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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신현일] 딜레마에 빠진 '김호중 소리길'

경북부 기자

신현일 경북부 기자
신현일 경북부 기자

딜레마(Dilemma)의 사전적 정의는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을 말한다.

김천시가 '김호중 소리길' 존폐를 두고 '지역 경제'와 '명분' 사이의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김호중 소리길'을 철거하자니 지역 상권에 영향을 줄까 조심스럽고 철거를 미루자니 범죄자를 옹호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까 고민이 커지고 있는 것.

범죄를 저지르고 수감된 연예인 이름을 딴 길이라면 철거하면 간단하게 처리될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다르다.

'김호중 소리길'은 지난 2021년 인기 트로트 가수 송가인 씨의 고향인 전남 진도군이 '송가인길'을 조성해 관광 명소가 된 사례를 참고해 김천시가 약 2억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했다.

가수 김호중 씨가 졸업한 김천예고 일대와 벚꽃 명소로 잘 알려진 김천 연화지 주변을 벽화와 사진 명소 등으로 꾸미고 주변을 김 씨 팬클럽을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채색해 만들었다.

김천시에 따르면 '김호중 소리길'에는 조성 후부터 매년 10만 명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2023년에는 약 15만 명이 방문했다. 김 씨의 음주 운전 뺑소니 사건이 벌어진 2024년에도 적지 않은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2024년 5월, 김 씨의 음주 운전 뺑소니 사건이 발생한 후 '김호중 소리길을 철거하라'는 민원과 '철거하지 말라'는 전화, '철거할지 말지를 알려 달라'는 등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 오는 전화 민원에 김천시 담당자가 정상적인 업무를 하기 힘들 정도였다.

당시 김천시는 '김호중 소리길' 철거 여부에 대해 "아직 내부적으로 논의된 것은 없다"며 "향후 여론과 항소심 결과 등을 지켜보고 논의를 이어 가겠다"고 명확한 견해를 내놓지 않았다.

또 "김호중 소리길은 단독으로 조성된 게 아니라 벚꽃 관광지로 유명한 연화지와 연결돼 있어 장기적으로 봐야 할 문제다"라고 답변을 미뤘다.

하지만 김천시가 '김호중 소리길' 철거를 미루는 데는 김천 시민 전체보다 많은 15만 명에 달하는 김 씨 팬클럽 '아리스'의 영향력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아리스' 회원들은 김호중 소리길이 만들어질 때부터 지역에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매주 주말이면 여러 대의 버스를 이용해 '김호중 소리길'을 찾았고 지역의 음식점과 카페 등을 방문해 지역 경기 활성화에 큰손 역할을 해 왔다. 이들의 꾸준한 '김호중 소리길' 방문은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고 김천시도 이를 치적으로 자랑해 왔었다.

김 씨가 수감된 후에도 '아리스' 회원들은 여전히 '김호중 소리길'과 연화지 등을 방문해 지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김호중 소리길' 철거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5월 25일에는 '아리스' 회원들이 김천실내체육관을 임차해 전국 모임을 가졌다. 녹화된 김 씨의 공연 영상을 두 차례 방영한 이날 모임에는 회차별로 1천500명의 회원이 자리를 빼곡히 메웠다. 김천실내체육관에 입장하지 못한 팬들은 '김호중 소리길'과 연화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김 씨 팬들은 이런 모임을 분기별로 한 번씩 김천시에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아리스'의 행보 또한 김천시가 쉽게 '김호중 소리길'을 철거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하나의 원인이기도 하다.

'김호중 소리길' 존폐를 두고 딜레마에 빠진 김천시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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