자녀 중 비양육친(친권·양육권 없는 부모)과 면접교섭이 잘 되지 않는 경우다. 반면, 이혼가정이어도 면접교섭이 잘 되는 경우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건강한 부부로 사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런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건강하게 잘 헤어져서 자녀에게 상처와 아픔이 되지 않도록 부모로서 잘 협력하는 관계가 돼야 한다.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하고 함몰되면, 훗날 자녀가 겪게 될 어렵고 힘든 상황에 다시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결혼에 대해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저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해질 것 같아서, 저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고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란 해피앤딩은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결말일 뿐이지, 결혼한다고 해서 그냥 행복해지는 법은 결코 없다.
결혼 이후의 행복은 부부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 전엔 남녀 간의 에로스적 사랑으로 존재 그 자체만으로 행복했고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 사랑스러워보인다. 그러나 결혼이후 부부 사이에 있어서 그런 에로스적 사랑의 유효기간은 매우 짧다. 그 이후의 부부의 사랑은 '예의지킴'이 아닐까 한다.
상당수 부부는 서로를 너무나도 편안하게 느끼며 남이었다면 결코 하지 않을 예의 없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은 서로를 배척하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남에겐 결코 할 수 없는 말,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편하다는 이유로 배우자에게 함부로 하면 절대 안 된다.
내가 내 집에서까지, 부부사이에, 그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야하나 싶을 수도 있다. 처음엔 어렵고 힘들겠지만 그것이 생활이 되면 그렇게 힘들지 않게 여겨지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중심이 되는 따뜻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부부의 사랑은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란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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