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3대 평야,안계평야
종종 '안계평야'를 가면 하늘에서 버섯들이 살포시 내려앉는 환영이 보이곤 한다. 유년 시절이었다. 추수가 끝난 들판 위로 수많은 낙하산들이 비행기에서 하나둘씩 점점으로 펼쳐지면서 내려앉았다.
아마도 당시 주한미군이 침투훈련을 하기에 안계평야는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석양이 내려앉을 즈음,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미군들을 향해 코흘리개 동네꼬마들이 달려가서 본능적으로 "깁미 초콜릿!"이라고 소리치며 손을 벌리던 시절이었다.
안계평야는 안강평야, 금호평야와 더불어 평야지대가 귀한 경북의 3대 평야로 유명하다. 농경사회에선 쌀이 곧 생명이었다. '쌀과 밥'이 하늘이었다. 안계가 의성의 서부지역 중심이 된 것도 안계평야라는 곡창지대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식량으로서 쌀이 남아돌아 푸대접 받고 있지만 쌀은 귀하디귀한 존재였다.
보릿고개가 있던 박정희 시대에는 오롯이 흰 '쌀밥'을 먹는 것은 사치이자 아예 금지됐고 온 국민에게 혼·분식을 먹도록 강제했다. 쌀로 막걸리를 빚는 것은 언감생심이어서 1977년 12월 22일 우리나라가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그날, 박 대통령은 쌀밥금지령과 쌀 막걸리 금지 조치를 해제, '쌀 막걸리'를 마실 수 있도록 했다.

◆보릿고개 넘던 고마운 땅
인구소멸위기에 처한 시골도시의 대명사로 통하던 의성에 청년들이 모여들고 있다. 안계평야를 중심으로 '찰지고 맛있는' 안계 쌀로 만든 <스윗띵>의 스페인음료 '오르차타'와 수제맥주 '안계평야'는 물론이고 <오늘 손만두>의 '수제 손만두' 등 청년창업가들이 몰려와서 의성을 활력 넘치는 청년도시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안계평야에 다시 섰다. 일찌감치 모내기를 끝낸 들판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졌다. 이 들판에서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었다. 이른 봄, 보리를 베었고 초여름엔 마늘을 수확하기도 했고 가을엔 황금 빛깔로 잘 여문 벼를 베었다. '개천 저수지'를 수원(水源)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하던 개천을 우리는 평야를 가로지른다는 의미로 '중간천'이라 불렀다.
수초로 가득한 그 개천을 휘젓고 다니면서 붕어며 피라미 등 물고기를 잡았고 겨울에는 꽁꽁 언 개천에서 '수제' 썰매를 탔다. 우리 시대 이전 이 평야의 주인인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가슴 한가득 벼를 안은 채 활짝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보릿고개의 고비를 쉽게 넘을 수 있도록 생명을 준 고마운 평야다.
아버지는 이 땅에서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고 어머니는 시집간 딸들에게 해마다 직접 농사지은 쌀을 보냈다. 기력이 쇠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아버지는 안계평야 노른자위에 있던 7마지기 논을 팔고나서도 몇 년간이나 벼가 잘 자라는 지 보러 다녔다.

◆밥은 하늘이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김지하 시인이 노래한 '밥'이 곧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쌀이다.
귀하디 귀한 쌀이 어느 순간 천덕꾸리기 신세가 되었건만 일본은 어느 날 갑자기 쌀이 부족해서 쌀값이 급등하고 마침내 한국 쌀을 수입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통계의 착시에 빠져 쌀 생산량을 점진적으로 잘못 줄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일본이다. 쌀 생산량을 줄이고 있는 데다 쌀농사를 짓는 농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우리도 한 순간 일본처럼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안계평야의 전략적·경제적 가치를 다시 봐야 할 때다.
안계는 조문국 이래로 안계평야 덕분에 의성의 경제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신라가 조문국을 병합한 이후 안계(아시촌)에 소경을 설치한 것도 안계평야라는 곡창지대를 관리하기위한 것이었다. 쌀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한 일제강점기에는 안계평야의 관개시설이 확충됐다.
인근의 개천지와 대제지 그리고 조성지 등 저수지가 크게 축조되는 등 관개시설이 확충되면서 쌀 생산량이 크게 늘어 대구 등지로 반출됐다. 그러나 해마다 여름이면 위천이 범람, 안계평야가 물에 잠기는 등 침수피해도 잦았다.
80년대 이후 위천 제방이 높아지는 등 개선되고 4대강 사업으로 하천정비사업이 마무리됨에 따라 더 이상 안계평야는 침수되는 피해가 벌어지지 않았다.정주해서 살기에 편안한 시냇가란 의미의 지명이 '안계'(安溪)다. 안계의 중심지는 용기리지만 교촌, 도덕, 양곡, 안정, 토매 등 모두 9개 법정동이 있다.

◆의성 안계의 변신은 무죄
청년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안계에는 사라졌던 극장이 '안계행복영화관'이라는 60석 규모의 소극장으로 개관했고 폐업한 대중목욕탕은 '안계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작은 소도시에서 대구까지 가지않고도 문화향기 물씬 풍기는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매달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는 안계미술관에선 마침 <지역을 남기다. 기억을 닦다>는 기획전시가 지난 7일까지 열렸다.
'의성산불'로 인해 전소되는 등의 산불피해를 입은 고운사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등 지역작가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전시였다. 안계행복플랫폼에서는 의성의 옛 기억을 기록한 지역 출신 사진작가 김재도의 <다시, 봄>의 사진이 상시 전시되고 있다. <다시, 봄>을 통해 작가는 기억 속 아버지,어머니 혹은 우리들의 유년을 되살려주는 추억여행을 제공하고 있다.
안계행복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봤다. 전 좌석이 '리클라이너'인 최신 영화관에서 영화 한편을 보는 관람료가 8천원이다. 20년 전 과거로 돌아간 것일까. 당시 의성에는 의성과 안계에 상설 극장이 있었다. 홍콩무협영화와 신성일·엄앵란 등 스타들의 사랑영화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안계극장에도 수시로 남진·나훈아·패티김·하춘화 등 당대 톱 가수는 물론이고 배삼룡 구봉서 등의 코미디언과 서커스단 공연이 이어질 정도로 오히려 그때 그 시절이 극장공연을 통한 대중문화를 지금보다 더 향유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시골에 다시 영화관과 미술관이 들어서고 반려동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반려견 테마파크 <의성 펫월드>까지 조성됐다.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는 펫월드는 주말에는 전국에서 반려견주들이 몰려들면서 안계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의성과 안계에 청년들이 몰려들다.
의성과 안계에 청년들이 몰려드는 것은 청년들은 물론이고 누구나 살기좋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2020년부터 청년창업가들에 대한 지원책과 귀촌청년들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한 결과다. 지원책도 없고 살기에도 팍팍한 대도시보다 오히려 쾌적한 생활환경을 갖춘 의성의 정주여건이 더 나은데다 파격적인 지원을 받고 창업하기에도 적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폐업한 '안성목욕탕'을 그대로 살려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켜 <안계미술관>을 운영하는 김현주씨. 매일 신선한 채소와 건강한 재료를 손질, 정성스럽게 만두를 빚어 농가주택을 리모델링해서 식당을 연 <오늘 손만두>의 김진우씨. 이 식당에는 신세계 정용진 회장이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들리는 등 이미 안계 청년창업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안계쌀 음료를 시그니처로 한 <카페스윗띵>의 최성신씨는 곧 안계에서 만난 청년과 백년가약을 맺기로 했다. 그녀 역시 가볍게 '의성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으로 안계에 왔다가 아예 창업을 하고 반려자까지 만나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안계와 안계평야의 명성을 잇는 안계영광의 주역들이다.
청년들이 사는 <이웃사촌마을>에는 아기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도시청년들과 시골감성이 만난 활기를 찾게 된 안계 골목길 구석구석이 새롭게 다가왔다. 어머니들이 그린 정성스런 그림과 시들로 장식된 구불구불한 골목길도 정겹게 다가왔다.
최고의 맥아와 최고의 품질을 갖춘 안계 쌀로 빚은 수제맥주 <안계평야>는 아직 맛보지 못했지만 '가벼우면서도 고소한 향과 의성에서 생산된 맥아와 쌀이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경쾌한 시트러스'라는 시음평가는 입맛을 다시게 한다. 안계에서 창업한 <호피홀리데이>가 만들어 낸 기적이다.

글·사진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대표) 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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