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에서 패배로 보수 진영은 3년 만에 정권을 진보 진영에 넘겨줬다. 비상계엄과 그에 따른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진 조기대선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은 '탄핵 심판'에 손을 들어줬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과 대선 참패, 처절한 반성과 개혁으로 보수 재건을 위한 리셋(Reset) 작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패배했지만 김문수 대선 후보에 '그럼에도 잘 싸웠다'는 평가가 속속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10여%포인트(p)가 뒤지는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가 나오면서 김 후보의 참패가 예상됐지만 최종 득표율은 49.42% vs 41.15%, '8,27%p'의 격차만 보이면서다.
최종 후보 등록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난맥상, 당내 주류 의원들 비협조라는 난항 속에 끝까지 '강직함'과 '청렴함'의 이미지를 유지시킨 김 후보의 '개인 능력'으로 최소한의 방어막은 구축했다는 분석이다.
보수 재건의 시간 속 김 후보가 '차기 보수 주자'로의 기준점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후보 교체 파동에도 전면전으로 돌파
당내 경선부터 최종 대선 후보 선출까지 과정은 지난했다. 특히 당 경선을 통해 최종 후보로 선출된 직후 불었던 '후보 교체 파동'은 김 후보에게 치명타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최종 대선 후보' 자리는 끝까지 김 후보의 자력으로 일궈낸 성과였다.
지난달 3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김 후보는 당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됐지만 당 지도부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의 단일화를 밀어붙이면서 내홍을 겪었다. 급기야 당 지도부가 한덕수 전 총리로의 후보 재선출 절차를 추진하는 하극상까지 벌어졌다.
당원 투표로 어렵사리 후보 자리를 지켜냈지만 교체 파동의 후폭풍도 오로지 김 후보의 몫이었다. 선거대책위원회는 전당대회 이후 일주일가량 지난 시점에서 출범했고 당내 화합 도모도 쉽지 않았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경선 탈락 후 탈당을 선언하며 미국 하와이로 갔고, 한동훈 전 대표도 지원 유세에 나섰지만 선대위에는 끝내 합류하지 않았다. 당초 구상했던 '반(反) 이재명 빅텐트'는 물론 보수 통합마저 실패한 것이다.
당의 비협조적인 상황에도 김 후보는 입장 선회대신 전면전을 선택했다. 당의 후보직 박탈 결정에 그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강력 예고했고, 고령의 나이에 부담이 될 수도 있었으나 하루 여러 도시를 돌며 집중 유세를 하는 강행군을 이어가며 흩어진 보수 결집을 도모했다.

◆'청렴', '성과' 개인 이미지로 매력 어필
40%가 넘는 최종 득표율은 김 후보가 가진 개인의 매력으로 일궈냈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적잖다. 난항을 뚫은 김 후보의 저력은 공식 선거운동 레이스에서 본격적으로 나왔다는 평가다. 그의 '성과'와 '청렴'이라는 이미지가 유권자에게 소구가 됐다는 것.
보수 정계 일각에서는 김문수 후보가 '보수' 정치인이 보여줘야 할 가치를 지녔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후보는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청렴, 정직, 꼿꼿의 메시지로 민심을 일관되게 파고들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정반대에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축적했던 청렴하고 검소한 이미지에다 반도체 단지·GTX 유치와 같은 행정가로서의 역량도 알려지면서 선거 종반 레이스에는 '김문수 바람'이 거세게 불기도 했다.
여기에 역도계 전설 장미란 선수와의 인연, 김연아 피겨 스케이팅 선수 지원 등 김 후보의 미담들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파파미'(파도파도미담), '문며든다'(김문수에 스며든다)는 입소문도 퍼졌다.
그가 가진 서민적인 이미지도 그간의 보수 정치인들에게서 좀처럼 찾을 수 없었던 면모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극복하고 고위 공직자 지위를 오래 유지했음에도 김 후보의 전 재산은 서울 봉천동 24평 아파트 한 채라는 '서민적 행보'가 보수층 결집에 먹혀들었다.
한 보수 정치권 관계자는 "그간 보수 정치인들은 온갖 비리와 잡음에 연루되고 보기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오기 일쑤였다. '청렴'은 보수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가치였으나 언젠가부터 잊혀졌다. 이를 김문수를 통해 재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당권을 잡기 위해 패거리 정치에 나서는 보수 정치의 모습과도 거리가 멀었다. 개인의 성공이나 성취보다 대의를 앞세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계 입문 이후의 모습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났고, 개인의 실력과 성과를 통해 자신의 소신을 증명해 보였다"고 덧붙였다.
다만 대선 실패에서 오는 그의 한계도 뚜렷하다. 지난 4월 출마를 선언하며 본격적으로 선거전에 뛰어오르면서 막판까지 김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단호한 절연 의지를 보이지 못했다. 정책 메시지에서도 과감한 중도 확장보다는 강경 보수층의 선호만 머무르면서 '중도 확장성이 약하다는 프레임에 갇혔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문수가 중도 확장성이 약하다는 건 국민의힘 스스로 그렇게 만든 프레임이지 후보가 자처한 것이 아니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한덕수를 띄우려다 보니 김문수는 중도 확장성이 없다라고 국힘 스스로 낙인찍었다"라며 "이를 벗어내야 했지만 캠프, 친윤 일색의 선대위에 둘러싸여 끝내 벗어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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